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왔나? 장사하러 온 왜놈 내쫓아…활대결 진 순찰사 발끈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2024. 1.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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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42> 병신년(1596년) 1월 27일~2월 16일

- 진영군관들, 공무 속 활쏘기 내기
- 밤늦게까지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 강화 협상 장기화에 ‘휴전’ 상황
- 사도첨사 파면 등 문책인사 빈번
- 전라·경상 항왜들 ‘도주 시도’도

현대의 국궁 동호인이 쓰는 활과 화살로, 우리 전통을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이번 회 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활쏘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들려준다. 국제신문 DB


1월27일[2월24일]

맑고 따뜻했다. 아침 식후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장흥부사(배흥립)를 심문조사한 뒤에 흥양현감(홍유의)과 함께 이야기했다. 경상우도순찰사(서성)가 들어왔다기에 오후 4시쯤 우수사(이억기)의 진으로 가서 만나보고 자정에야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가 화약을 훔치다가 붙잡혔다.

1월28일[2월25일] 맑음.

정오에 순찰사가 와서 활도 쏘고 이야기도 했다. 순찰사가 나와 활쏘기를 겨루다가 7푼을 졌는데 성난 기색을 보여 우스웠다. 순찰사의 군관 세명도 모두 지고 밤이 된 후에 취해서 돌아갔다. 우습다.

1월29일[2월26일]

종일 비가 왔다. 일찍 식사한 뒤에 경상도의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또 활쏘기를 했는데, 순찰사가 9푼을 지고 김대복이 일등을 했다. 피리소리를 듣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어두울 무렵 화약을 훔치다 붙잡힌 사도 사람이 도망갔다.

1월30일[2월27일]

비가 계속 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는 공무를 보고 군관들은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 여도만호 적량만호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에 청주 이희남의 종 4명과 준복이 들어왔다.

▲병신년(1596년)2월

휴전 같은 강화 상황이 장기화되자 좋지 않은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잦은 문책과 인사, 한산도 생활에 염증을 내고 진지를 이탈하려는 이억기의 시도, 여인들 문제 등. 그는 봄기운이 사람을 괴롭힌다며 자주 많이 땀을 흘린다. 그런 중에서도 백성을 해치는 관리들을 엄단함은 그의 철칙이다.

2월1일[2월28일]

아침에 흐렸다가 저녁나절에는 개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권숙이 이곳에 왔다가 취해서 돌아갔다.

2월2일[2월29일]

맑고 따뜻했다. 아들 울과 조기(趙琦)가 같은 배로 나갔다. 우후도 갔다. 저녁에 사도첨사(김완)가 와서 어사의 장계에 따라 파면되었다고 전하므로 바로 그에 관한 장계 초안을 작성했다.

2월3일[3월1일]

맑았으나 바람이 크게 불었다. 홀로 앉아서 아들이 떠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침에 장계를 수정했다. 경상수사가 보러 왔다. 그 편에 적량만호 고여우가 장담년(張聃年)에게 소송을 당한 것 때문에 순찰사가 그를 파면시키려 한다고 쓴 장계의 글을 보았다. 어두울 무렵 어란만호가 복병하고 있던 견내량에서 와서, “부산의 왜놈 3명이 성주의 항왜(降倭)들을 데리고 복병한 곳에 와서 장사하겠다 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래서 곧 장흥부사에게 전령을 내려 내일 새벽에 가서 타일러 쫓으라고 했다. 이런 왜놈들이 어찌 장사만 하고자 하겠는가. 틀림없이 우리의 허실을 엿보려 함일 것이다.

2월4일[3월2일] 맑음.

아침에 장계를 봉하여 사도 사람 진무성에게 부쳤다. 그 편에 영의정과 신식 두 집에 가는 문안 편지도 함께 부쳤다. 느지막에 흥양현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후에 활 10순을 쏘았다. 여도만호 거제현령 당포만호 옥포만호도 보러 왔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복병한 곳에서 돌아와 왜놈들이 도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2월5일[3월3일]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사도첨사 장흥부사가 일찍 왔기에 아침밥을 같이 먹었다. 식후에 권숙이 와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종이, 먹 2개, 패도(佩刀 : 휴대용 칼)를 주어 보냈다. 늦게 사도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위로연(사도첨사가 파면된 데에 관한 위로)을 베풀고, 겸하여 활을 쏘고 풍악을 잡히다가 모두 취한 채 헤어졌다. 웅천현감이 손인갑의 옛 여인을 데리고 왔길래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가야금 몇 곡조를 들었다. 저녁에 김기실이 순천에서 돌아왔는데, 그 편에 어머니가 편안하심을 알았다.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우수사(이억기)의 편지가 왔는데 약속한 기한을 늦추자고 하니, 한심하고 우스웠다.

2월6일[3월4일] 흐림.

새벽에 목수 10명을 거제로 보내 조선 기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침방의 천장에서 흙이 많이 떨어져 수리하도록 했다. 사도첨사 김완이 조도어사의 장계로 인해서 파면되었다는 정식기별이 와서 그를 본포(사도진)로 보냈다. 순천별감 유(兪)와 군관 장응진 등을 처벌하고 나서 바로 수루로 들어갔다. 송한련이 숭어를 잡아 와서 여도첨사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적량의 고여우가 큰 매를 안고 왔으나 오른쪽 발가락이 다 헐어 문드러졌으니 어찌하겠는가. 초저녁에 잠시 땀을 냈다.

