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가입 자체가 중대 범죄지만”… MZ 조폭에 집유내린 이유

방극렬 기자 2024. 1. 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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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노아파 조직원들이 문신을 드러낸 채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서울중앙지검

“지난 기일 이후에 반성 많이 했어요?”(최경서 부장판사)

“예” (수노아파 조직원들)

2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검은색 패딩을 입은 23명의 ‘MZ 조폭’이 피고인석을 가득 메운 채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 재판장 최경서 부장판사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이들은 모두 국내 10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꼽히는 ‘수노아파’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젊은 조직원들이었다. 대부분 짧게 자른 ‘깍두기 머리’였지만, 20대에서 유행인 ‘쉼표 머리’나 ‘바가지 머리’ 스타일도 보였다.

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날 범죄 조직 단체에 가입‧활동한 혐의로 작년 6월 기소된 수노아파 조직원들에 대한 선고 기일을 진행했다. 이들은 수노아파 핵심 조직원들이 2020년 말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혐의로 검찰에 붙잡혔을 때 함께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다만 해당 폭력 행위에 가담한 적은 없는 것으로 조사돼 수노아파 가입 혐의 등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았다.

이날 법정에 나온 피고인 모두 청년 남성이었다. 조직원 중 한 명인 선모씨는 작년까지 고등학생이었다가 지난주 학교를 졸업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가정에서 육아 중인 조직원도 있었다. 일부 조직원들은 수년 전 수노아파를 탈퇴해 사회복지사나 에어컨 수리기사 등 생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 부장판사는 형을 선고하는 주문을 읽기에 앞서 범죄 조직 단체에 가입하는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최 부장판사는 “범죄 단체는 일반 시민에게 직‧간접적 피해와 불안감을 주고 사회의 평온을 심각하게 해한다”며 “조직 폭력 단체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 부장판사는 피고인 한 명 한 명의 전과(前科)와 가입‧활동 내역 등을 언급하며 개별적인 양형 사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OO의 경우 폭력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다수의 범죄 처벌 이력이 있지만, 2020년경 (수노아파를) 사실상 탈퇴했다. 그 이후에는 회사에 근무하며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박OO의 경우 폭력 범죄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것 외에 그 이상의 처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2022년 경 수노아파를 탈퇴해 조선회사에 취업한 것을 고려했다.”

“선OO의 경우 소년보호처분 전력이 다수 있지만, 성인 이후에는 초범이다. 또 범행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얼마 전에 학교를 졸업해 담임 교사와 모친이 탄원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최 부장판사는 23명에 대한 양형 사유를 모두 읽은 뒤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노아파에 가입을 권유한 혐의 등을 받는 이모씨 등 3명에게는 징역 8개월~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수노아파에 단순 가입한 혐의로 기소된 17명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다만, 가입 기간이 3개월로 짧고, 범죄 전력 없이 생업에 종사 중인 2명에 대해선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유죄이지만 죄가 가벼울 경우 형의 선고를 2년간 미루고, 2년간 형사 사건을 저지르지 않으면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해주는 것이다. 가입 시기가 오래돼 공소시효가 지난 1명은 면소(免訴·기소 면제) 판결을 받았다.

최 부장판사는 주문을 마친 뒤 “피고인들은 나이가 어려 큰 죄인지 체감을 못 할 수도 있고, ‘한 것도 없는데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면서도 “폭력 단체 가입은 그 자체로 사회에 위험성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스스로 인생에서 큰 과오를 범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대부분 피고인에게 선처한 것이니 이를 명심하고, 가족들에게 실망되지 않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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