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부터 꾼 꿈, 난 뮤지컬에 미친 사람”

2024. 1. 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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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에드몬드役 고은성
팬텀싱어로 얼굴 알렸지만 터전은 뮤지컬
관객에 감사하되 인기만 추구하진 않을것

“저, 축구로 치면 유소년 출신이에요.”

열여덟 살에 우연히 만난 ‘노트르담 드 파리’. 한 청년은 그날 이후 뮤지컬 배우을 꿈꿨다. 맑고 단단한 음색과 폭넓은 음역대는 그의 장점이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뮤지컬만 파다 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고 한다. 고은성의 삶은 ‘뮤생뮤사’(뮤지컬에 살고 뮤지컬에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에서 만난 고은성(34·사진)은 스스로를 “뮤지컬에 미친 놈”이라며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뮤지컬로 시작해 뮤지컬로 끝난다”며 웃었다.

현재 출연 중인 ‘몬테크리스토’는 고은성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좋아한 작품이라 언젠가는 배역을 맡을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며 “군 복무 중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의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해 11월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해 여섯 번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고은성은 주인공 에드몬드 역으로 출연 중이다. 고은성은 에드몬드에 대해 “인간이라는 파도를 항해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지난 2010년 초연한 이 작품은 이번 시즌을 통해 전면 개편에 돌입했다. 작품의 줄거리부터 넘버까지 싹 다 바꾼 뒤 고은성을 비롯해 김성철·서인국·이규형 등 네 배우를 남자 주인공으로 앞세웠다. 큰 줄기는 그대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 간 감옥에 갇힌 선원 에드몬드의 복수극.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에 보다 가깝게 설정을 수정했고, 감정선을 더 살렸다.

고은성은 “모두가 새로운 캐스트이기에 전 시즌 영향 없이 모두가 새로운 시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며 “우리끼리 상의하며 최선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데뷔작은 2011년 공연된 ‘스프잉 어웨이크닝’이다. 앙상블로 무대에 첫발을 디뎠고, 같은 해 ‘페임’의 주역을 맡은 이후 ‘대학로 아이돌’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것은 2016년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JTBC) 시즌1(흉스프레소 멤버)이었고, ‘내일은 국민가수’(TV조선)는 ‘골수 팬덤’을 안겨준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터전은 뮤지컬이라고 강조한다.

“뮤지컬과 크로스오버 음악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팬텀싱어’와 ‘국민가수’에 출연했어요. 그러한 도전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도전해보니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뮤지컬에 더 집중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티켓 판매량으로 치면 5000억원 규모를 바라보는 시장이지만, 뮤지컬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치열한 ‘피켓팅’을 거친 뒤, 시간을 들여 극장을 찾아야 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동반해야 감상할 수 있다. 대극장 VIP석 기준으로 17~19만원에 달하는 티켓 가격 역시 허들로 작용한다. 이처럼 뮤지컬은 TV나 영화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탓에 관객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은성은 “뮤지컬은 마니아들의 장르이면서 동시에 대중 장르인데,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헷갈렸던 시간들이 있었다”며 “사람마다 맞는 길은 따로 있는데, 다른 매체를 통해 뮤지컬로 관객을 유입하려고 한 것이 나의 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TV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면 시청률은 엄청나고, 그것으로 인한 전파력도 굉장했어요. 하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날 찾아오는 관객들을 위해 제 에너지를 온전히 쏟고 감동을 주는 거였어요. 그러면 TV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보다 더 큰 것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는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이상이·김성철과 함께 소극장부터 차곡차곡 한 계단씩 올라왔다. 20대 시절 서로를 의지했던 세 사람은 어느덧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 받는 스타가 됐다. 고은성은 대극장 뮤지컬의 주역으로, 이상이와 김성철은 무대와 TV 드라마를 오가는 주요 배우가 됐다. 고은성은 “누가 5만원이라도 더 벌면 서로 밥을 사주면서 의지하고 서로의 장점을 온전히 인정해주던 관계”라고 떠올렸다. 세 사람은 심지어 ‘탄산소년단’(2016)을 결성, 콘서트를 함께 했을 만큼 특별한 우정을 자랑한다.

“그 때도 나중에 우리 셋이 잘 될 것 같지 않냐고 호기를 부렸어요. 세 사람 모두 잘 돼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요즘을 생각하면 정말 기적 같아요.”

‘몬테크리스토’ 속 에드몬드처럼 고은성의 삶에도 크고 작은 파고와 풍랑이 있었다. 그는 그때마다 ‘뮤지컬’이 있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뮤지컬이 가진 다양한 감수성과 극적인 상황은 그가 늘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고은성은 스스로 “뮤지컬의 간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뮤지컬이 나를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에게 티켓 판매와 흥행은 그의 현재 위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의 무대에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다. 고은성의 목표는 흔들림 없이 ‘본질 지키기’다.

“얼굴이 알려지며 무대에서도 함성과 박수를 받는 날들이 많아요. 하지만 함성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함성에 포커스를 두면, 무대에서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게 무대 위 함성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경계하라는 신호예요. 관객의 감사함을 알되, 감사 만을 위해 살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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