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수급비론 모자라서"... 아이폰 프로, Z폴드 훔친 70대의 변명

서현정 2024. 1. 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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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살기 부족해서 훔쳤습니다. 나이 먹어 받아주는 데도 없고, 순간적으로 충동이 생겼습니다."

지난달 16일 오전 0시 49분, 서울지하철 5호선 막차에서 A(7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축빼기가 자주 발생하는 폐쇄회로(CC)TV 없는 칸에서 잠복 수사를 하던 경찰관들에게, A씨는 범행이 딱 걸려서 현행범(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으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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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이어지며 10만원 이하 절도 급증
지하철 내 소매치기·부축빼기도 증가세
"단속에 더해 사회안전망 체크 병행을"
50대 남성이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11시 43분경 5호선 방화역 방향으로 가는 전동차에서 한 취객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제공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살기 부족해서 훔쳤습니다. 나이 먹어 받아주는 데도 없고, 순간적으로 충동이 생겼습니다."

지난달 16일 오전 0시 49분, 서울지하철 5호선 막차에서 A(7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야간에 인적 드문 지하철 안에서 술에 취해 있거나 잠든 사람에게 접근해 휴대폰 등을 훔치는 '부축빼기'범이었다. 부축빼기가 자주 발생하는 폐쇄회로(CC)TV 없는 칸에서 잠복 수사를 하던 경찰관들에게, A씨는 범행이 딱 걸려서 현행범(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으로 체포됐다.

이날 그가 훔친 물건은 되팔 때 가격대가 높은 아이폰 14프로 2대와 갤럭시 Z폴드 1대였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생활고를 못 이겨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A씨는 "지갑에 유심을 바로 뺄 수 있도록 옷핀을 넣어다녔는데, 눈이 침침한 탓에 아이폰 유심 구멍을 못 찾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하철 '부축빼기'범 A씨가 절취한 휴대폰을 케이스에서 꺼내 살피고 있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제공

고물가와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하철 부축빼기와 소액 절도 등 '배가 고파 남의 물건에 손댔다'고 주장하는 생계형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8일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검거한 부축빼기범은 △2021년 11명 △2022년 13명 △2023년 29명으로 2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부축빼기에 소매치기와 장물범을 합하면 2021년 27명에서 2023년 49명으로 증가했다. 김기창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은 "대부분 직업이 없는 생계형 범죄자"라고 말했다.

지하철뿐 아니라 생계 현장에서도 생활필수품을 훔치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2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부장판사는 식당의 직원 휴게실과 조리실을 턴 B(51)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가 훔친 물건은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 1매, 음식물쓰레기 스티커 20매, 속옷 6벌과 슬리퍼, 냉동낙지 3팩 등이다. 그는 이전에도 주거침입, 절도죄로 9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 춘천시에서는 식당을 운영하던 C(51)씨가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춘천시내 마트에서 해물모듬, 마늘, 고추장 등 120만 원 상당의 식자재를 32차례에 걸쳐 훔친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던 중 손실을 줄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 로고. 경찰청 제공

불황에 내몰려 현금이나 생필품을 훔치는 소액 절도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피해액 10만 원 이하 절도 범죄는 △2018년 3만9,070건 △2019년 4만8,581건 △2020년 5만73건 △2021년 5만4,972건 △2022년 8만666건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선처를 통해 범법자를 구제해주는 경미범죄 심사위원회의 감경결정 인원 역시 2018년 6,100명에서 2022년 8,722명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단속이나 법원의 양형 강화 문제와 별도로, 소액 범죄 급증 이면에 사회안전망 문제가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절도 범죄자가 또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히는 비율은 22.8%(2021년 국정감사 자료)로, 모든 범죄 중 동종 재범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생계형 범죄 증가에 대해 "코로나 이후 수입이 줄거나 실직이 이어지면서 경제 취약층의 불안이 커진 게 주된 원인"이라며 "지원금이나 맞춤형 취업 알선 등을 통해 자활로써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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