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쫓고 거북 살려서 이어온 절, 치악산 ‘구룡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2024. 1. 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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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강원도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668년 통일신라대 창건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100곳의 사찰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열한 번째 방문지는 강원도 원주시에 자리잡은 구룡사입니다. 〈편집자 주〉
구룡사 대웅전과 석탑

『너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너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어느 절 입구 돌에 새겨진 글귀였다. 현재를 알고자 한다면 과거를 보고,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현재를 보라고 한다. 불교의 인과론(因果論)이나 기독교의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처럼 ‘좋은 일을 하면 선이 따르고, 나쁜 일을 하면 악이 따른다’는 분명한 이치가 우리 사회에도 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미래도 신뢰하지 말고 죽은 과거는 묻어버리고 오직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고 말했다. 오늘의 내 행동이 나의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인과론과 뉘앙스는 다르지만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024년 청룡의 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고민을 품고서 치악산에 터를 잡은 구룡사(龜龍寺)로 향했다.

용(龍)과 거북(龜)은 물을 상징하는 영적 힘을 가진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 둘을 함께 그린 ‘길상의 상징’ 용구도(龍龜圖)가 있고 집을 지을 때 상량문의 양쪽에 용과 거북을 써 넣기도 한다. 용은 십이지신 열두 동물 중 유일한 전설 속 동물로 동양에선 왕을 상징하며 출세와 행운, 재앙을 막고 복을 준다고 여겨진다. 반면 서양에선 방해꾼 이미지가 있다. 영웅의 용맹함을 강조할 때, 종종 용과 맞서는 상황이 묘사되곤 한다. 거북은 용왕의 사자로서 재물과 풍요를 상징하고 장수와 지혜의 동물이다. 그러나 묘하게 용은 전설 속의 미래를, 거북은 현실 속의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용과 맞서 지은 절, 구룡사
구룡사로 통하는 일주문. 현판에 적힌 원통은 '둥글게 통한다'는 뜻이다.

치악산 북쪽 능선 밑에 자리잡은 구룡사는 ‘원주 8경’ 중 1경으로 꼽힌다. 조계종 월정사(月精寺) 말사이기도 하다. ‘둥글게 통한다’는 원통문(圓通門) 현판이 걸린 일주문(一柱門) 기둥에는 ‘천겁(千劫)의 세월이 옛되지 않고 만년의 세월이 지나도 항상 지금과 같아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금의 이 모습이 가장 최상이고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구룡사는 통일신라기인 66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고찰(古刹)인 만큼 얽힌 설화가 전해진다. 지금의 절터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깊은 연못이었는데 의상이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이를 막기 위해 뇌성벽력과 함께 비를 내려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의상은 직접 그린 부적을 연못 속에 넣어 연못물을 마르게 했는데, 용 한 마리는 눈이 멀었고 나머지 여덟 마리는 구룡사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도망쳤다. 물과 비를 다스리는 신성한 존재지만 방해꾼이었던 용에 맞서 이겨내고 창건된 절이라는 것이다. 동서양의 용의 이미지가 묘하게 결합된 분위기다. 이러한 연유로 초기엔 아홉 구(九)를 써서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도선(道詵)·무학(無學)·휴정(休靜) 등 여러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방 수찰(首刹)의 지위를 지켜왔으나 조선 중기 이후 사세가 기울어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어떤 노인이 이르기를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쇠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고 하여 거북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효과가 없자 거북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절 이름에 거북 구(龜)자를 넣어 구룡사(龜龍寺)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아홉 마리의 용을 쫒아내고, 거북바위의 혈을 끊었다 다시 살린 절인 까닭일까, 거대한 사천왕문 입구에는 부처상과 거북상이 함께 있었다.

구룡사의 부처상과 거북상
치악산 소나무의 무단벌채를 금한다는 표식인 황장금표. 돌에 글자를 새겨놓았다.

버스 종점이자 입구 주차장을 바로 지나면 조선시대에 세운 황장금표(黃膓禁標)가 있다. 치악산 일대엔 예로부터 안쪽이 누렇고 단단한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이 많았는데 무단벌채가 잦아지자 경고하는 표시로 세워둔 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조선의 황장금표라고 한다. 올라가는 길목에 곧게 자란 소나무 군락이 아름답다. 생태학습원과의 갈림길을 지나면 우측에는 일주문과 도로길, 좌측에는 계곡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인 ‘황장목 숲길’이 구룡사 앞까지 이어진다.

2층 누각인 보광루

절 입구에는 200여년 이상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화석나무’란 이름으로 앞마당을 지키고 있으며 2층으로 지어진 웅장한 규모의 사천왕문이 객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천왕상과 눈을 마주쳐야 ‘치악산 구룡사’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보광루(普光樓)를 만나고 대웅전 앞마당이 펼쳐진다. 보광루 2층 마루에 깔린 멍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이란 얘길 들었는데, 방문했을 땐 따로 보관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웅전은 조선 초기 개축된 건물로서 문화재로 되어있지만 2003년 화재로 소실되어 복원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의 ‘삼장보살도’도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근래 들어 보광루와 관음전, 심검당, 요사채, 삼성각 등을 보수 단청한 모양이었다. 당우들이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앞마당 석탑에는 즐비한 소원문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불음각(佛音閣)은 타종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 있는 ‘차와 이야기’라는 정자는 찻집인지, 차담 공간이지 모르겠으나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겨울엔 모든 것이 월동하듯 절집도 한적한데 공양간만은 템플스테이 방문자들 덕분에 활기가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차린 것이 없어도 절밥은 희한하게 맛이 있다.

