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의 뚝심으로 일군 클래식 사랑

리빙센스 2024. 1.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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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의 뚝심으로 일군 클래식 사랑,
메세나의 참뜻 살리는 계기

문화를 향한 사랑을 나누고 전파하는 일에 관하여.

리코더 연주자 안토니니와 협주 중인 아비 아비탈.

'3만5000원으로 보여준 따뜻한 위로'. 12월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화클래식 2023>에서 소개된 조반니 안토니니Giovanni Antonini 가 이끄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il Giardino Armonico와 클래식계의 맹아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Avi Avital의 공연 얘기다. 바로크 이전 시대 현악기의 원조 류트에서 파생된 만돌린은 이스라엘 출신 연주자 아비탈을 만나기 전에는 수 많은 바로크 현악기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젊은 아비탈은 협주 악기 또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에도 참여하지 못한 서민 악기 만돌린을 당당히 '독주 악기' 반열로 끌어올렸다. 사실 연주자들의 이러한 시도는 마치 우연처럼 등장하지만 클래식계에선 뉴트렌드로 자리 잡기도 한다. 전설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같은 명곡을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안드레 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는 기타를, 게리 카Gary Karr는 콘트라베이스를,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는 클라리넷을, 유리 바슈메트Yuri Bashmet는 비운의 악기 비올라를 당당히 독주 악기로 재창조했다.

몇 해 전 세계적인 클래식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코부즈에 새로운 음반으로 소개된 아비 탈의 <비트윈 월드Between World>는, 만돌린만의 장점을 극대화한 곡들이 수록돼 마니아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그가 도이체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의 전속 계약자가 돼 벌써 6장 이상의 음반을 발매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이런 연주자의 공연을 전석 3만5000원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소중한 행복'에 다름 아니다. 공연 하루 전 24시간 동안만 티켓 오픈을 했음에도 전석 매진에 만석을 이룬 것만 봐도 그렇다. 공연 프로그램도 정통 바로크 작품인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의 곡부터 바흐까지, 바로크 합주곡부터 하프시코드 협주곡 등을 만돌린 협주곡으로 편곡한 작품 등으로 채워 대중 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다.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는 창간 40년을 앞둔 앙상블답게 단원들 간의 뛰어난 호흡을 바탕으로 잘 조율된 선율을 선보였다. 지휘자 겸 리코더 연주자인 안토니니는 발군의 리코더 실력을 협연을 통해 선보였고, 솔리마G. Solimma가 한국 전통악기 피리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피리, 현, 콘티누오를 위한 쏘So'의 세계 초연은 고악기를 위한 현대음악의 잠재력과 함께 우리 악기 피리가 가진 우수성을 세상에 알렸다. 앙코르곡도 남달랐다. 비발디 '만돌린 협주곡'의 1악장은 앙상블의 피치 카토Pizzicato를 통해 만돌린만의 온전한 선율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줬다. 무엇보다 마지막 앙코르곡 이었던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압권. 고악기와 피리가 하모니를 이룬 '다이너마이트' 연주에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공연이 이처럼 염가(?)에 가능했던 이유는 한화 그룹의 전폭적인 투자 덕분이다. 사실 한화그룹은 스포츠 와 불꽃 축제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를 30년 넘게 후원해 왔다. 한화그룹은 1989년 출범한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에 2000년부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고, 2009년 예술의전당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종신 회원증'을 발급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23년간 총 394개 연주 단체, 451명의 협연자, 1143곡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무려 55만 명이 이 공연들을 즐겼다.

‹한화클래식›을 이끌어오고 있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

사실 김승연 회장은 '의리와 신용'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기업인. 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뚝심'이다. 예술의전당에 대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김 회장은 2013년부터 고음악의 부활을 주제로 한 '한화클래식' 시리즈를 직접 만들어 10년째 11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역시 세계적인 고음악 부활 흐름을 국내 연주자와 마니아들에게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기업의 문화계, 특히 클래식 업계에 대한 메세나 활동은 가성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의 메세나 활동은 지속 가능한 문화 사업의 미래를 보여준다.

공연 후 열린 사인회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연주자들.

금호아시아나재단은 1977년부터 메세나와 장학사업에 나서면서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캠프와 콩쿠르, 금호아트홀연세대학교 내 소재 등을 지원해 왔다. 특히 음악 재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김선욱과 손열음, 김봄소리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키워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고가 명품 악기에 대한 임대 사업도 우리가 세계적인 연주자를 확보 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메세나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인도 꾸준히 늘고 있다. 롯데그룹은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유지로 건설된 롯데월드타워 안에 전용 클래식 홀을 만들고 세계적인 악단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예술의전당에서 파이프오르간이 사라진 점을 아쉬워하는 애호가들을 위해 다양한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기획, 개최해 왔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남다른 국악 사랑으로 지난 2007년부터 국내 첫 민간 국악 오케스트라인 '락음 국악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많은 국내외 국악 및 정악 공연을 기획하고 후원해 왔다. 창호 전문 기업 이건산업은 소규모 앙상블을 중심으로 한 <이건음악회>를 1990년부터 시작, 2023년 10월에 34번째 공연으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선보였다. 우리 클래식계의 오랜 후원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음악인들에게 김승연 회장의 '뚝심' 은 든든한 언덕이 될 것이 분명하다. 김 회장이 메세나 활동의 '새로운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CREDIT INFO

editor조영훈 <리빙센스>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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