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사람의 길』 한승원 “야만의 세상에서 사람의 길을 벗어나면 벌레가 된다”[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4. 1. 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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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도 에세이적인 소설도 있고, 에세이에도 소설적인 에세이가 있지 않는가. 시에 산문성이나 서사가 가미되면 재미있는 시가 될 수 있고.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그 동안 썼던 성인 동화나 에세이, 시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형식에서 자유로운, 이때까지 쓰지 못한 소설을.

“오래 전에 소설 『추사』를 썼는데, 추사는 젊을 때에는 해서체와 예서체, 초서체, 전서체 등 글씨체를 구별해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일흔을 넘어서면서 초서와 해서, 전서, 예서를 모두 한데 어우르는 글씨를 썼어요. 봉원사의 판각 글씨처럼 특정 글씨체를 초월해 융합시켜 종합적인 글씨를 썼지요.”

60년 가까이 글을 써온 그는, 팬데믹 시기 중에 ‘이삭줍기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오랫동안 고민해온 새 형식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자서전 성격의 『산돌 키우기』(2021, 문학동네)의 연장선상이었다. 자신의 삶과 문학을 소설의 형식으로 정리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시력이 약해졌으므로 한 삼십 분 활자를 훑으면 눈물이 고여 눈앞이 금방 안개 낀 듯 아물아물해지곤 함에도,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 망상일지도 모르는 시상을 모아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데 시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소설이고 한, 자기만의 특이한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우주 운행이 멈추어버린 듯 갑갑하고 답답해진다.”(53쪽)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이 시와 에세이, 동화, 소설 등 다채로운 형식을 융합한 장편소설 ‘사람의 길’(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시에서 수필로, 수필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시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러 형식이 융합된 작품이다.

한 작가는 여러 형식이 융합된 이번 작품에서 다양한 분신들을 내세워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소설 속에선 작가와 분신이 서로 논쟁을 하며 문학과 삶, 세상을 사는 지혜 등을 둘러싼 다채로운 사유를 펼쳐낸다. 우리가 왜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하며, 과연 어떻게 하면 사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를.

특히 야만의 세상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노인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쥐새끼’를 척결하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길이라고 역설한다. 사람의 길을 벗어나면 벌레가, 짐승이 된다고. 이 과정에서 만행에 나선 초의 선사가 쌍봉사에서 늙은 스님과 선문답을 하는 장면을 통해서 쥐새끼론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늙은 스님이 절을 마치고 정좌한 초의에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무얼 하러 왔느냐고 묻자, 초의는 속에서 솟구치는 말을 내뱉는다. “여기 늙은 쥐새끼 한 마리가 사람 껍질을 쓰고 앉아 있다고 해서 본디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왔습니다.” 늙은 스님은 “너처럼 그렇게 한눈에 내 속에 기생하는 그 쥐새끼를 꿰뚫어 봐버린 놈은 처음 본다”며 가까이 오라고 한 뒤, 갑자기 초의의 코를 잡아 비튼다. 초의는 아픔을 참을 수 없어서 늙은 스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젖히려고 버둥거리다가 일순간 깨닫게 된다는 일화다.

작가는 구제와 구원을 제시하는 예술의 책무를 등에 짊어지고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사람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옹졸하고 편협한 사익의 추구가 아닌,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과 함께 하는 화엄의 길을, 인간 구원의 길을.

“이야기는 모두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은 습관을 바꾸고, 그 습관은 전 인생의 운명을 바꾸어준다. 특히 모든 삶에서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는 한 인간이 죽어가는 순간에 남기는 유언처럼. 축구 경기의 막판에 터진 극장 골이나 농구 경기의 버저비터처럼 삶의 결과를 바꾸어준다.”(141쪽)

원로 소설가 한승원은 왜 다양한 형식이 융합된 소설을 써야 했고, 그것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진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 작가를 지난 15일 전화로 만났다.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즐겁게 썼다. 찰리 채플린은 ‘실패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자신을 희화화시켜서 살면 삶이 더욱 진실해진다. 말하자면, 저의 삶 속에서 진정성과 모든 것들을 희화화시켜 보게 되니까 오히려 보다 진실이 순수해지더라. 시인은 시끄러운 것에서 고요 속으로 나아가는 삶을 산다. 시인이 살고 있는 토굴에 율산이라는 틈입자가 나타나는데, 사실은 제 분신이다. 우주 상담사라고 뻐기면서 철학적인 얘기나 문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율산을 등장시켜서 율산이 생각하는 것도 희화화해 들여다보는 시각이 재미있었다.”

