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인천 ‘찐’ 토박이와 신포동을 걷다

2024. 1. 2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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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젊음의 해방구였던 노포 탐방
77년째 가업 잇는 평냉 효시 ‘경인면옥’
스지탕과 두부전으로 유명한 ‘대전집’
돼지찌개와 박대구이 ‘신포주점’

송도와 청라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인천의 중심은 중구이고, 그곳에 있는 신포동 일대가 핵심이다. 인천 하고도 신포동. ‘레트로’ 정도로 추억하기에는 너무나도 서정적인 ‘뉴트로’ 감성지대가 바로 그곳이다.
신포동 근대문화거리
그 시절, 우리의 영혼을 살찌웠던 안식처 신포동
“어디긴? 신포동이지.” 올해도 참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심전심, 우리의 조촐한 송년회는 신포동에서의 만남으로 정해졌다.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일사천리로 정리가 된다. 언제 만나느냐가 문제일 뿐.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술 마실 나이’가 됐던 그는 이미 70년대 후반에도 집시처럼 자유로운 존재였다.
신포동 거리 전경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에 빠져들었고, 졸업 무렵에는 문학도의 길을 걸었으며, 문학청년이었던 대학시절에는 신포동 인근 싸리재에 극단을 만들어 예술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얼마간을 함께 했던 인연, 청춘의 한때를 공유하고 있는 그와 뜨겁게 사랑하고 공감하며 추억하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신포동’이다. 7080을 인천의 청춘으로 산 사람들에게 신포동은 젊음의 해방구였고 유일무이한 놀이터였다.
청춘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1호선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까지 이동했다. 전철도, 역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보였다. 추억의 힘이었다. 동인천역은 덩치만 커졌지 노쇠한 모습이 역력하다. 원도심 혹은 구도심의 비애를 눈물 머금고 버티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동인천이 인천의 중심이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모습이 반갑다. 동인천역에서 신포동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다.
아트 플랫폼
보통 인천이 초행인 사람들은 지하상가나 그 위로 난 길을 걸어 신포국제시장으로 들어가는데, 토박이들은 자유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고 홍예문을 지나 신포동의 중심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모처럼이니 인천을 잘 모르는 것처럼, 여행자 흉내를 내보기로 한다. 지하상가는 추위를 피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동인천에서 신포동까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하다. 청춘의 한때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신포동과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가 저만치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낭만 가득한 노포 천국
신포국제시장
요즘 사람들에게 신포동은 닭강정이 유명한 시장쯤으로 여겨지지만 인천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늘 도시의 중심이었다. 신포동은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재래시장인 신포시장이 있었다. 19세기 말 이곳에 터를 잡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양파나 토마토, 피망, 연근 같은 고급 채소를 파는 ‘푸성귀전’으로 유명했던 신포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변모했고, 2010년에 신포국제시장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개항기 때나 지금이나 외국인들의 이용이 활발해 국제시장으로서의 면모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토박이들에게는 노포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그래서 오히려 당일치기 여행이 불만스러울 수 있는 곳이 신포동이다. 그런 내막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은 신포동 여행의 시작과 끝을 닭강정 골목에서 한다.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신포국제시장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위로부터 시계방향)19세기말 푸성귀전으로 유명했던 신포시장
동인천역에서 오자면 첫 번째 시장 골목이 닭강정 골목이다. 길 초입에 전설의 신포닭강정과 쌍두마차 격인 찬누리닭강정이 자리 잡고 있다. 둘 중 어느 집 닭강정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맛으로나 인기로나 용호상박이다. 닭강정 골목 끝으로 가면 중국식 고기만두와 공갈빵을 파는 산동만두 앞에 또 긴 줄이 있다. 보들보들한 만두피 안에 소가 가득 찬 중국식 만두와 사람 머리통만한 공갈빵으로 몇 년째 블루리본 서베이를 장식하고 있는 곳이다.