구룡사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는 전망대 타워. 안에는 카페와 삼철불전이 있다.
타워에 마련된 삼천불전. 말 그대로 3000여개의 부처상을 모시는 공간이다.

일주문 방향으로 찻길 따라 내려가다 보니 길가에 국사단(局司壇)이 있다. 뭔고 보니 ‘사찰을 화재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귀신을 봉안한 곳’이라고 한다. 의승장이었던 ‘무총대선사탑’(부도탑)을 지나니 높이가 30m 이상은 됨직한 전망대 타워가 서 있고 마당에는 하늘로 솟구치는 용을 본뜬 동상이 있다. 최근 문을 열었다는 한을카페와 삼천불전이다.

카페에서는 치악산 뷰를 360도 전방위로 감상할 수 있다. 카페를 통해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삼천불을 모시는 공간이 있다. 아직은 많이 비어 있어 불상 봉안 안내문이 놓여 있다. 그 높이와 멋진 건물 형태가 치악산의 명물로 자리 잡아갈 것 같다. 카페에서 10여 분 정도 내려오니 버스종점(주차장) 앞에 도토리무침, 김밥, 막걸리 등을 파는 주막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쌓아 올린, 치악산 미륵불탑
구룡사에서 바라본 치악산

치악산 정상 비로봉(1288m)에는 용왕탑, 산신탑, 칠성탑으로 이름 붙여진 돌탑 3기가 있다. 원주에서 제과점을 하던 사람이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권유로 비로봉 정상에 1962년부터 5층으로 된 돌탑 3개를 혼자 쌓았다고 한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길 바라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최대 상징물이라 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복원을 거듭했다.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철제 그물망을 둘러놓은 상태다.

구룡사까지 왔다면 마땅히 이 세 개의 돌탑을 둘러봐야 했다. 구룡사 주차장에서 세렴폭포를 지나 비로봉까지 왕복 9Km, 5시간이면 원점 회귀할 수 있다고 하나 비로봉에서 구룡사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유명하다. 치악산은 설악산, 월악산과 함께 ‘3대 악산’으로 꼽힌다. 기암괴석과 암봉들로 절경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등산로가 험하기도 하다. 동절기엔 세렴폭포부터 오후 1시 30분 이후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잔설이 깔린 바닥이 미끄러웠고 시간도 넉넉지 않아 등반은 무리라고 내심 생각했는데, 핑곗거리가 생겨 포기했다. 꼭 다시 찾기로 다짐하면서.

전망대 타워에서 바라본 치악산 산세

치악산은 단풍이 들면 산 전체가 붉게 변한다 하여 붉을 적자를 써서 적악산(赤岳山)이라 했다. 그러다가 뱀에게 잡혀 먹히려던 꿩을 구해준 선비가 뱀에게 위험에 처하자 그 꿩이 자신을 구한 은혜를 갚아 선비가 목숨을 건졌다는 ‘은혜 갚은 꿩’ 전설로 꿩 치(雉)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했다. 실제로 치악산에는 뱀들이 많고 까치살모사까지 서식한다. 날짐승이지만 목숨으로 보은한 꿩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선비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살았는데 바로 치악산 1100m 고지에 있는 상원사다.

치악산은 옛부터 원주의 진산(鎭山, 각 고에 있는 큰 산)이었다. 주변 고봉들 사이에 가파른 계곡들이 자리해 예로부터 산세가 뛰어나고 험난하기로 이름 높았다. 영서지방의 명산으로서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신세대’ 주지스님과 불교의 명상문화

스님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이곳에서 맛볼 수 있었다. 구룡사의 해공 주지스님은 커피 마니아라서 차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커피를 내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방 안에 예쁜 앰프가 보이기에 물었더니 팝송 신청곡까지 받아 틀어주었다. ‘신식스님’이라고 했더니 웃어넘긴다. 만들고 고치는 것을 좋아해서 승가대학생 시절엔 숙소의 컴퓨터들을 대부분 고쳤다고도 자랑(?)했다. 세속 나이로 50대 중반은 넘어 보이지만, 젊은층 포교에 관심이 있다 보니 최신 트렌드나 각종 뉴스나 정보도 잘 접하고 있어 일반인들과 일상대화에 거리감이 없어 보인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부딪혀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서 “부딪혀 봐야 길이 보이고 단순화, 객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

불교가 템플스테이를 통해 일반인과 절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왔는데, 최근에는 불교적 관점에서 명상의 길을 찾고 폭넓게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파편화,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대중적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다.

해공스님은 “요즘 명상이 유행이다. 잠깐 마음을 쉬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끊어주는 방식의 명상이 현재의 주류인데 이제는 생활 속에서 하나 되는, 녹아드는 명상문화가 필요하다. 불교가 그러한 명상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진우 총무원장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를 K-명상 확산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좋은 명상문화 보급을 통해 국민 정신 건강에 기여하고 좀 더 가까이 소통하는 불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교문화 유산,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구룡사 입구에 걸려 있었다. 불교가 현대적 언어로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치악산은 횡성역에서 12km, 택시로 30여 분, 만종역에서는 40여 분이면 갈 수 있다. 계단이 너무 많아 치가 떨리고 악이 바친다고 해서 치악산이라 했던가? 삶에 지루함이 느껴지면 ‘현재’를 더욱 역동적으로 살기 위해 치악산에 올라 전설을 간직한 1100고지의 상원사도 들르고 비로봉 정상 미륵불탑 앞에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리라.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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