2월7일[3월5일]

아침에 날은 흐리고 동풍이 크게 불었다. 몸이 좋지 않다. 늦게 나가서 군사들에게 음식을 풀어 먹였다. 장흥부사 우후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이야기하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2월8일[3월6일] 맑음.

이른 아침에 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벗겨 마름질했다. 늦게 손인갑의 옛 여인이 들어왔다. 한동안 지난 후 도철과 현응원을 불러들여 군사에 대한 일을 물어보았다. 저녁에 군량에 관한 장부를 정리하고, 흥양 둔전에서 추수한 벼 352섬을 받아들였다. 서풍이 크게 불어서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유황(柳滉)을 떠나보내려고 했지만 보내지 못했다.

2월9일[3월7일] 맑음.

서풍이 크게 불어 배가 다닐 수 없었다. 늦게 경상수사 권준이 와서 이야기하고 활 10순을 쏘았다. 저녁나절에는 바람이 그쳤다. 견내량과 부산에 있는 왜선 두 척이 견내량 쪽으로 나왔다는 정보를 듣고 웅천현감 및 우우후를 정찰하러 보냈다.

2월10일[3월8일]

날이 맑고 온화했다. 일찍 박춘양이 대나무를 싣고 왔다. 늦게 나가서 태구생을 처벌했다. 저녁에는 창고를 지을 장소를 직접 살펴보았다. 아침에 웅천현감 우우후가 견내량으로부터 돌아와서 왜놈들이 겁내어 떠는 꼴을 이야기했다. 어두울 무렵 창녕 사람(5일과 8일의 일기에 나오는 손인갑의 옛 여인인 듯함)이 술을 가져와 밤이 깊도록 마시다가 헤어졌다.

2월11일[3월9일] 맑음.

체찰사에게 가는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군량 대는 일을 맡고 있는 직책) 임찬(林瓚)이 소금 50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이 제주에서 돌아왔는데 제주 목사(이순신과 과거 동기인 이경록)의 편지와 박대남 김응수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늦게 장흥부사와 우우후가 왔기에 낙안군수와 흥양현감을 같이 불러 활을 쏘았다. 날이 막 어두워질 무렵에 영등포만호(조계종)가 그 소실을 데리고 술을 갖고 와서 마시기를 권했다. 어린아이도 왔는데 좀 있다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 이순신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던 조계종이 공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데려와 곁에 두게 하려다 해프닝으로 끝난 얘기임.

2월12일[3월10일] 맑음.

일찍 창녕 사람이 웅천현감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50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는데, 장흥부사와 흥양현감도 함께 쏘다가 어둘 무렵 헤어졌다. 어린아이가 다시 왔다가 밤 들기 전에 돌아갔다.

2월13일[3월11일] 맑음.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강진현감(이극신)의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첨사(이응표)는 미리 보고를 하고 늦게 왔으므로 타이르기만 하고 내보냈다. 영암군수(박홍장)를 파직시킬 장계의 초본을 작성했다. 저녁에 어란포만호가 돌아가고 임달영도 돌아갔다. 제주목사(이경록)에게 답장을 보내며 청어 대구 화살대 곶감 삼색부채도 봉해 보냈다.

2월14일[3월12일] 맑음.

늦게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본을 수정했다. 동복(同福)의 계향유사 김덕린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왔다. 낙안군수와 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쑥떡을 대접했다. 새로 지은 창고에 지붕을 이었다. 얼마 후 강진현감이 와서 인사하므로 위로하고 술을 대접했다. 저녁에 대나무 통을 이용하여 물을 부엌 가로 끌어들여 물 긷는 수고를 덜게 했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높이 수루에 와 앉아 있자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밤이 깊어서야 잠이 들었다.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7섬을 바쳤다.

2월15일[3월13일]

새벽에 망궐례를 올리고자 했으나 비가 와 뜰이 젖어서 거행하지 못했다. 어두울 무렵에 들으니, 전라우도의 항왜들과 경상도의 항왜들이 같이 짜고 도망갈 계획을 꾸미려 한다고 하기에 전령을 내어 그쪽에다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려내어 큰 살대 111개와 그다음 대 154개를 옥지(玉只)에게 내주었다. 장계 초안을 수정했다. 늦게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 거제, 당포, 옥포 우우후, 경상우후가 와 함께 만나고 돌아갔다. 순천 둔전에서 추수한 벼를 내가 직접 보는 데서 받아들이게 했다.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과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 등이 돌아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와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해 가지고 왔다. 이날 밤 달빛이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서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이 취해 노래를 불렀다.

2월16일[3월14일] 맑음.

아침에 장계 초본을 수정했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부사 우우후 가리포첨사가 와서 함께 활을 쏘았다. 요전번 승부내기에서 진 군관들이 한턱을 내기에 다들 취해서 헤어졌다. 이날 밤은 너무 취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새벽이 되었다. 봄의 노곤함이 이렇구나.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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