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랑한다고 말해줘' 정우성 "50대 멜로…부담감에 금주했죠"

조은애 기자 2024. 1. 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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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스튜디오지니, 스튜디오앤뉴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고전의 가치는 영원하고, 좋은 작품은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배우 정우성은 최근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명제를 몸소 증명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얼어붙은 극장에 훈풍을 몰고 왔고, 정통 멜로는 더 이상 흥행하기 어렵다는 편견 속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엔 유행보다 소신을 따른 정우성의 뚝심이 있었다.

지니TV 오리지널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정우성)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신현빈)의 소리 없는 사랑을 그린다. 일본 TBS텔레비전이 제작하고 키타카와 에리코가 각본을 쓴 동명의 TV 드라마가 원작이다. 작품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정우성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대가 허락한 작품이죠. 13년 전쯤 이걸 하겠다고 했더니 '3부부터는 목소리 좀 들리게 하죠, 말을 해야 드라마지' 그런 얘기가 나오기에 접었어요. 이제 이런 작품을 받아줄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제작 환경이 받쳐줬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왜 우리는 팀장님과의 멜로만 그릴까?', '멜로물은 왜 신데렐라 콤플렉스만 사용할까?' 그런 생각 끝에 선택한 작품이에요. 확실히 저는 시장 주류 안에 머무르기 싫어하나 봐요.(웃음)"

진우는 청각장애를 가진 화가다. 어릴 적 앓은 열병으로 청각을 잃은 그에게 그림은 세상의 전부이고, 고요함은 작품의 원천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모은은 진우의 소리 없는 세계를 뒤흔들고 거대한 변화를 몰고온다.

"50세의 멜로가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진우는 다른 배우를 시켜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죠. 제가 맡으면 진우 나이가 올라가고, 그에 맞는 모은을 택하는 데도 나이 차이에 제약이 생기니까요. 근데 처음 이 판권을 가져올 때 '정우성씨라서 드린다'는 말을 들었고, 직접 가져온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있었어요. 저도 50대가 가까워지니까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금주했어요. 처음 촬영하는데 말로 형용하기 힘든 피로감이 진우 얼굴에 잔뜩 씌워져있더라고요. 그걸 걷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 금주여서요. 그 외에 어리고 예뻐 보이는 후작업은 하나도 안 했어요. 헤어스타일이든 피부든 자연스러워야 더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진우를 완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수어였다. 정우성은 음성 언어 대신 스쳐지나가는 표정과 눈빛, 손짓 하나에도 마음을 싣기 위해 매 순간 집중했다. 진우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도 절제된 표정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수어가 어려웠어요. 굉장히 직관적이라 처음엔 '금방 대화하겠네' 싶었는데 손 위치나 방향에 따라 비슷해보여도 전혀 다른 의미가 있어서 점점 어렵더라고요. 연기를 위해 급하게 외웠는데 마치고 나니 굉장히 매력적인 언어를 맛본 느낌이에요. 특히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동시에 모든 표현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요. 작품에서 '무슨 소리가 제일 듣고 싶냐'라는 질문에 '난 소리를 몰라서 듣고 싶은 소리가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저도 진우를 연기하면서 '불편하겠다' 싶었지만 그건 제 생각일뿐이죠.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무려 11년 만의 멜로였다. JTBC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이후 실로 오랜만에 짙은 감성 연기에 도전한 정우성은 변함없이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마지막까지 '용두용미'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편하고 빠른 요약본만 찾는 시대,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경쟁력은 오히려 느리고 깊은 감정이었다. 철 지난 장르라는 우려를 안고 시작했지만 정우성은 작품 고유의 색깔과 속도를 밀어붙여 끝내 클래식 멜로의 매력을 설득시켰다.

"'처음 대본 회의할 때 '사건이 부족하다, 상황을 더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근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갈등하고 힘들어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다 사건이지 않나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또 행복할 수 있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의 무게, 사유의 깊이를 담고자 했기 때문에 악인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보가 넘치는 시대라 뭐든 '빨리 돌려보기'하고, 시작과 결과만 알고 싶어 하지만 그게 답은 아닐 거예요. 반대급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이야기 특성상 빨리 돌려볼 수 없는 작품이라 동료들의 지지와 믿음이 필요했어요. 소비냐, 소유냐의 문제죠. 소비하고 빨리 잊히는 드라마가 되느냐, 시간이 걸려도 계속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되느냐의 차이인데 저는 당연히 후자를 선호하지만 양쪽 다 가치가 있고 편중되지 않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서울의 봄'에 이어 '사랑한다고 말해줘'까지 정우성은 지난해 연말부터 누구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TV나 극장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만 찾는 시대, 세고 자극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두 작품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으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채웠다는 호평과 함께 50대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열었다. 그는 "마지막 천만 배우가 아니길 바랄뿐"이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서울의 봄'은 이렇게 장기 흥행할 줄 몰랐어요. 요즘 영화인들의 가장 큰 목표가 손익분기점 넘기는 건데 저희도 마찬가지였죠. 근데 시대가 선택해준 거예요. 어제 마지막 감사 무대인사 돌면서 농담으로 '새내기 천만배우 정우성'이라고 소개했는데 사실 이건 제 천만이 아니라 영화의 기록이에요.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는 또 다시 바닥에서 시작해야 해요. 매번 결과를 목표로 할 순 없고요. 그러고 보면 천만은 정말 행운이었죠. '서울의 봄'은 수많은 분들과 협업한 작품이라 흥행에 더욱 감사했지만, 솔직히 '나도 이제 천만배우다!' 그런 즐거움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해줘'에 대한 뿌듯함이 더 커요. 이런 장르와 소재에 호평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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