―‘흑백 망점 기법’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흑백 망점 기법처럼 살고 싶다는 것은, 좀 자자부라한 것에서 소홀해지고 초연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다. 흑백 망점 기법은 사진가들이 현상할 때 세세한 것들을 단순화시키는 기법이다. 삶을 단순화시키고 순수화시키는 것이 바로 흑백 망점 기법이다.”

―작품에는 여러 분신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대표적인 틈입자가 율산인데, 율산은 우주 상담사라고 자칭하고 삶을 단순화시키고 차원을 높여서 시인이나 신선처럼 살고 동화적인 신화적인 삶을 산다. 가령 갈매기들이 제 삶을 뚫어보는데, 갈매기의 시점이 바로 저의 시점이다. 외계인의 시각이나 외계인의 언어로 우리 삶을,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시인들이 바라보는 시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든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자기 시어로 표현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다. 우리 나이가 되면,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을 함께 산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문뜩 봄에 여행을 가고 싶으면 버스를 타고 나가고 했다. 버스 속에서 여러 생각들을 한다. 과거 경험도 만나고 추억도 만나기도 한다. 장흥과 강진 등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의 길은 무슨 길인가.

“조선조 선비들이 집을 나서자 길을 잃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이 길을 잃어버리면 벌레가 된다. 요즘 사람들은 소인 근성 때문에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서 권력 또는 이익 카르텔에 얽매여 사는 것 같다. 바람직한 삶을 산 사람들도 거의 없고, 원로 역시 없는 세상이다. 야만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우리 민요에 아리랑 고개라는 표현이 있다. 아리랑 고개 이쪽은 폭압과 배반과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 박해받는 세상이라면, 고개 너머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와 안식이 있다. 아들이 반강제로 집 안에다 가두듯이 하고 있는 노인이 사실은 내 분신으로, 그런 속에서 나온 게 사람의 길이다. 야만의 세상 속에서 사람의 길을 사는 것, 올바르게 사는 길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인 근성을 버리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문학과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종교인들의 삶이나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두 인간 구원에 있다.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는 미국 공항기의 비극을 다룬 작품인데, 마지막에 주인공의 딸이 마구간에서 해산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나서 젖이 퉁퉁 붓는데, 죽어가는 남자의 입에 젖꼭지를 물려서 남성을 살려낸다. 인간 구원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루벤스의 그림 「세몬과 페로」는 손이 뒤로 묶인 긴 수염의 노인이 젊은 여자의 풍만한 젖꼭지를 빨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금 야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인데, 젖을 빨고 있는 남자는 역모죄에 걸려서 굶어죽는 아사형을 선고받은 아버지다. 그림은 바로 해산한 딸이 매일 아버지를 찾아가서 젖을 먹이는 장면이다. 역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이 제 소설의 주된 화두이다. 결국 소설을 쓴다는 것이 구도적인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작가의 말」에선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이라고 했는데, 조금 설명해준다면.

“제가 문학 강연을 할 때마다 마지막에는 ‘나는 살아 있는 한 시와 소설을 쓰고, 시와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한 번은 한 노인이 만약에 한쪽 바퀴라도 무너지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수도 있다는 것이냐고 묻더라. 선문답하듯 대답했다. ‘꿈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어진 계단을 실수 없이 계속 밟고 올라가면 밤새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꿈속 계단에서 헤매지만, 거기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자는 깜짝 놀라서 깨어난 다음 다시 깊은 잠을 잘 수 있다’고. 이 이야기가 대답을 해줄 것이다.”

