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에 빠진 한국, 근시의 덫에 걸렸다…“시력 장애 사회적 부담될 것”

김명지 기자 2024. 1.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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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한국근시학회 창립기념 학술심포지엄
10년 전 19세 서울 남성 96% 근시
“늘어난 망막 초고도 근시 수술 어려워”
눈알이 난로 위 떡처럼 부푼 경우도
27일 서울 연견동 서울대병원에서 한국근시학회 창립기념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지난 2015년 중국 소아청소년 근시 실태를 다룬 국제학술지 네이처 논문에서 안경을 쓴 사진이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명지 기자

지난 2012년 국제 안과 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을 두고 국내 안과 의사들은 깜짝 놀랐다. 병무청의 2010년 신체검사 결과를 분석한 논문인데, 서울에 사는 19세 남성의 96.5%가 근시가 있다는 내용이다. 논문을 보면 대상자 가운데 고도근시는 21%에 달했고, 제주도 병무청 신체검사에서도 근시 비중은 83%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올해부터 공군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군사관생도 선발 신체검사 항목에서 시력 기준을 대폭 낮췄다. 시력을 안과 굴절률로 측정하는데, 종전 기준인 ‘-5.50D(디옵터)~+0.5D’에서 ‘-6.5D~3.00D’로 완화한 것이다. 굴절률은 수정체를 통과하는 빛이 굴절되는 정도인데 마이너스(-)가 클 수록 근시, 플러스(+)가 크면 원시다.

◇ “초고령사회, 근시가 사회적 문제 될 것”

지동현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안과 교수는 27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한국근시학회 창립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이런 사례를 공유하며 “근시는 실명으로 이어지는 황반변성, 녹내장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고도근시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근시(近視) 는 가까운 거리는 잘 보이는데, 먼 곳은 잘 안 보이는 상태다. 사람의 눈은 망막에 사물의 초점을 맞춰서 사물을 인식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안구가 길어지면 초점이 망막에 앞에 맺히면서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다.

근시가 생기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라식 라섹 등을 통해 빛의 굴절을 조절해 시력을 교정한다. 이 때문에 근시가 질환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고도근시조차 병원에서는 질병코드가 없다.

그런데 근시가 있으면 백내장과 녹내장이 생길 가능성이 3배는 높아지고, 시력 저하를 넘어 눈이 멀어버릴 수도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서울대병원 정진욱 교수는 “근시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고도근시는 녹내장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내장은 눈으로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시야가 좁아지다가 실명하는 병이다. 그런데 시야가 좁아져 녹내장을 의심해 대학병원에 왔다가, 고도 근시를 진단받는 경우가 속출한다는 것이 정 교수 설명이다. 정 교수는 근시로 인해 녹내장을 비롯한 다양한 안과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시각 장애로 이어지면 큰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시의 진행/ 세브란스병원 제공

근시가 고도근시에서 초고도근시로 진행되면, 안구가 점점 길어지면서 망막이 늘어나고, 얇아진다. 이 경우 안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고,안질환이 발병했을 때 치료도 어렵다. 이날 기조 연사로 참석한 일본 도쿄 의과치과대학 오노 마츠이 교수는 안구가 길어지다 못해 망막이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후포도종 사례를 공유했다. 오노 교수는 일본근시학회 회장이다.

오노 교수가 공유한 고도근시 환자의 눈은 화로 위에 올린 떡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망막이 삐져나온 상태였다. 이 경우 망막박리, 즉 망막이 찢어지거나 황반변성으로 실명하게 된다.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성경림 교수는 “(안질환 수술을 할 때) 고도근시라고 해도 망막의 두께가 적정 수준을 유지하면 수술이 가능한데, 망막이 얇아진 환자는 손 쓸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 “책 많이 읽고 스트레스 받으면 근시 심해져”

근시는 과도한 독서, 게임을 해서 너무 가까운 물체를 지속적으로 보거나, 야외 활동이 부족할 때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는 어릴 때 스트레스가 근시를 일으킨다는 가설도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박혜영 교수에 따르면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근시 유병률이 높았다.

27일 서울 연견동 서울대병원에서 한국근시학회 창립기념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김명지 기자

안구는 망막을 중심으로 여러 층의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그 모양을 유지한다. 망막을 감싸는 막이 두꺼우면 안구가 늘어나 망막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막아주니, 근시로 덜 진행된다. 그런데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이 막이 얇아지면서 약해지고, 망막이 늘어난다. 박 교수는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근시가 진행될 수도 있다”며 “고도근시로 진행된 환자 연구를 보니, 스트레스에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서 공부를 줄이고 밖에서 뛰놀라는 정책은 소용이 없을 수 있다. 싱가포르 대만 일본 정부는 어린이 근시를 줄이기 위해 야외활동을 권장하고, 중국은 교실 창문을 통창으로 바꾸는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열 중 여덟에서 아홉 정도가 여전히 안경을 쓴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근시를 줄이는 의료기기까지 나왔다. 눈에 좋은 적색광선을 하루에 두 번 3분씩 쬐는 기기인데, 중국과 홍콩에서 의료기기로 허가받아 사용되고 있다고 허밍광 홍콩과기대 교수는 말했다. 허 교수는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줄면서, 바깥 활동 없이 근시를 조절할 방법을 다방면에서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근시학회 회장인 서울대병원 박기호 안과 교수는 “근시를 일으키는 위험 인자를 밝혀내, 실명과 시력 장애를 예방하는 일은 전세계 안과의사 모두의 숙제다”라고 말했다. 중국, 싱가포르, 일본, 대만 정부는 근시 예방과 위험인자 발견 연구를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청소년 근시 유병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근시에 대한 통합 연구는 없었다.

한국근시학회는 근시로 인한 시력장애와 실명을 예방하기 위해 안과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학술단체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각막, 백내장, 굴절, 녹내장, 망막, 포도막, 전기생리, 검안 등 세부 전공 안과 의사들이 모두 참가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5년 앞선 지난 2018년 근시학회가 창립해 연구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도 근시 유병률이 높은 한국에서 근시에 대한 대규모 통합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는 물론 근시관련 국제 유관학회와 협력해 공동연구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시학회는 올해 상반기 중에 다기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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