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시대의 전략 요충지…‘라그랑주점’을 선점하라

곽노필 기자 2024. 1. 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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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지구에서 태양 쪽으로 150만km 떨어진 제1라그랑주점(L1)에 최근 도착한 인도의 태양 관측 위성 아디트야(상상도).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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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발사된 인도의 첫 태양 탐사선 ‘아디트야’(Aditya-L1)가 4개월의 우주비행 끝에 지난 6일 목적지 궤도인 ‘제1 라그랑주점’(L1)에 도착했다. 탐사선은 약 한 달간 기기 점검 작업을 거친 후 2월 말부터 본격적인 태양 활동 관측을 시작할 예정이다.

라그랑주점은 두 개의 큰 천체가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은 물체(예컨대 위성)가 함께 움직이는 데 필요한 구심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점을 말한다.

두 천체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라그랑주점은 5개다. 발견자인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3개는 두 천체를 잇는 일직선상에 있고, 2개는 두 천체와 정삼각형을 이루는 꼭짓점에 있다.

지구를 둘러싼 우주 공간에는 지구-태양, 지구-달 시스템에 5개씩 모두 10개의 라그랑주점이 있다.

이곳에 위성을 두면 연료를 많이 쓰지 않고도 오랜 기간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는 이곳이 과학적 연구뿐 아니라 관측, 감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가치가 높다는 걸 뜻한다.

이에 따라 라그랑주점이 우주지정학의 새로운 잠재적 격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우주강국들이 라그랑주점에 잇따라 위성을 보내고 있거나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구-태양 시스템의 경우, 가장 가까운 라그랑주점은 제1 라그랑주점(L1)과 제2 라그랑주점(L2)이다. 한쪽(L1)은 지구에서 태양 쪽에, 다른 한쪽(L2)은 지구 그림자 쪽에 있다. 두 지점은 모두 지구에서 150만km 떨어져 있다. 지구-달 거리의 4배에 해당하는 거리다.

미 조지아공대 윤복원 박사(물리학)에 따르면, 제3 라그랑주점은 태양 반대쪽 방향으로 거의 태양-지구 거리만큼 떨어진 거리에 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보면 태양-지구 거리의 2배 되는 곳에 있다. 제4, 제5 라그랑주점은 정확하게 태양-지구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태양과 지구, 라그랑주점이 정확하게 정삼각형을 이룬다. 지구 공전 궤도에서 볼 때 제4 라그랑주점은 지구 앞쪽에, 제5 라그랑주점은 지구 뒤쪽에 있다.

지구-태양 관계에서 태양과 지구가 끌어당기는 중력과 균형점을 이루는 5개의 라그랑주점 위치.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있는 L2는 심우주 관측에 최적 장소로 꼽힌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언제나 태양 관측할 수 있는 ‘제1 라그랑주점’

제1 라그랑주점은 태양 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태양 관측에 유리하다. 언제든지 태양을 관측할 수 있다. 인도의 태양탐사선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다.

이곳에는 현재 미 항공우주국(나사)와 유럽우주국이 1995년 보낸 위성 소호(SOHO)가 태양 관측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소호의 애초 설계 수명은 2년이었으나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2025년에 발사할 예정인 우주전파환경 관측 위성(SWFO-L1)도 이곳에 자리 잡는다. 태양에서 방출된 양성자, 전자 및 코로나 물질 방출(CME) 등의 현상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이런 물질이 지구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조기 경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2020년대 후반으로 예정된 태양물리학 연구 위성 아이맵(IMAP), 소행성 탐지 위성 니오 서베이어(NEO Surveyor)도 제1 라그랑주점으로 날아간다.

앞서 1997년 발사된 나사의 우주 에너지 입자 연구 위성 에이스(ACE), 2015년 발사된 미 해양대기청의 심우주 기후 관측 위성 디스커버(DSCOVR), 1994년 나사의 태양풍 연구 위성 윈드(WIND)가 이곳에서 여전히 임무 수행 중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태양을 등진 방향으로 지구와 150만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지구~달 거리의 4배, 지구~태양 거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심우주 관측에 최적인 제2 라그랑주점