신포시장의 명물, 닭가엊ㅇ
“이 집 만두도 그렇고 공갈빵도 차이나타운보다 낫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어도 재료가 떨어지면 곧바로 문을 닫는 야박함이 있지만 말야.” 핀잔인 듯 칭찬인 듯 친구가 말한다. 먹어본 지 수십 년이 지나 그 맛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먹을래?”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본 것일까 그가 넌지시 묻는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줄을 서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짐짓 딴청을 피운다. “아니, 신포동에 왔으면 쫄면이지!”
두꺼운 면을 지닌 신포동 칼국수에는 튀김 부스러기가 고명으로 올라온다.
어느새 몸은 산동만두 건너편으로 보이는 신포우리만두로 향한다. 쫄면이 태어난 곳이 인천이고, 그 쫄면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본점이다. 하지만 매장을 리모델링해 노포의 느낌은 없다. 다만 이곳의 오리지널 쫄면에서는 50년이 넘는 노포의 내공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인천이 고향인 쫄면은 1970년대 초 광신제면소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쫄면의 탄생 스토리는 두 갈래. 하나는 냉면을 뽑으려다 실수로 굵은 체를 끼우는 바람에 두꺼운 면이 나왔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쫄깃하고 맛있는 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설이다. 실수로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고 인정받는다.
“쫄면은 뭐니 뭐니 해도 만나당이었는데 말야. DJ가 리퀘스트 뮤직 틀어주던 대동백화점 분식코너 생각나지?” 그랬다. 쫄면이 인천의 대표 음식으로 각광받던 시기, 3대 쫄면집으로 통하던 만나당과 명물당, 만복당이 동인천에 있었고 대동학생백화점의 분식코너도 유명했었다. 그 가운데 쫄면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쓴 집은 만나당으로, 실수로 만들어진 굵은 면발을 일부러 주문해 야채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었던 게 쫄면의 효시였다고 알려져 있다.
신포동 칼국수 골목
신포우리만두 뒤편, 칼국수 골목이 있다. 쫄면과 함께 ‘면의 고향’ 인천을 알린 게 이곳의 칼국수다. 골목 사이로 신포동의 명물인 칼국수 집 몇 곳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신포시장 안에도 오랜 역사의 칼국수 맛집들이 영업 중이지만 튀김 부스러기를 고명으로 얹은 신포동 특유의 칼국수를 맛보기 위해선 칼국수 골목을 찾아야 한다. 맛도 양도 원래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고, 달라질 수밖에 없는 가격은 그래도 착하다. 이곳 칼국수 집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메뉴 ‘우무’(우뭇가사리)도 있으니 꼭 먹어볼 것을 권한다. 새콤달달한 우무 무침은 간식 겸 사이드 메뉴로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인천 평양냉면의 상징과도 같은 경인면옥
신포동에는 ‘면의 전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천 평양냉면의 역사를 만든 경인면옥이다. 신의주 출신의 3형제가 서울 화신백화점 뒷골목에서 장사를 하다 1946년에 인천으로 내려와 차린 식당으로 지금까지 3대에 걸쳐 77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그거 알아? 내가 경인면옥에서 첫사랑을 만났잖아. 어린 남녀가 웬 평양냉면? 쫄면이나 먹으러 다녔을 애들이 평양냉면 집이라니 놀랍지 않아? 아마도 행주 빤 물처럼 밍밍한 그 맛에 놀라지 않았을까. 한창 사랑에 눈이 멀었을 때였으니 뭘 먹어도 맛있었을지 모르지.” 80년대 초 경인면옥 답사기를 얘기한 그는 그때 평양냉면을 같이 먹었던 그 여인과 아직도 슴슴하고 밍밍한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고백을 덧붙인다. 나는 갑자기 경인면옥의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슴슴한 맛? 밍밍한 사랑? 궁금증이 마구 솟구쳐 올랐다.
