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숨어 살다 자수한 폭탄 테러범… 그들은 왜 '전범 기업'을 노렸나

최진주 2024. 1.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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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
49년 만에 입원 도중 신원 밝혀
"마지막은 본명으로 죽고 싶다"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의 본사와 공장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조직원 기리시마 사토시를 자처한 인물이 지난 25일 자수했다. 사진은 26일 일본 도쿄 주오구의 한 지하철역에 붙어 있는 기리시마(오른쪽 인물 사진)의 수배 전단. 도쿄=AFP 연합뉴스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의 본사와 공장을 잇따라 폭파했던 무정부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이하 무장전선)’의 조직원이 수배된 지 반세기 만에 자수했다. 무장전선은 한반도와 아이누를 침략해 식민지화했던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을 “아시아 침략에 가담한 곳”이라며 공격 표적으로 삼았던 단체다.

28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한 한 남성은 지난 25일 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이 무장전선 조직원이었던 기리시마 사토시(70)라고 밝혔다. 말기 암으로 매우 위독한 상태인 그는 평소 사용하던 가명으로 건강보험증 없이 입원했지만, “(삶의) 마지막은 본명으로 맞이하고 싶다”며 이를 경찰에 알리라고 말했다.

일본 경시청 공안부가 접촉한 결과, 이 남성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건 정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리시마 본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경시청은 가족과의 DNA 대조 등을 실시해 진범 여부를 확인하고, 약 50년간의 도피 생활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다. 기리시마의 공소시효는 정지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처벌은 가능하지만, 병세가 매우 위중해 구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토목회사에서 가명으로 수십 년 일해

일본 경찰은 1975년 5월 19일 무장전선 주요 멤버를 체포한 후, 도주 중이던 기리시마를 49년 동안 찾아 왔다. 지금까지도 일본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엔 기리시마의 흑백 사진이 실린 지명수배 전단이 붙어 있다. ‘키는 160㎝ 정도로 심한 근시에 입술이 약간 두꺼운 편’이란 설명도 있다. 사람들은 그가 반세기 동안 체포되지 않은 이유를 ‘해외 도피’로 여겼으나, 실제로는 수도권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한 토목회사에서 수십 년간 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기리시마를 자처한 남성은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회사에서 가까운 오래된 2층짜리 목조 주택에 혼자 살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70세 남성은 그에 대해 ‘말수가 적고 주변과 교류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달 전 만났을 땐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의 본사와 공장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조직원 기리시마 사토시를 자처한 인물이 지난 25일 자수했다. 사진은 일본 경찰청에 지명수배된 기리시마 사토시. 일본 경찰청 제공·교도 연합뉴스

일제 침략과 식민 지배로 성장한 기업들 표적 삼아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8명이 사망하고 380명이 다쳤던 ‘미쓰비시중공업 폭파사건’(1974년 8월 30일)을 시작으로, 1975년 5월 19일 주요 조직원이 체포될 때까지 미쓰이물산, 테이진(帝人)중앙연구소, 다이세이건설, 가시마건설, 주식회사 하자마, 한국산업경제연구소, 오리엔탈메탈 등 일본 기업의 본사와 공장에 연속 폭탄 테러를 일으킨 급진 무장단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힘입어 성장한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국제 테러까지 벌였던 일본 ‘적군파’ 등 다른 극좌파 단체와 달리, 무장전선은 중앙 조직이 없고 기존 좌익 정당과의 연결도 없는 대학생이나 회사원들이 결성했다. 내부에는 ‘늑대’ ‘대지의 송곳니’ ‘전갈’ 등 세 그룹이 있었으며, 이 가운데 ‘전갈’에 속했던 기리시마가 한국산업경제연구소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시켰다. 이 연구소는 무장전선이 ‘일본 전범 기업에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지목했던 곳이다.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연속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을 다룬 김미례 감독의 영화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포스터. 2020년 개봉됐다.

"일제에 반대하지 않은 일본 대중도 단죄해야"

낮에는 평범한 학생이나 회사원으로 살았던 무장전선 조직원들은 한반도와 아이누 민족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학습하면서 독자적 반일 사상을 형성했다. 그러다 ‘일제 침략에 대한 반대 투쟁을 하지 않는 일본 대중도 일본 제국주의 구성원이므로 단죄해야 한다’는 사상을 갖게 됐다. 이 같은 사상은 미쓰비시중공업 테러 후 다수의 사상자가 나오자 “숨지거나 부상한 사람은 무고한 일반 시민이 아니다. 식민자이다”라고 정당화한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1975년 대다수 조직원이 체포된 후엔 재판이나 저작물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표명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무장전선의 테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이 기리시마에게 이런 테러를 벌인 이유를 밝히고 사죄할 것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기리시마의 상태가 위중해 추가 진술이 가능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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