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빈곤시대]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김보연 기자 2024. 1.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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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청년기본법’ 제정되며 복지 논의
취약계층 집중에 여전히 미흡한 수준
정부, 가족돌봄·은둔·자립준비청년 지원 강화
“두터운 복지” 목표로 자산형성 지원 ‘투트랙’
그래픽=정서희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초 개인적으로 채무를 지게 됐고 자활이 어려워져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엔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느냐’ ‘사지 멀쩡한데 무엇이 문제냐’는 댓글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현재 자활 근로와 취업을 위한 공부를 병행하며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생계비 등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종민(30)씨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다시가리 re_go’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청년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보여주는 브이로그(일상 영상)를 업로드하고 있다. 자활 근로를 하고 공부를 하는 등의 모습이 담긴 영상엔 박씨를 응원하는 댓글도 많지만 “세금이 새고 있다” 등의 부정적인 댓글도 여럿 달렸다.

박씨는 “긴급 생활지원금, 의료·주거급여 등의 수급 혜택을 받고 있다”며 “노력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니 처음엔 안주하고 길들여졌다. 그렇지만 현재 여러 사람을 만나 취업 스터디를 하며 ‘수급자에서 꼭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급에 안주하기보다 다시 사회로 나가는 발판으로 생각하고 자립에 성공할 것이다”라고 했다.

◇ 자립 발판 없어 극빈층 복지 늪에 빠진 청년들

그래픽=정서희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으로 내몰리는 20~30대 청년이 늘고 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30대 기초생활수급자는 2018년 16만5452명에서 지난해 8월 23만8784명으로 44% 늘었다. 20대가 32.9%, 30대는 61.6% 증가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바로 위 저소득층인 차상위계층의 경우 20~30대 증가율이 33%를 기록했다. 정부가 수급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있는 데다, 취업이 어려워진 청년이 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 중인 김민영(28)씨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고민하는 청년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에만 30여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취직에 실패했고 구직을 포기하고 싶은 심경이다”라며 “주거비에 전기·가스·통신비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고 했다. 매일 5시간, 주 5일 편의점에서 일해 김씨가 받는 돈은 월 100만원 남짓. 김씨는 “이 중 원룸 월세와 생활비로 85만원이 나간다”며 “취업보다 생계가 더 우선인 상황에서 과연 자립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 취약계층에 쏠린 韓 청년 복지 정책

왜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를 스스로 희망하는 것일까. 이는 청년 복지 정책의 부재와도 맞물린다. 한국의 청년 복지정책은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가 보호할 대상으로 꼽혀온 아동, 노인과 달리 청년은 논외로 취급된 탓에 ‘보편적 복지’로 확대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최근 취업난과 고금리·고물가로 청년 빈곤 문제가 심화하자, 청년 복지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청년의 권리에 대해 명시한 ‘청년기본법’이 제정된 것은 2019년. 직전까지 청년 관련 법은 ‘청년고용법’이 전부였다. 청년의 문제가 단순히 취업, 고용 불안에서 야기된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래픽=정서희

최근 정부는 “소외되는 청년 없이 두터운 복지를 실현한다”는 목표로 복지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청년기본법이 제정될 당시 취약계층 청년은 저소득층,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만을 지칭했다. 그러나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늘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2월 청년기본법에 명시된 취약계층 청년의 정의를 ‘고용·교육·복지 등의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청년 복지정책은 더 다원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가족 구성원의 장애·질병으로 가장의 역할을 하는 가족돌봄청년과 취업 실패 등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은둔청년, 자립준비청년 지원 부문을 신설해 그동안 보호받지 못했던 취약청년을 지원하기로 했다.

동시에 더 많은 청년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중위 소득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월 10만원씩 납입하면 10만원을 정부가 추가로 저축해주는 ‘청년내일저축계좌’를 도입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청년을 위한 ‘청년희망적금’을 도입했다. 이 적금은 연 소득 3600만원 이하인 청년이 가입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청년도약계좌는 소득 기준을 2배인 ‘7500만원 이하’로 늘려 문턱을 대폭 낮췄다. 다만 당장의 생활 유지가 시급한 청년들에겐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납입하는 것이 버거운 만큼 ‘그림의 떡’이란 지적이 나온다.

◇ “복지 정책 세분화, 제도화 필요”

전문가들은 청년 복지 정책의 양극화로 인해 생긴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세밀한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연구원의 김승연 연구위원은 “대체로 청년을 20세부터 34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20대와 노동 시장 진입이 이뤄지는 30대는 빈곤의 원인과 특성이 매우 다르다”며 “보통 청년 실태 조사를 할 때도 5세 단위로 끊어서 살펴보는데, 정책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청년 복지 정책의 제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자체별로 청년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고 했다. 고립은둔청년을 예로 들자면 지자체가 지원해야 할 대상자는 수만명이 넘는데 시작부터 예산에 맞춰 수혜자를 몇백명으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아동수당’, ‘국민연금’처럼 제도화가 이뤄져야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할 수 있다”라며 “제도화를 통해 청년복지정책을 확대하고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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