잠시 소화를 시킬 겸 신포동을 걷다
누들플랫폼
“좀 걷자. 먹을 게 천지니 빨리 소화를 시켜야 돼. 신포동에 오면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이라니까. 집이 인천인데 1박2일 이곳에서 보낼 수도 없고 말야. 하루에 6끼를 먹을 순 없지만 민어회는 아니더라도 대전집이나 다복집은 꼭 들러야 할 텐데.”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그가 지금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음식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맞다. 신포동에서 꼭 먹어봐야 할 것들을 모두 챙겨 먹자면 그때그때 소화를 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세상에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는 때도 있네….
신포동의 한복판 근대문화거리에 누들플랫폼이 생겼다. 국내 최초의 누들 테마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천 누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시와 체험,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1935년 우리나라 최초로 밀가루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천만의 고유한 면 요리가 발달했다, 컵누들체험장, 키즈쿠킹교실, 일반인 및 예비 창업자를 위한 요리 레슨 등도 펼쳐진다.
인천근대문학관과 기획전시관
멀리 인천항이 바라다 보이는 길 끝에는 신포동의 핫플인 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평소 궁금했던 근대문학관으로 향한다. 오래된 창고 건물을 개조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근대문학 속에 그려진 인천의 모습과 인천의 근대 문인들도 만나볼 수 있다. 1930년대부터 일본 기업인 미쓰이물산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다 2010년대 인천문화재단 청사를 거쳐 2020년 새롭게 단장한 기획전시관은 신포동 여행자들의 발길을 조용히 잡아 끈다.
Info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한국근대문학관 인천 중구 신포로15번길 64(본관) / 인천시 중구 신포로15번길 76(기획전시관) 10:00~18:00(월요일 휴관)
불야성의 공간, ‘술시’의 신포동
대전집
잠시 걸었다고 허기가 몰려든다. 소주 한 잔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어느 덧 술을 마셔야 하는 ‘술시’가 된 듯하다. 신포동의 진짜 매력은 날이 어스름해지는 저녁이다. 인천을 떠나서도 가끔 해질 무렵이 되면 신포동 선술집들이 생각나곤 했다. 야속한 것은 ‘이 집의 무엇, 저 집의 무엇’ 하는 식으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려면 순례하듯 신포동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스지탕 어때? 대전집 갈까 아니면 마냥집으로 갈까? 염염집 전도 약간 당기는데.” 어느 것 하나 빼놓기 싫은 안주의 지존들이 그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모름지기 신포동에서 술 문화를 경험한 세대라면 마땅히 겪었을 고민이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흡족한 한 끼의 먹거리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곳이 신포동이라면 더하다. “스지탕은 꼭 먹어야 하고 두부전도 좋은데.” 그럼 대전집이 딱이다. 신포동에서 스지탕으로 한몫을 하는 노포로, 마치 햄버거처럼 고기 패티를 넣은 두부전이 일품인 곳이다.
다복집
인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통했던 대전집은 1972년에 문을 열었으니 그 역사가 50년이 넘었다.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정희 여사가 홀로 인천에 올라와 가게를 차렸고, 지금은 그의 아들인 최재성 사장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소의 사태에 붙어 있는 스지를 7시간 이상 푹 고아 양념하고 감자와 채소, 육수를 넣고 끓여낸 것이 스지탕이다. 대전집의 또 다른 명품 안주는 두부전. 두부 사이에 고기가 패티처럼 들어가 있어 ‘두부 샌드위치’나 ‘두부 버거’에 가까운 모양으로 영양과 함께 빈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최고의 안주다.
대전집 맞은편에는 다복집이 있다.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신포동의 상징이 됐던 노포답게 가게 간판부터 외관까지 빛 바래고 허름해졌지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상상할 수 없는 맛의 성찬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도 스지탕. 의외의 메뉴인 족발은 삶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단골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신포주점 풍경
신포동에서 빼놓으면 섭섭할 노포가 하나 더 있다. 1968년에 문을 열어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신포주점’이다. 처음에는 그냥 ‘주점’이었다가 ‘신포주점’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단골들은 이 집에 애정을 담아 ‘신포싸롱’ 혹은 ‘신싸’라 불렀다. 지금도 가게 안 벽면에는 이 집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글이 빼곡하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돼지찌개와 박대구이. 우럭젓국과 바지락전, 가오리찜도 인기가 많다. 신포동에 오면 안주가 주인이 되고 술은 그저 거들 뿐이다. 몸에 좋을 리 없는 술자리가 건강을 위해 챙기는 성찬처럼 느껴지는 건 변함없는 노포의 진심과 맛, 그리고 옛날을 기억하는 손님의 낭만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신포동의 밤이 저물어 간다.
