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기획 창, ‘윤비어천가’…엑스포 실패 잊고 ‘순방외교’ 찬사 만발
KBS 시청자위 “노골적 정권홍보 방송” 질타
한국방송(KBS)의 간판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원팀’)편(2023년 12월26일 방송)을 두고 시청자위원회에서 “노골적인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한국방송 시청자위원들은 해당 다큐에 대해 “어느 방송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할 공영방송의 역할과 사명을 저버린 일방적인 정부 홍보”라며 “국민의 방송 케이비에스는 ‘윤비어천가’라는 평가를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26일 공개된 지난 18일치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11장(30∼41쪽)에 걸쳐 ‘원팀’ 다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케이비에스가 정부 홍보 방송이라는 오명을 받는다”라며 입을 연 최경진 시청자위원장은 “국정 홍보 채널인 케이티브이(KTV)에서나 내보낼 만한 성격의 내용이 공영방송 케이비에스에서 버젓이 방송되었다는 사실에 허탈감,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공정성, 중립성, 다양성 등 공영방송이 중시하는 가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은 17년 넘게 한국방송 1티브이(TV)에서 방영 중인 ‘시사기획 창’의 448번째 회차로 지난해 내내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국외 순방을 다뤘다.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부터 12월 네덜란드까지 13번 출국해 15개국을 누빈 윤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의 여정이 줄기차게 묘사되고, 대통령과 정부, 기업이 ‘원팀’으로 움직이는 ‘세일즈 외교’가 국제 사회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중이라 평하며 그 성과와 당위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다큐를 향한 비판의 한 축은 내용과 형식 모두 최소한의 균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 위원장은 “세일즈 외교 그 자체의 필요성에는 이의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50분에 이르는 방송시간을 친정부적 기조에 치우친 인사들의 주장과 희망사항으로 채웠다”라고 짚었다. 아울러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한 ‘탈중국 미국 편향’ 외교 통상의 불편한 진실과 그로 인한 코리아 리스크 내지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문제들은 없고, 정부 업적만 부각했다”고 평했다.
‘원팀’에는 21명의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학자부터 기업인, 외국의 시민들까지 하나같이 윤 대통령의 순방 외교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진임 시정자위원은 “해외 순방 목적 중 하나였던 엑스포 유치 실패, 기업 총수들과 술자리 논란 등 비판 지점이 있었지만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명희 위원은 “의견이 다른 경제학자의 의견, 양 국가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양해각서(MOU) 외에 실질적 성과 등을 더 보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지회는 방송 직후 성명을 통해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해외 순방 성과만을 무비판적이고 일방적으로 보도한 ‘받아쓰기’식 구성”이라고 비판했다. ‘시사기획 창’을 담당하는 시사제작2부의 평기자들 역시 같은 날 사내 게시판에 성명을 올려 “최소한의 균형이 필요했다. 길거리 외국인의 의례적인 공치사와 따라 나선 기업의 장밋빛 기대뿐 아니라 탄탄한 논거와 예상 반론을 성실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며 “제작진의 자부심은 무너졌다”고 했다.
비판은 제작 과정과 경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한국방송지부는 당시 성명에서 “시사제작2부 최성원 부장이 직접 제작한 아이템인데 부서원들도 예고편이 나가기 전까지 내용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깜깜이식 제작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시청자위에서도 방송에 8번이나 등장하는 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방영 직후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발탁된 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주요 인터뷰이로 나오는 점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실과 제작 과정에 조율이 있었는지”를 추궁했다.
시청자위에 출석한 최성원 부장은 “통상적인 사전 취재, 발제, 작성, 1·2차 데스킹 과정을 거쳐 제작된 것”이며 “대통령실과 사전조율은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공정성 논란’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홍보와 찬양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원팀이 세계 무대를 상대로 펼치는 세일즈 외교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답했다. 최 부장은 “제작진은 단 한번도 한국방송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방송으로 지적받은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 ‘시사기획 창’ 제작 경험이 있는 입사 10년 차 이상의 한 한국방송 기자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장 제작이 통상적이지는 않지만, 최 부장도 얼마 전까지 부서원이었으니 연말 편성이 비어 급하게 맡았을 수는 있다”면서도 “문제는 방송의 수준이다. 다큐 프로에는 일반적인 뉴스 리포트보다 폭넓은 자율성이 있지만, (홍보가 아니라는) 해명에 동의하기 어렵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정권 찬양 방송으로 인식하는 것 아닌가. 너무 수치스럽다”라고 말했다.
최 부장의 해명을 들은 최 위원장은 “시청자들이 방송을 본 뒤 거부감을 느끼고 격하게 표출한 것은 사실이다”라며 “‘시사기획 창’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원팀’은 본방송을 포함해 다시보기로 7∼8번 봤다. 정말 객관적이고 사심 없이 보려고 노력했으나 이것은 케이티브이에나 나올 그런 것이지, 케이비에스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방송본부 노조는 다음 공정방송위원회 회의에서 ‘원팀’의 제작 경위·과정 등에 대해 사 쪽을 상대로 검증에 나설 예정이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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