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실제 교통사고를 거짓말이라 기록”…미투 6년 서지현의 시간

정환봉 기자 2024. 1.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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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저울 위, 미투 6년’ (상)
서지현과 김승섭의 대화
서지현 전 검사가 미투 6년을 앞 둔 지난 1월1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18년 1월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검찰 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 피해 사실과 인사 불이익의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미투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여성이 유폐됐던 성폭력을 증언하고 또 연대했다. 그렇게 6년이 흐른 오늘, 한겨레는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서지현을 만났다. 서지현의 7번의 재판과 그 이후 법정에 선 미투 사건들을 살피며, 법원의 변화와 한계도 짚었다.

서지현은 지난해 12월21일 우주를 떠올렸다. “광활하다는 표현도 부족한 우주에 먼지만 한 지구, 그 먼지만 한 지구에서도 먼지만 한 내가 고통스럽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클까.” 서지현은 절망과 슬픔, 분노를 눌러 담았다. 부피는 줄었지만, 지녀야 할 무게는 그대로였다.

그날은 서지현이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마지막 판결을 받아든 날이다. 2018년 1월29일 검찰 내부망에 안 전 검사장의 강제추행과 인사불이익을 폭로하는 ‘미투’를 한 지 5년11개월 만이었다.

법원은 안태근의 강제추행으로 서지현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넉넉히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 기간이 지났다고 했다. 안태근이 서지현에게 준 인사 불이익에 대해선 “부적절하다”며 실체를 인정했지만 “불법은 아니다”고 했다. 2020년 9월 안태근이 형사법정에서 전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진행된 민사소송의 결과였다. 전부 패소였다.

서지현이 트라우마 전문가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마주 앉았다. 정확히 6년 전이었던 2018년 1월29일 ‘서지현의 미투’ 그날 이후 지금까지 서지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해온 김승섭이다.

그는 물었다. 서지현은 패배했나? 6년간 7번의 재판 끝에 최종 패소한 건 사실이다. 서지현은 정말 패배한 것일까? ‘미투’ 이후 6년, 그가 길을 낸 ‘한국사회 6년’에 대해 김승섭이 묻고 서지현이 답했다. 지난 1월1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8층 회의실에서 이뤄진 대담이다.

절박한 피해자는 법을 모르고, 법 아는 사람은 절박하지 않으니

김승섭 한 사회에서 피해자는 폭력과 낙인의 구조를 공유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기 말을 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이주민도, 학교폭력 피해자도 자신의 고통을 말하기 어렵다. 그 강요된 침묵으로 상처는 당사자의 몸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생존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 시작할 때, 그 견고한 장벽이 깨지고 그 고통은 사회적 사건이 된다. 2018년 1월29일, 서지현이 시작한 미투는 그 낙인과 폭력의 벽에 균열을 만든 시작이었다. 그 이후 지난 6년이 서지현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서지현 “희망했다 절망했고, 기뻤다가 슬펐으며, 고통스러우면서도 보람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이 폭풍처럼 몰아치던 시간이었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직업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사건에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6년을 잘 버텼다.

“검사도 공개적인 곳에서 피해를 입고, 8년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며, 2차 가해에 고통받는다는 현실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늘 ‘왜 이제 와서 말해’ ‘네가 잘못한 것이 있겠지’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사마저도 입을 여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 그 답변을 대신해준 것이다. 나에게 고통이었던 시간이 우리 사회엔 값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이만큼 온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무엇보다도 보호와 치유가 필요한 존재다. 상처가 아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그 피해자에게 세상을 바꾸어내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품고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내는 그 용기를 응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혹한 일이다. 다만 내 고통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피해자가 겪고, 나보다 더 심한 피해를 경험한 사람도 많다. 문제는 절박한 피해자들은 법과 제도를 잘 모르고, 법과 제도를 아는 사람은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법과 제도와 실무를 잘 알면서도 절박했던 ‘내’가 있었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2018년 1월29일, 서지현 당시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알린 뒤 같은 날 저녁 제이티비시 ‘뉴스룸’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2020년 1월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을 맡아 법무부로 간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느꼈다. 방송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서지현은 이미 너무나 무거운 짐을 감당했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미투를 시작한 서지현은 그 이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조금 더 자신을 돌보며 지내기를 바랐는데, 결국 갔다.

“2018년 한 강연에서 ‘스쿨미투’를 한 학생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이 ‘검사님 어른들은 너무 이상해요. 공무원들을 만나면 우리한테 뭘 해야 하는지 물어봐요. 그건 어른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때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우마의 장소에 다시 돌아간 이유

―법무부에서 정말 열심히 일 한 것으로 안다.