Tip ‘찐’ 토박이의 신포 7味
➊ 신포주점 / 대표 메뉴: 돼지찌개, 박대구이, 간재미찜, 바지락전 등
➋ 대전집 / 대표 메뉴: 스지탕, 두부전, 녹두빈대떡 등
➌ 다복집 / 대표 메뉴: 스지탕, 고추전, 족발 등
➍ 명월집 / 대표 메뉴: 김치찌개백반
➎ 경인면옥 / 대표 메뉴: 평양냉면, 평양온면, 녹두지지미 등
➏ 신포동집 / 대표 메뉴: 대청도 홍어회, 우럭젓국, 대청도 자연산 제철 메뉴 등
➐ 화선횟집 / 대표 메뉴: 민어회, 민어탕, 민어전 등
음악의 성지 라이브 클럽
한 잔 술에 불콰해진 탓일까.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건 또 뭘까. 어느덧 나도 ‘라떼족’이 되어버린 걸까, 자조 섞인 웃음이 부지불식간 피식, 하고 흘러나왔다. 이 시간쯤이면 꼭 가야 할 데가 있다. ‘인천 하면 음악’이니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신포동에는 인천의 음악 역사를 지켜온 두 곳의 공간이 있다. 하나가 ‘흐르는 물’, 다른 하나는 ‘버텀라인’이다. 두 곳 모두 한나절의 신포동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인천의 음악 역사를 지켜 온 ‘흐르는 물’
지난 1989년 문을 연 ‘흐르는 물’은 인천 음악 역사의 현장이자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정희성 시인의 시에서 이름을 따온 이곳은 시처럼 변함 없는 모습으로 신포동을 지키고 있다. 오래 시간 LP 음악의 순수성을 지켜온 ‘흐르는 물’은 카페로는 처음으로 ‘백년가게’에 선정됐다. 30여 년의 역사지만 오롯이 한길을 걸어 백 년 이상 가달라는 기대가 담긴 영예다.
오랫동안 머물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 터를 마련한 ‘흐르는 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의미 있는 공연들을 개최하면서 음악도시 인천의 뿌리 깊은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 그동안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 음유시인 정형근, 기타리스트 김광석 등 수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펼쳐왔고 최근에는 실력 있는 젊은 음악인들의 공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가 인정하는 인천 음악의 메카가 된 셈이다.
재즈클럽 ‘버텀라인’ 또한 인천의 음악 성지 중 한 곳이다. 1983년 문을 연 이곳은 한국의 3대 재즈클럽으로 꼽힐 정도로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소로 통한다. 클럽이 있는 건물도 특별하다. 1900년대 초에 건립된 일본식 가옥으로 100여 년 전 패션 잡화를 팔던 ‘후루다양품점’ 자리가 바로 현재의 버텀라인이 있는 곳이다.
인천 바텀라인은 신광웅 밴드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애정하는 장소다.
높은 천장과 흙벽으로 지어진 100여 년 역사의 근대건축물에서 감상하는 재즈의 매력도 특별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공연이 펼쳐지지만 깊고 풍성한 재즈 선율에 매료된 음악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라이브 클럽이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베이스 연주자인 앙리 텍시에와 국내 1세대 재즈 거장 신관웅 밴드 등 내로라하는 국내외 재즈 뮤자션들이 애정하는 재즈 클럽으로 유명하다.
Info 흐르는 물 인천 중구 우현로39번길 19 버텀라인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23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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