현재 관심이 가장 많이 쏠려 있는 곳은 제2 라그랑주점(L2)이다. 태양을 등지고 있는 제2 라그랑주점(L2)은 심우주를 관측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지구와 쉽게 통신할 수 있는 데다 우주선 앞쪽으로는 햇빛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심우주 관측이 가능하고, 뒤쪽으로는 햇빛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태초의 은하를 찾고 있는 나사의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관측 활동 공간이 이곳이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비밀을 밝혀내는 임무를 띤 유럽우주국의 유클리드우주망원경도 지난해 8월 이곳에 와 현재 본격 관측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이곳에는 빅뱅이 남긴 우주배경복사를 찾는 더블유맵(WMAP=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색기) 위성(나사)과 플랑크 위성(유럽우주국), 적외선 관측 우주망원경 허셜(유럽우주국)이 있었다.

제2 라그랑주점은 안장점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에 있는 물체는 말 안장에 탔을 때 것처럼 궤도가 흔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궤도를 약간씩 조정해 줘야 한다.

지구-달 관계가 만드는 제2 라그랑주점(L2)에 있는 유일한 인공 물체는 중국 췌차오 위성이다.

지구-달 라그랑주점을 선점한 중국

라그랑주점의 원리는 지구-달 사이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지구-달 시스템에선 제1, 제2 라그랑주점이 달을 중심으로 일직선 앞뒤 방향으로 각각 6만㎞ 지점에 있다. 지구 기준으로는 각각 32만㎞, 44만㎞ 떨어진 지점이다. 제3 라그랑주점은 달 반대편으로 지구-달 거리 만큼인 38만㎞ 떨어진 지점에, 제4 및 제5 라그랑주점은 지구, 달과 정삼각형을 이루는 38만㎞ 지점에 있다.

지구와 달의 중력이 만드는 제2 라그랑주점은 최근 군사안보 전략 차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이 2019년 달 뒷면 착륙선 창어 4호 임무에서 이곳의 이점을 활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달 뒷면에선 달이 통신을 차단하기 때문에 지구와 직접 통신할 수 없다. 중국은 이곳에 췌차오(‘까치다리’라는 뜻)라는 이름의 중계위성을 보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췌차오는 이 지점에 배치한 세계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통신 중계 위성이다. 췌차오 위성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정상 작동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에 앞서 달 뒷면과의 통신망을 구축한 셈이다.

중국은 성능을 개선한 췌차오 2호 위성도 조만간 발사한다. 설계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췌차오 1호를 대신해, 오는 5월로 예정된 달 뒷면 표본 수집 우주선 창어 6호와 지구 사이의 통신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2호 위성은 이후에도 라그랑주점에 계속 남아 중국의 후속 달 탐사 임무를 지원할 예정이다.

중국의 췌차오 위성이 제2라그랑주점(L2)에서 달 뒷면 우주선과 지구 사이 통신을 중계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CCTV

미 하원, 모든 라그랑주점에 영구 주둔 촉구

이에 자극받은 미국 하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중국과의 경제 및 기술 경쟁에 관한 150개 항목의 정책 권고 보고서에서 라그랑주점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모든 라그랑주점에 자산을 영구적으로 주둔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해, 우주에서 중국 공산당의 악의적인 야망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나사와 국방부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라”고 콕 집어 요구했다.

현재 나사는 2020년대 후반에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달 궤도 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의 타원형 궤도 운용에서 제2 라그랑주점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 공군연구소(AFL)는 라그랑주점을 궤도로 하는 달 구역 순찰 위성(CHPS) 프로그램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항공우주국이 추진하고 있는 달 궤도 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 상상도. 나사 제공

지구와 달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어

지구-달 시스템의 제3~5 라그랑주점은 제1~2 라그랑주점보다 지구에서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궤도가 매우 안정적인 제4, 제5 라그랑주점(L4, L5)도 향후 전략적 가치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두 지점은 지구를 공전하는 달의 앞뒤로 60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어 지구와 달 전체를 한꺼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훗날 달 기지가 생긴다면 지구-달 경제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유럽인들에게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근대 이후 세계 패권의 중심은 바닷길을 장악한 나라에 있었다. 앞으로 우주를 기반으로 한 산업이 갈수록 커지고 달 기지가 현실화하면 우주의 길목을 선점하느냐 여부가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우주시대의 세계 패권을 노리는 국가들엔 지구와 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라그랑주점이 지구- 달 시스템을 아우르는 패권 전략의 요충지로 떠오를 수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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