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품은 부안, ‘힘쎈 동네’에 빠져든 소리 없는 여심, 감동 어린 여행[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 2024. 1. 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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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된 족보 있는 내소사 고려동종
문화재청, 부안 첫 국보에 지정서 전달
내소사·개암사의 템플스테이
적벽강·채석강, 직소폭포, 곰소염전 탐방
입맛 달큼한 부안 맛집 릴레이
때아닌 동안거다. 부안 내소사에 폭설이 내렸다. 인적까지 끊긴 산사는 폭설마큼 포근함이 가득하다. 사진제공|내소사


꼬박 800년이 걸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30만 번 가까운 해를 맞아야 했다. 징하도록 오랜 기다림이다. 최근 전북 부안이 처음으로 국보를 품었다. 수장고에 갇힌 목소리 잃은 내소사 동종(銅鍾·구리로 만든 종)은 그 존재만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명예의 전당에서 내소사 고려동종은 호령하기보다 우아한 자태로 그 자리를 지켰다.

부안은 그간 천혜의 자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품었고, 곰소염전으로 생명을 지켰고, 내소사·개암사 창건 이후 백제 무왕이 부흥을 이끌었으니 국태민안의 발원지가 됐다. 그 오랜 축원이 모여 드디어 부안에 국보가 섰다.

(사진 위 큰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 9일 내소사 고려동종 국보지정서 전달식날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모습, 내소사의 전경, 내소사에 이르는 전나무숲길, 새벽 예불을 올리는 내소사, 내소사 대웅보전의 현판, 고려동종 국보지저서 전달식에 앞서 대웅보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모습. 사진|강석봉 기자


내소사 고려동종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보로 지정됐고, 문화재청은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동종에 대한 국보 지정서 전달식을 가졌다.

족보 있는 내소사 고려동종, 국보 되다


(사진 위 큰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활기에 넘치는 고려동종의 용뉴, 내소사 수장고에 보관중인 내소사 고려동종,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고려동종 국보지정서 전달식에 참여한 최응천 문화재청장(사진 왼쪽)과 내소사 주지 월봉 진성스님, 내소사 고려동종의 위는 덩굴무늬·연꽃문양·용뉴로 이어진다, 내소사 수장고에서 국보된 고려동종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있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보로 지정된 전국의 동종은 5개다. 모두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것이다. 내소사 동종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만든 이가 명확한 족보 있는 동종이다.

국보지정서 전달식 날, 내소사는 야단법석이었다. 동종은 한마디 벙긋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안 지역에서 국보로 지정된 보물은, 이 동종이 처음이다. 소리 자체로 중생의 깨달음과 구제를 이어온 고려동종이, 그 아우라만으로 국보의 위엄을 드러낸 셈이다.

내소사 고려동종은 섬세하면서도 균형 잡힌 조각 기법으로 만들어져, 고려 후기의 범종 중 첫손에 꼽힌다.

종을 만든 내력이 담긴 주종기(鑄鍾記)에는 장인 한중서가 구리 700근(약 420㎏)으로 1222년에 제작했다고 적혔다. 높이 104.8㎝, 입지름(원통 모양의 지름) 67.2㎝인 이 종은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크다.

덩굴무늬 레이스가 종 밑자락과 탱크톱처럼 종 어깨를 촘촘히 감쌌다. 이에 더해 연꽃 문양이 목도리처럼 어깨 위를 휘감는다. 동종 머리를 뚫고 나온 듯한 용두는 말 그대로 용뉴가 됐다. 그 종 걸이는 동종의 액운을 떨쳐내겠다는 듯입을 호쾌히 벌려 그 기세를 떨쳤다. 이 용은 허릿심 하나로 내소사 고려동종의 700근 무게와 800년 역사를 더 받쳤다.

이 동종은 엉덩이가 무겁지 않았나 보다. 자리 잡고 앉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동종 몸체에 적힌 이안기(移安記)를 보면, 청림사에 있던 것을 1850년(철종 1) 내소사로 옮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몸체에는 삼존상(三尊像)이 장식성과 조형미를 더하고 있다. 삼존상은 부처와 양옆에 두 보살을 새긴 조각상을 뜻한다.

이날 내소사에서 국보지정서 전달식을 가진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절간 수장고에서 내소사 고려동종에 대한 설명회를 직접 주관했다. 사찰 소유 동종이 국보가 된 것은 화성 용주사 고려동종에 이어 60년 만이다.

전나무 숲과 템플스테이…내소사·개암사


내소사에 이르는 숲길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문 숲길 중 하나다. 사진제공|내소사


국보를 모셔 기세등등해진 내소사는 치유의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약 500m의 전나무 숲이며 템플스테이도 그 역할을 단단히 했다.

내소사를 품은 능가산은 개암사도 품었다. 석가모니는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에게 설법을 베풀었다. 능가는 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그것을 능가경으로 묶어냈다 하니 질문·대답 배틀이 치열하고 설법 역시 차고 넘쳤나 보다.

다행히 오늘날 능가산은 그 문턱을 낮춰 내소사는 관광사찰로 유명해 졌다. 그에 비해 개암사는 조금 더 고즈넉한 분위기다. 절집을 호위하는 울금바위엔 원효대사가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개암사 대웅전엔 아미타불을 본좌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좌우로 협시한 삼존불이 있다.

