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희미한 백운대 석각 선명히 채워 넣다

신완균 하남시 아리수로 2024. 1. 2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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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836m. 화강암의 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백운대.

이곳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이 있다.

백운대에 갈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상석에 새겨진 백운대白雲臺 석각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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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정상석 덧칠 작업을 마친 뒤 필자의 모습.

높이 836m. 화강암의 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백운대. 이곳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이 있다. 옆으로는 인수봉과 만경대 같은 북한산 고봉이 있어, 기암절벽을 볼 수 있는 조망이 일품이다. 철제 난간이 있어 산행이 편한 덕에 나는 자주 백운대를 오른다.

백운대에 갈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상석에 새겨진 백운대白雲臺 석각 글씨였다. 정상부 태극기 앞에는 한자가 새겨진 정상석이 있다. 어느 선대 석공이 힘들게 새겨놓은 멋진 석각은 날이 갈수록 색을 잃어 그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만 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빛바랜 글씨에 선명한 색을 채워 주고 싶었다.

작업을 결심하고 며칠 뒤 일행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백운대에 도착해 사람들이 없는 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틈이 보이질 않았다. 정상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계속 밀려왔다. 그렇게 30분, 1시간…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도저히 작업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날을 기약하며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내려가는 길에 용암문 글씨도 덧칠했다.

내려오고 나서도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군가는 분명 해야 할 작업이라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날씨가 좋은 날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분명 이날은 사람도 적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오늘은 꼭 작업을 끝내리라 다짐하고 짐을 챙겨 백운대 정상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40분 정상에 도착했다. 50명 정도가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나도 그 대열에 끼였다. 천천히 차례를 기다렸다. 내 앞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8명이 처음 와본 북한산에 관해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풋풋하고 재미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40분이 훌쩍 지나갔다.

정상부에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보온 의류를 챙겨 입고 서서히 작업을 준비했다. 미리 준비해 간 붓을 가방에서 꺼냈다. 페인트 대신 챙겨간 락카 스프레이를 빈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강풍이 불어 작업이 쉽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밑에 있던 관리공단 직원이 나타났다.

"선생님 뭐하고 계신가요? 정상석에 이상한 짓 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답했다.

"정상석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안타까워 붓으로 글씨만 덧칠하려 합니다. 괜찮을까요?"

그러자 공단 직원은 알겠다며 'OK' 사인을 보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최대한 빨리 덧칠작업을 끝냈다. 오랜 염원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노적봉 안부를 지나 칼바위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용암문 앞을 지나다 세월에 퇴색된 나무판자가 눈에 띄었다. 용암문 가운데 걸려 있던 것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으로 작업하고 넣어두었던 장비를 다시 꺼냈다.

땅바닥에서는 높이가 닿지 않았다. 주변의 큰 돌을 굴려와 판자 아래 놓고 디딤돌 삼아 받치고 올라섰다. 이마저도 고르지 않은 땅바닥 탓에 작업이 쉽지 않았다. 왼손은 벽을 잡고 오른손만으로 덧칠 작업을 이어갔다.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서둘러 작업을 마쳤다. 가뿐해진 마음이 들어 산을 조금 길게 타고자 칼바위능선으로 내려갔다. 처음 와보는 길이라 알바를 좀 했지만, 그것조차 좋았다. 오랜 다짐을 완수했다는 큰 행복을 안고 산을 내려와 솔샘역으로 향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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