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조바심 낸다고 굳은살이 생기진 않는다

이지혜 기자 2024. 1. 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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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기타 레슨을 한 주 쉬었다. 내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면 기타를 배우고 처음 있는 일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날짜를 바꾼 적은 있어도 한 주를 통째 건너뛴 적은 없는데.

지난 월요일,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려는데 허리가 찌릿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허리 디스크로 몇 번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특별히 무거운 걸 들거나 한 것도 아닌데 최근 부쩍 늘어난 몸무게 탓인가. 오후부터는 다리가 저리더니 급기야 앉아 있기도 힘들어졌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누워 있는 수밖에.

누워 있자니 스마트폰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여러 밴드의 연주 영상을 소개했다. 차례로 보고 있자니 ‘나는 언제 저렇게 치지.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에 불쑥 짜증이 밀려왔다.

마음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속상한 요즘이다. 누워 있을 때가 아닌데, 기타 레슨도 연습도 못 하고 있으니 더 짜증이 났다.

몇 주 전, 그러니까 2023년 말의 일이다. 기타 선생님이 갑자기 “D코드 잡아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만 주야장천 연습했더니 G-Em-Am7-D7 외에 다른 코드를 까먹은 것이다. 아니 D7 코드는 기억하면서 D코드는 기억 못 하다니.

심지어 D7코드를 잡아보라는 기타 선생님 말에는 G-Em-Am7-D7 코드를 순서대로 잡아보고 나서야 겨우 D7을 잡았다.

마치 연말 결산을 준비한 것처럼 선생님은 내게 몇 가지 코드를 더 잡아보라고 했다가 곧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선생님을 따라 다시 코드를 잡아봤지만 마치 나는 난생 처음 본 코드인 양 우왕좌왕했다. “기타 줄이 안 보여서 못 잡는 척하지 말아요.” 또 한소리 들었다.

마흔이 넘으니 총기가 떨어지는 걸 확실히 느낀다. 어릴 땐 한두 번 보고도 잘 외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외워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까먹는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해질수록 게을러지기까지 한다. 총기가 떨어졌다는 것도 게으름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외우고 익히기를 게을리했으니 완벽하게 외우지 못하고 자꾸 까먹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기타 연습을 하겠다고 무리해서 자리에 앉았다가는 허리가 더 안 좋아져 회복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유튜브를 보다 문득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내 손끝을 봤다. 많이 거칠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시멜로 같은 내 손끝이 굳은살로 좀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손가락 힘이 부족하고 피부는 약하고 탄력이 없어서 소리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코드를 잡는 왼손 끝에 굳은살이 생기면서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기타를 배운 지 1년. 그 시간 동안 연습으로 쌓인 결과다.

‘피부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굳은살을 만들어야 해. 반드시 만들고 말겠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역시나 조바심 때문에 무리를 했다가 어딘가 탈이 나 포기했을 수도 있다.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레 굳은살이 생길 거야. 그때까지 버텨보자’라는 생각이었다.

마흔, 삶의 중반쯤에서 여러모로 지금 내게 필요한 자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 당장은 아픈 허리 회복이 급선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러 기타리스트의 화려한 연주를 보면서도 짜증이 덜해졌다.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조금씩 굳은살이 생긴 것처럼 그렇게 나아가면 된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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