“법과 제도만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 영상을 대형화면에 트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피해자에겐 엄청난 공포다. 개인 모니터를 설치해서 판사나 검사 등 필요한 사람만 보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가해자 쪽이 사건과 무관한 카카오톡 등 대화 내용을 법정에서 공개해서 피해자를 인신공격하면,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법원에서 형량에 반영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도입할 수 있다. 간단한 제도 변화로도 피해자들을 훨씬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년 동안 서지현이 걸어온 길은 실은 내내 고독했다. 정치권 한쪽에서는 ‘민주당 사람’이라고 여겼고, 다른 쪽에서는 ‘미투가 이어지며 유력 정치인을 잃었다’며 껄끄러운 존재 취급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에 따라 어떨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어떨 때는 말을 한다고 욕했다. 선거 때마다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말을 했다. 무책임하게 떠도는 그 숱한 말 뒤에서 정작 인간 서지현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는 지워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미래의 성폭력 생존자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태스크포스 팀장으로 수사부터 기소와 재판, 집행을 단계별로 점검해서 피해자 보호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60여개 법률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그렇게 많은 성과를 낸 위원회는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올라와도 경찰이 바로 삭제나 차단을 요청하지 못한다. 방송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삭제해야 한다. 범죄 영상이 아닌 ‘음란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신속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온라인에서도 가정폭력 방지법 등에 있는 ‘응급조치’(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를 구현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경찰이 신고받으면 즉시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청하고, ‘이 영상을 시청하면 범죄에 해당한다’는 경고 문구를 달면 신속한 보호가 가능하다. 하지만 각 부처가 주도권 문제나,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도입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좌절을 느꼈다.”

“언니마저 무능한 검사 만드는 것 보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정작 서지현 자신은 2018년 1월29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강제추행은 일회적 사건이지만 2차 가해는 그 뒤로 1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됐다. 특히 검찰 조직은 매우 심했고, 국가는 이를 방치했다. 3명의 검사를 대표적 2차 가해자로 지목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했고 심지어 전원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런 인사가 조직에 주는 메시지는 ‘서지현은 죽여도 좋다’라는 것 아니겠나. 형사 사건 기록에는 ‘서지현이 평소에 문제가 없었냐’ 등의 질문으로 가득 찼다. 가해자에 대한 조사가 아닌 나를 사냥한 기록이었다.

안태근의 인사 불이익과 관련된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조사하는데, 왜 나에 대한 조사가 그토록 많은지 이해할 수 없다. 고통스러워서 펼쳐볼 엄두를 내지 못하다 최근 기록을 일부 봤는데 실제 교통사고로 회의 ‘사전모임’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 ‘교통사고가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회의에 빠진 적이 있어 서지현의 말은 믿지 않는다’라는 음해성 진술을 아무런 확인 없이 기재해뒀더라. 반면 객관적인 평가 자료인 검사실적표는 검찰이 끝까지 제출하지 않아 기록에 담기지도 못했다.”

서지현 전 검사와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 1월1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지현은 피해를 입은 사실만이 아니라 업무능력이 뛰어났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했다. 검사로 일하며 우수한 실적으로 10여 차례 표창을 받고 법무부 장관상을 2번이나 수상했지만, 인간 서지현에 대한 음해는 그치지 않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사회에서 피해자는 도대체 얼마나 더 완전무결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음 아팠던 기억은 미투 이후 친한 검찰 후배가 ‘언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적도 좋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으니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마저 무능한 검사로 만드는 것을 보고 찍소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을 때다.

2018년 1월29일 제이티비시와 인터뷰하기 전에 사표를 써뒀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가 나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됐다는 말을 듣고 난 뒤 사표를 내는 것이 누군가의 기대를 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명에게라도 용기를 주고 단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쉽지 않았다. 검찰 조직 안팎에서 2차 가해와 각종 음해에 시달리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할 내 마음의 상태는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갈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은 재판으로 넘어갔다. 형사 재판에서는 안태근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대해 1, 2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대법원은 무죄라는 결론을 내놨다. 민사 재판에서는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와 안태근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정했다. 재판 결과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어떤 생각이었나.

“처음에는 검찰 조직이 변화하길 기대했다. 순진한 예측이었다. 검찰은 필사적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고,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그 와중에도 모든 사실관계가 인정된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기기 위해서 시작한 소송은 아니었지만, 기왕 시작했고 법조인으로 살아왔기에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법정에서 확인받고 싶었다. 2차 가해와 보복 인사가 범죄이자 불법행위라는 것도 인정되길 바랐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당연한 결과도 받아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미투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미래가 이길 때까지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 역시 서지현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회복되지 않는 상처도 있다.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이 난 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존엄은 누구도 해칠 수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면서 함께 버텨냈으면 좋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말밖에 할 수 없어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미투를 시작한 이후 많은 여성이 목소리를 냈고, 사회가 바뀌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국가는 아직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언론도 정치권도 이제 손을 놓은 것 같다.”

―서지현이 시작한 변화는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제는 많은 조직이 성폭력 문제를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로 여긴다. 충분한 예방과 대책 마련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적어도 성폭력 문제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상식이 바뀌고 있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한다고 해도 우리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그 변화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2018년 1월29일 이후 6년은 한국 사회 전체가 서지현을 다리 삼아 인식의 부재라는 거대한 골짜기를 건너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모든 것을 꺼내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다른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그것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싸움이나, 개인과 조직의 싸움으로 변질시킨다면, 우리는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하나도 변하는 것 같지 않아 매우 힘들었을 때 김승섭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200년 전만 해도 노예제도가 있었고, 100년 전만 해도 여성에게 선거권이 없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6년 전 서지현을 처음 만났을 때 앞뒤가 너무 똑같고 투명해서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서지현이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6년 뒤의 서지현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

“나는 6년 전도 지금도 그대로다. 잘 웃고, 잘 울고 때론 희망하고 때론 절망하며 내 운명과 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6년 뒤에도, 아니 그 뒤로도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며 내게 주어진 삶을 무사히 살아낼 것이다.”

정리/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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