(사진 위 큰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부안 능가산 개암사 삼존불은 아미타불을 본좌로 좌측에 지장보살과 우측에 관세음보살이 협시했다, 울금바위를 배경으로한 개암사는 좌측에 지장전과 우측에 나한전이 자리잡고 있다, 개암사 주지인 종고스님이 개암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암사 가는 길, 개암사 지장전의 내부 모습, 개암사 나한전의 나한상들. 사진|강석봉 기자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경기도 포천시 광릉수목원 숲길과 더불어 ‘전국 3대 전나무 숲길’이다. 겨울 눈이 쌓여도 좋고 봄·여름 우거져 하늘을 가려도 새롭다. 전나무 숲은 벚나무와 단풍나무로 이어지고, 여행객의 마음은 번뇌를 벗고 번잡마저 접는다. 물아일체 체험 코스다.

내소사나 개암사를 찾은 여행객을 보고 있자면, 그들은 수묵화 속으로, 때론 수채화 속으로 스며든다. 세상만사는 잠시 내려놔도 좋다. 결국 여심은 원근감에 어깨를 빼앗겨 점묘화 속 점 하나가 된다. 마음의 그 무거운 짐을 떨쳐냈으니, 그 역발산은 기개세로세.

그 힘 뻗쳐 채석강에 이르면, 여행객에 앞서 삼라만상의 힘이 바위로 만든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 절경을 만들었다. ‘해넘이 채화대’에서 본 칠산바다 노을이 ‘물랭루주’에 뒤질 텐가. 채화대 아래 암반 위 ‘노을 공주’란 별명의 여인상을 훔쳐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지형을 7000만 년 전 백악기의 유물이라 하는데, 억겁이란 가늠키 힘든 숫자 놀음에 기겁하기보다 ‘도봉순’이든 ‘강남순’이든 ‘힘쎈여자’ 전설의 개양할미 설화에 기꺼이 발을 담근다. 이 할미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인근 바다를 휘저으며 평탄화 작업을 손수 하셨단다. 그 전설에 후세는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이란 당집을 지었다. 공치사를 위함이다. 적벽강 해안 길을 따라 북쪽으로 2㎞ 지점에 있다. 그 옆으로는 채석강이 맞닿아 귀엣말을 나누는 듯 하다.

(사진 위 큰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채석강의 낙조(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사진제공|부안군)에서의 굿판, 곰소염전, 수성당 가는 길에 있는 후박나무 군락지, 수성당 안내문. 사진|강석봉 기자


이 당집에선 개양할미에 대한 제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음력 1월 14일이 제삿날이다. 1994년 유적 발굴을 통해, 4세기 중반부터 제의가 이루어진 곳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설화도 톱니바퀴처럼 드라마투르기에 빈틈이 없다. 개양할미는 곰소 인근 ‘둔벙(계란여, 늪·웅덩이)’에서 해난사고를 막고 풍어를 기리기 위해, 간척 작업에 나섰다. 할미는 패셔니스타였나 보다. 작업 중 치마가 젖자 화가 치밀어 치마에 돌을 담아 ‘둔벙’를 메워 버렸단다. 결국 그곳은 곰소염전이 됐을 테고, 곰소의 소금은 오롯이 곰소젓갈의 베이스가 돼 전 국민의 입맛을 평정 중이다. 할미가 홧김에 벌인 일도 결과는 긍정적이다. 아쉽게도 전국 각지에서 곰소소금은 쉽게 볼 수 없다. 소금 대부분이 곰소젓갈용 제조를 위해 선판매되기 때문이란다.

한반도 절경 프랜차이즈…소금강 직소폭포


(사진 위 큰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직소폭포, 산책로에서 만나는 휑한 벤치, 직소폭포 아래 또다른 폭포가 이어진다, 산중호수 직소보는 촬영 명소다, 실상사터. 사진|강석봉 기자


부안의 명소는 바다에만 있지 않다. 대표선수는 직소폭포다.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직소폭포는 변산 8경 중 2경에 해당한다.

30m 높이의 바위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장쾌하다. 급전직하 바로 떨어져 직소(直沼)란 이름이 붙여졌다. 직소폭포는 다랭이 논처럼 그 아래 새끼 폭포를 키우며 층층시하의 우리네 가족 관계를 웅변하는 듯하다.

금강은 부안에도 ‘한반도’ 인증을 남겼다. 금강 프랜차이즈는 이곳에도 있다. 직소가 숨어든 이곳 내륙을 ‘소금강’이라고도 부른다. 직소폭포는 봉래구곡의 제2곡으로 꼽히는데, 내변산에서 약 20에 이르는 신비로운 하천 지형 아홉 곳이 봉래구곡이다.

명승 제116인 이곳은 곡소리에 탄성(?)이 절로 난다. 상류부터 1곡 대소, 2곡 직소폭포, 3곡 분옥담, 4곡 선녀탕, 5곡 봉래곡이니 연이은 만화경에 눈은 그 절경을 따라가기에도 버겁다. 이후 6~9곡은 1996년 부안댐 완공으로 물에 잠기며 감탄까지 수장됐다. 형체가 짐작되지 않으니, 곡소리마저 무용지물이다.

직소폭포의 못 아래에 용소가 있다. 말 그대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내소사 고려동종 용뉴처럼 국보급 용틀임이 언젠가 벌어졌을 터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와 암벽이 용꿈을 현실에 실사했을지 누가 알리오.

이 트레킹 코스는 새침데기가 아니다. 누구도 터부시 않는 ‘관종’이랄까? 입구부터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다. 길이는 약 2.3㎞이며 계절마다 풍광을 달리하니, “다음에 또 오겠다”다는 허튼 언약이라도 해야 미안하지 않겠다. 이를 두고 ‘부화뇌동’ 아닌 ‘부안뇌동’이라 해야 할 까나~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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