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어머니가 꾸지람 대신 사준 자장면 한그릇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2024. 1. 23.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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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보다 효과적인 소통의 기술

내가 입사하던 1980년대초 언론산업은 호황기였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신문 발행부수는 날로 늘어났다. 월급도 대기업보다 많았다. 전국지는 조·석간 합쳐 6개뿐. 이밖에 통신사 1개, 지상파 TV 2개, 군소 신문 서너개가 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인터넷을 포함해 수천 개 매체가 난립하는 시절과는 달랐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사소한 ‘마음’이나 ‘행동’에 더 감동을 받는다. /셔터 스톡

나름 자부심도 높았고 회사 분위기도 좋았다. 200명 가까운 기자가 매일 12면을 제작하니 정성도 대단했다. 저녁 7시쯤 퇴근하면 단골 음식점으로 몰려가 소주잔을 나누면서 격의 없는 토론을 벌이며 회포를 풀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5공 군사독재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는 보도되지 못했고 담당 기자나 간부는 기관에 끌려가 ‘봉변’을 당했다. 서슬 시퍼런 상황이라서 정권과 관련된 기사를 쓸 경우에는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기자들은 초년병 시절부터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을 명확히 구분해 쓸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예컨대 ‘구름 한점 없는 날씨’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상쾌한 날씨’는 주관적 의견이다. ‘그 여자가 미인대회서 1등을 했다’는 표현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은 ‘의견’이다.

군사 독재 하에서 우리는 의견은 줄이고, 사실만 보도할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마저도 문제될 수 있었다. 보도됨으로써 정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된다면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예컨대 부동산 사기사건 피해자 중에 현직 ‘장군 부인’이 포함된 기사가 나갔다고 보안사(현 기무사) 사복 군인들이 신문사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국의 검열을 피해 국민에게 사실과 정보를 알려주려면 기자들이 ‘언어의 마술사’가 돼야 했다. 형용사·부사는 물론 조사까지도 의미를 담아 선택했다. 민감한 상황을 보도할 때 선배들은 흔히 이렇게 주문했다.

“사설 쓰듯 하지 말고 스케치하듯 보여줘.”

쉽게 말해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Show, Don’t tell)”다. 기자가 심판자가 돼 상황을 말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대로 묘사해주고,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게끔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군사독재시절에는 정부 검열을 피하기 위해 기자들은 ‘언어의 마술사’가 돼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온갖 매체들이 등장, 책임지지 않는 주장 등을 기사화 하면서 공론의 장은 도리어 혼탁해졌다. 사진은 국민의 힘 대변인 시절 김은혜 의원이 기자회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 내가 2000년대 중반 신문사를 나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미국 컬럼비아대 교재인 《뉴스와 보도・News & Reporting》에서 ‘Show, Don’t tell’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필자가 일일이 설명을 하면 독자는 수동적이 되고, 필자가 묘사에 그치면 독자는 적극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이다….”

그러나 ‘Show, Don’t tell’이 단순히 글 쓰는 기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강의 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나보다 한 세대 어린 젊은이들과 진정한 소통은 ‘내가 말할 때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줄 때’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말을 하면 그들은 수동적이 된다. 그러나 내가 들으면 그들은 적극적이 된다. 나아가 마음의 문을 열고 호의적으로 나온다. 내가 한 일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준 것(show)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세상살이 이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사소한 ‘마음’이나 ‘행동’에 더 감동을 받는다.

어렸을 적 시험을 망쳤을 때 어머니가 꾸지람 대신 사준 자장면 한 그릇, 힘든 이등병 시절 고참이 다가와 말없이 건네준 담배 한 개비, 사건기자 당시 헤매는 나를 삼겹살집으로 데려가 덤덤히 건네주던 선배의 소주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Show, Don’t tell’이야말로 요즘처럼 사실보다 의견, 객관보다 주관, 이성보다 감정의 언어가 지배적인 세상…온갖 주장과 위선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인생의 경구(警句)가 아닐까.

나도 말을 줄이고 묵묵히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나 쉽지 않다. 어느새 남들을 향해 비판하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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