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인 듯 샤오룽바오인 듯…조지아에서 꼭 맛봐야 할 4가지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캅카스산맥(코카서스산맥) 남쪽에 자리한 조지아는 신의 땅이다. 아니, 신의 얼굴을 한 인간의 땅이다. 산맥 도처에 걸린 구름은 신처럼 표정이 1000가지가 넘는다. 만년설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순백으로 빛난다. 심지어 ‘신의 물방울’ 와인의 탄생지도 조지아다. 약 8000년(기원전 6000년) 전 시작된 와인 양조법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신이 쉼터로 고른 곳도 이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런 신의 ‘얼굴’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글과 말로, 때로 음악과 여행으로 말이다. 이런 이유로 톨스토이, 푸시킨 등 러시아 대문호들처럼 조지아를 찬양하고 싶은 이가 많다. 조지아가 여행자들이 찾는 0순위가 된 이유다. ‘동유럽의 스위스’란 별칭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투어가 기획한 조지아 여행 상품 5월 예약자 수는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조지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미식은 여행의 화룡점정이다. 조지아에서 꼭 맛봐야 할 4가지 음식이 있다.
그 첫번째가 힌칼리다. 지난해 11월 조지아 여행 때 들렀던 와인농장 실다. 와인 산지 카헤티에 떴던 해는 설산 너머로 도망간 지 오래. 여행자들 뱃속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실다의 양조자 나나 졸로하바가 “조지아 어디에서든지 맛보는 음식들”이라며 상을 차렸다. 흰색 두건을 쓴 직원이 부지런히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우리네 만두피와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그 위에 양념한 다진 고기를 올리고 정성스럽게 쌌다. 피 주름 잡는 솜씨가 여간 재주꾼이 아니다. 완성된 꼴이 마치 복주머니 같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우리네 만두다. 이 음식은 조지아 국민음식 힌칼리다. 캅카스산맥 산간 지방 사람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이다. 으깬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새우, 감자, 치즈 등이 피 안에 들어가는 재료다. 잘 익힌 힌칼리를 한입 베어 물면 육즙이 주르륵 흐른다. 중국 상하이식 만두 샤오룽바오와 유사하다.
힌칼리는 먹는 법이 따로 있다. 두꺼운 꼭지 부분을 손으로 잡고 먹는다. 꼭지는 버린다. 우리네 만두보다 피가 두꺼워 웬만해서는 터지지 않는다. 힌칼리 여러 개를 만든 직원이 요술을 또 부린다. 꼼지락꼼지락 하더니 힌칼리는 금세 물고기 모양이 된다. 물고기 모양 힌칼리는 이 농장에서만 먹을 수 있다. 수도 트빌리시 음식점에서 파는 힌칼리 대부분은 작은 복주머니 모양이다. 동서양이 하나로 통일할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만두가 그 가교 노릇을 하고도 남을 거다.
조지아 국민음식에 힌칼리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네 김치처럼 조지아 밥상 대부분에 오르는 음식이 있다. 추르치헬라다. 두번째로 꼭 맛봐야 할 음식이다. 추르치헬라는 바늘로 꿰매듯 엮은 호두 등 견과류 한줄을 바다기와 밀가루를 섞어 졸인 반죽에 담갔다가 넣기를 반복한 후 그늘진 데서 말린 먹거리다. 추르치헬라 맛의 핵심은 응축포도주스인 바다기다. 토착 화이트와인 품종 르카치텔리로 만든다. 바다기는 조지아인들 밥상을 책임지는 솔푸드다. 우리네 김치처럼 말이다.
포도 수확 철이 되면 우리가 김장하듯 조지아인들은 너도나도 바다기를 만든다. 잘 만든 바다기는 1년 넘게 보관이 가능하다. 우리네 김치가 김치찌개, 김치전, 볶음김치 등으로 변주되듯이 바다기도 추르치헬라 등 다양한 먹거리의 재료가 된다.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자연의 단맛이 고스란히 밴 건강한 먹거리다. 제조법도 쉽다.
와인농장 실다에 이어 방문한 와인농장 바지아니 직원들이 손수 시연에 나섰다. 중세풍 벽돌집 난간에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할 법한 솥단지가 나타났다. 바다기와 밀가루가 넉넉히 들어갔다. 흥부가 뺨 맞은 주걱보다 더 큰 주걱이 휘휘 솥단지 안을 돌아다녔다. 색이 점점 황토색으로 변했다. 레드와인 품종으로 바다기를 만들면 짙은 붉은색을 띤다. 조지아 와인·푸드 전문가 마카 타라슈빌리가 말했다. “완벽히 마른 추르치헬라는 절대로 상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군인들은 이걸 먹고 견뎠다. ‘밀리터리 푸드’(군용식)인 셈이다. 종부성사(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하는 천주교 의식) 때도 빵과 추르치헬라가 등장한다.” 와인의 태생지다운 음식이다.
터키에 인접한 국가답게 터키 전통식인 꼬치구이 케밥과 유사한 먹거리도 있다. 므츠바디다. 돼지고기, 양고기, 쇠고기, 채소 등을 꼬챙이에 끼어 굽는 바비큐 요리인데 포도나무를 장작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조지아 전통 소스 트케말리를 뿌려 먹으면 금상첨화다. 트케말리 만드는 법은 지방마다 다르지만, 우리네 간장·고추장처럼 조지아 국민 양념이다. 삶은 과일에 신선한 고수와 페니로열(박하속의 한 종인 식물)을 섞어 만든다. 감자와 함께 접시에 내는 이들이 많은데, 이 둘의 조합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과일의 색에 따라 트케말리 빛깔도 달라진다. 식은 트케말리에 식용꽃이나 마늘, 후추, 고수 등을 섞어 보관하는 집이 많다. 통조림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양초로 밀봉해 땅에 묻어 보관했다고 한다.
와인농장 슈미에서 경험한 므츠바디와 트케말리는 김연수 소설 ‘너무나 많은 여름’에 빗대자면 ‘너무나 많은 조지아’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맛이었다. 인스턴트 음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조지아다. 청정자연의 순결한 맛이 전부인 나라 조지아. 조지아 식재료 대부분은 유기농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산업적인 측면에서 선택한 농법이 아니다. 애써 고른 농법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저 예전부터 내려온 농법이다.
조지아에서 꼭 먹어야 할 네번째 음식은 하차푸리.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인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언뜻 보면 치즈피자와 영락없이 닮은꼴이지만, 우리네 호빵처럼 생긴 것도 있다. 조지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건 이메룰리 하차푸리다. 아주 얇고 넓적하게 편 밀가루 반죽 안에 치즈를 듬뿍 넣은 빵이다. 치즈 대신 다진 양고기, 양파, 돼지고기, 각종 향신료로 채운 하차푸리는 쿠브다리다. 이밖에 커다란 눈동자 모양의 아자룰리, 도넛 모양인 메스헤티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조지아인들은 하차푸리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신의 선물이라고 여긴다.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혹독한 자연환경에도 강한 생명력으로 매년 자신들을 찾아오는 밀이야말로 신의 마음이 담긴 먹거리라 여기는 것이다.
이 밖에 양고기 수프인 하르초, 마늘과 우유 등을 섞어 끓여 만든 닭고기 요리 시크메룰리, 조지아인의 장수 비결 음료인 마초니(마춘), 포도 찌꺼기로 만든 증류주 차차 등도 조지아 미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조지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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