“승원이는 나중에,” 어느 날 장흥고 문예반 소속으로 ‘문학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고교생 한승원은 지도교사 김용술의 입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었다. 1년 선배 송기숙과 함께 교내 잡지 『억불』을 창간하고 수필까지 실은 그는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문학병에 걸리고 말았다. 잘 하던 학과 공부를 젖혀두고 시나 소설을 미친 듯 써댔다. 그런데 김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분명히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야!”

내가 나중에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라고? 문학병으로 문제아 아닌 문제아가 된 그에게 김 교사의 말은 예언 아닌 예언이 됐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세계’에서 자유를 맛보고 현실적인 삶을 살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장흥고에 진학해 문예반에 들어온 그였다. 하늘같은 선생의 믿음이 그의 운명을 바꿔버렸다고, 그는 회고했다.

“문예반 지도교사 김 선생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저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은 저의 운명을 바꾸어준 은사입니다. 저에게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라고 예언했는데, 그것은 저의 운명을 바꾸어 놨습니다.”

고교 졸업 뒤에는 낮에는 소를 끌고 밭으로 나가서 쟁기질을 했지만, 밤에는 방안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문학의 꿈, 이야기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려는 꿈은 거듭된 낙방으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논 두마지기를 팔아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서라벌예대에서 김동리의 ‘이야기의 힘’, 서정주의 ‘역설의 묘’, 박목월의 ‘형상화’ 등 소설과 시를 배웠고 송기숙과 이문구 등 선후배들과 문학의 향연에 젖어갔다.

1939년 장흥에서 태어난 한승원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안개바다』, 『폐촌』, 『포구의 달』 등과 장편소설 『해일』, 『해산 가는 길』, 『멍텅구리배』,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원효』, 『추사』, 『다산』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소설문학상을 시작으로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특히 1997년 고향으로 귀향한 뒤 해산토굴에 스스로를 가두고 형벌처럼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다. 커다란 바위를 들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일부 평론가들은 작품 세계에서 ‘한’의 정서를 주목하기도 했는데.

“한(恨)은 정한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치유하려는 흥(興)과 해학, 의지와 투쟁적인 몸부림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생명력이다. 대부분의 평자들은 정한의 정서만을 말하더라. 저의 작품 세계에 들어 있는 것은 생명력이다. 영화화되기도 하고 많이 팔려줘 저의 삶을 많이 도와준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소설로 형상화한 화엄경이다. 화엄경은 이 세상을 꽃으로 장식하기(구원)이고. 저의 세계는, 모든 고전 작품 세계가 그렇듯, 인간 구원이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제 소설쓰기의 원칙이라고 한다면 구원이다. 구태여 얘기한다면, 화엄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론 중생들을 제도한다, 이것이 화엄의 요체다. 화엄은 우리 삶의 궁극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의 일환이 저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구도적인 글쓰기이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 사람의 길인 이유다.(그 동안 잘 구현한 것 같은지) 제 작품 한편 한편이 우주를 제 나름대로 제 빛깔로 색칠했던 것 아닌가 생각을 한다.”

―한강 작가와는 자주 연락하는지.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주로 무슨 얘기를 많이 하시는지) 그 아이가 앞장서서 가기 때문에 저에게 많은 정보를 준다. 이번 작품에도 자연친화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는데, 인디언 후손 출신의 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책 『이끼와 함께』와 『향모를 땋으며』 등 자연친화적인 삶을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보내줬다.”

파장에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고 있던 한 노인이, 길을 묻은 여행자에게 자신의 인생의 길에서 이삭 줍듯 주워 담은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긍께 말이여,.... 이야기에서 소설로, 노래에서 시로, 손짓에서 동화로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지만, 이야기들은 화엄 같은 삶의 장엄이다. 노인의 이삭이 여행자의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 줄지, 운명을 격동시킬지도 모른다. 지평선 아래로 막 상체를 숙이려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의 운명도.

“깨어 있는 개가 어둠의 어른거리는 한 형상이나 울리는 지축을 향해 짖듯이, 귀를 가진 모든 것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고 짖습니다. 소리 나는 쪽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이 이야기가 되고 그 속에 또 하나의 새 길이 열립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듯 나는 가장 쉽고 편리한 곳을 향해 길을 만들어갑니다.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입니다.”(327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한승원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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