삼성 이정현, 베테랑과 계륵 사이

김종수 2024. 1.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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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 베테랑 이정현(37‧190.3cm)은 KBL 역사상 최고의 슈팅가드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후보중 한명이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선발되어 리그에 입성한 이래 현재까지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롱런’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를 감안했을 때 후배들에게 목표이자 귀감이 될만한 인물이다.


농구 역사 전체로 돌아보면 슈팅가드를 넘어 전 포지션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GOAT’ 허재가 있겠지만 그의 전성기는 프로농구 이전이었다. 챔피언결정전 MVP, 우승멤버 등 나름 말년을 뜨겁게 불태웠다고는 하지만 활동기간, 누적 기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름값 대비 아쉬운 부분이 적지않다.


최근 들어서는 개성 넘치는 슈팅가드가 많이 줄어들었다. 슈팅가드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여전히 많지만 퓨어 포인트가드 품귀 현상 속에서 예전같으면 2번으로 뛸 선수가 야전사령관으로 올라서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정현(소노), 변준형(상무), 김낙현(한국가스공사)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슈팅가드로는 이정현 외에 강혁, 김효범, 강병현, 조성민 등을 꼽을 수 있다. 각자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고 쌓아 올린 커리어도 일장일단이 있기에 단순비교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현대농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평가했을 때 이정현의 위엄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질 공산이 크다. 특히 연속 경기출장 기록같은 경우 향후에도 좀처럼 깨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정현은 오세근, 양희종, 박찬희, 김태술 등과 함께 안양 KGC 인삼공사 전성기를 이끌던 이른바 '인삼신기'출신이다. 박찬희에 이어 전체 2순위로 깜짝 지명을 받을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으나 신인 시절부터 톡톡히 제 몫을 해내며 KGC의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KGC에서 이정현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부분은 자신감 넘치는 공격이었다. 대학 무대에서 펄펄 날았다 해도 프로에 오게 되면 주눅이 드는 대다수 신인과 달리 이정현은 공격에서 거침이 없었다.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과감하게 슛을 쏘고 돌파를 하며 단숨에 '될성부른 떡잎이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출장 경기가 늘어갈수록 기량도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KGC가 통산 2번째 우승을 차지한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엄청난 빅샷을 성공시키며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전주 KCC로 둥지를 옮겨서도 활약은 계속됐다. ‘다른 팀일 때는 몰랐는데 우리팀이 되고나니 정말 잘하는 선수인줄 알겠더라’는 말이 전주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던 이유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주 공격수 역할을 맡으며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이정현은 전천후 공격수다. 조금의 틈만 있으면 과감하게 돌파를 감행해 득점을 올리거나 자유투를 얻어낸다. 골밑으로 들어갈 듯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춰 서서 쏘는 미들슛, 뱅크슛도 일품이다. 거기에 자신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센스있게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슈터 혹은 속공수의 역할도 곧잘 해준다.


2대 2 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플레이해야 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BQ 높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보는게 맞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창때까지의 기준이다. 금강불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이정현이지만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말처럼 나이와 함께 기량 또한 급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록만 놓고 봤을 때는 큰폭의 변화는 적다. 이정현은 올 시즌 현재 35경기에서 23분 20초를 뛰며 평균 9.77득점, 3.89어시스트, 3.11리바운드, 0.51스틸을 기록 중이다. 통산 12.84득점, 3.63어시스트, 2.90리바운드, 1.17스틸과 비교 했을 때 득점, 스틸에서 조금 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기록은 엇비슷하다. 출장 시간의 소폭감소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평균 득점이 두자릿수 밑으로 떨어진 점은 눈에 띈다. 이정현은 데뷔이래 2011~12시즌(9.46득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9점대 후반의 평균 득점은 몇 경기만 잘 치러도 금세 올라설 수 있는 수치다. 전체적으로 성적표만 놓고 봤을 때 이정현은 여전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정현을 바라보는 삼성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높은 연봉과 기대치에 비해 팀 성적에 대한 기여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야투, 3점슛 성공률 모두 한창 때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졌다. 본래부터 효율보다는 볼륨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장의 특성상 이상적인 플레이 형태는 결코 아니다.
 

이전 소속팀 시절부터 이정현은 공격시 부진하다가도 한순간에 몰아쳐서 흐름을 바꾸거나 클러치 상황서 듬직한 해결사 역할을 해주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최근에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른바 긁히는 날을 빼고는 경기 내내 리듬을 찾지 못하고 부진을 이어가는 경우가 잦아졌고 승부처에서도 무리한 공격으로 흐름에 찬물을 끼얹어버리기 일쑤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영원히 전성기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이정현 역시 몇 시즌 전부터 기량이 급감하는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 특유의 BQ와 노련미는 여전하지만 운동신경, 순발력 등에서 예전 같지 않다. 이는 특히 수비적인 부분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정현은 공격에서 돋보이는 선수지만 수비 역시 약한 편은 아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진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의 몸싸움도 잘해줬고, 상대 패스길을 읽어가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패스를 쳐내거나 공을 가로채는 능력도 탁월했다. 적어도 본인 분량의 수비는 충분히 해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정현은 '수비 구멍'으로 지적 받는 상황이다. 특유의 센스는 여전하지만 순발력이 떨어져, 빠르고 에너지 넘치는 젊은 가드들의 발놀림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수비가 약한 1번과 백코트 파트너로 나설 경우 상대 가드진의 타킷이 되는 경우도 많다. KCC 시절 유현준과의 합이 그랬고 삼성에서는 김시래와 함께 마이너스 노장 콤비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떤 선수에게나 해당되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이로 인한 노쇠화는 피해갈 수 없다. 코칭스탭이 거기에 맞춰 사용법도 잘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고액연봉을 받는 노장 스스로 ‘어떻게 하면 팀에 도움이 될까?’를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훗날 선수평가에 있어서 개인기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이 가장 빛날 때는 승리 속에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그림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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