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로 수십명 전학와요” 산청군 ‘공립학원’의 기적

윤상진 기자 2024. 1.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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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소멸 걱정 줄인 ‘우정학사’
18일 저녁 경남 산청군 우정학사에서 고등학생들이 교과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우정학사는 산청군이 인구 유출을 막고 관내 우수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 2008년 세운 공립 학원으로, 서울 유명 입시학원에 위탁해 강사를 파견받아 운영하고 있다./윤상진 기자

지난 18일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산청군 ‘우정학사’. 저녁 6시 30분이 되자 2층짜리 학사의 불이 켜지며 중1부터 고3까지 학생 130명이 학년별 교실로 들어가 국어∙영어∙수학 수업을 들었다. 우정학사는 산청군이 폐교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08년 세운 ‘공립 학원’이다. 서울 종로학원 강사들이 내려와 가르친다. 학비는 산청군이 전액 지원한다. 교육 여건이 나빠 인구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만들었는데, 우정학사 입시 실적이 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인근 지역에서 매년 수십명씩 산청군으로 ‘유학’을 오고 있다. 산청군은 인구 3만3000여 명 중 65세 이상이 40.4%에 이르는 대표적 인구 소멸 지역이지만, 공립 학원의 기적으로 교육 환경으로 인한 인구 유출을 늦추고 있다.

우정학사는 학년당 정원이 25명이다. 고교생은 학년별로 2개 반씩 나눠 수준별 수업도 한다. 강의는 서울 종로학원에 위탁했다. 대치동과 목동 등에서 활동했던 경력 15년 차 이상 강사 10명이 내려와 가르친다. 주 5일 수업이라 주말에 서울로 가는 강사도 있고, 아예 산청으로 이사 온 경우도 있다. 과도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르치고 싶은 강사가 많다고 한다. 수입은 서울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다. 수업은 학기·방학 구분 없이 매일 밤 6시 40분부터 10시까지 진행된다. 학교 시험 기간엔 내신을, 그 외엔 수능을 대비한다. 매년 2번씩 학사 시험을 치러 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는다. 정원 60명 규모인 기숙사에 사는 학생은 학사 내 강사에게 언제든 모르는 문제를 물을 수도 있다.

올해 입시에서 우정학사는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고3 학생 25명 중 23명이 고려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등 서울 주요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에 붙었다. 의대와 카이스트 합격생도 배출했다. 이 중 고려대와 카이스트에 들어간 학생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2년 전에도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에 21명을 합격시켰다.

그래픽=김성규

그러자 인근 도시 학생이 산청군으로 유학을 오고 있다. 우정학사의 양모(18)군은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친구 중 4분의 1 정도가 이사를 갔다”며 “그러나 요즘은 상위권일수록 우정학사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산청군에서 가장 큰 산청고는 한 학년 정원이 110명인데, 그중 30명 정도가 인근 진주시와 거창군 등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한다.

산청고 관계자는 “학교에선 학생부를 채우고, 우정학사에선 수능을 준비하기 때문에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우정학사를 통해 산청군 학생들이 “나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성과다. 성모(18)양은 “최근 선배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나도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정학사 이전에는 의대나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드물었다고 한다.

‘공립 학원’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있다. 경북 안동시는 ‘퇴계학당’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교과 수업과 ‘일대일 맞춤’ 진학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경기 연천군은 ‘미라클 아카데미’, 전북 김제군은 ‘지평선 학당’이란 공립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부산시는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떨어지는 구도심과 서부산권의 중학교 1학년생 380명을 대상으로 3주 동안 영어·수학 캠프를 열기도 했다.

/산청=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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