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줍줍에 청약통장 무용론 확산… 작년 76만명 해지
분상제 규제 완화도 한 요인
"청약통장이 없어서 집을 못사는 게 아니다. 분양가가 미쳐서 엄두도 못내는 것."
"장기 가입으로 무주택 만점이어도 혼자 살아서 청약 가점제는 진작에 포기했다."
작년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면서 '청약통장 무용론'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청약통장 유무보다는 새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높게 책정돼서 못사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고분양가 여파로 일명 '줍줍'으로 불리는 미계약분이 현장마다 꾸준히 나오면서 청약통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부정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22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전국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작년 12월 말 기준 2561만3522명으로 2022년 12월 말 2638만1295명에 비해 76만7773명이나 줄었다.
재작년 6월 2703만1911명으로 정점을 찍은 가입자 수가 18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다. 특히 이 기간 무려 141만8389명이나 청약통장 해지를 강행했다.
연도별로는 작년 청약통장 가입자 감소 규모(76만7773명)가 재작년 감소 규모 47만7486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청약통장 이탈이 늘어나는 것은 우선 금리 문제가 지적된다. 청약통장 금리가 시중은행 예금 금리보다 낮아 해지가 증가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작년 부랴부랴 2.8% 수준까지 청약통장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시중은행 금리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라는 청약수요 이탈자의 발걸음을 붙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에 작년 초 1.3부동산대책으로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규제가 대거 풀린 영향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나마 재작년까진 분상제로 시세대비 저렴하게 분양가가 책정돼 '로또청약' 기대로 수요가 몰렸지만, 최근에는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하고 전국의 분상제가 해제됐고 원자재가격 인상과 고금리로 시세 수준의 분양가를 책정하는 현장이 늘면서 청약시장 열기가 시들해졌다. 혹시나 싶어 청약을 넣었다가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증가 추세다.
실제 작년 서울에서 분상제로 묶여있는 강남3구(서초·강남·송파)를 제외한 전 지역의 분양가격이 시세보다 높았던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작년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 지역의 3.3㎡당 분양가는 평균 3505만원으로 전년(3442만원)과 2년 전(2549만원) 대비 각각 63만원, 956만원이 올랐다.
반면 2021년 3506만원 선이었던 강남3구 외 지역의 3.3㎡당 평균 매매가는 2022년 3276만원, 2023년 3253만원 등으로 2년 연속 하락했다. 강남3구의 경우 작년 공급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분양일정이 대거 밀린 물량이 나올 예정이라, 올해는 분상제 규제에도 강남3구 분양가 역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만간 분양에 나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는 분상제 적용을 받지만 평균 분양가가 3.3㎡당 6705만원으로 책정된 상태다.
게다가 연초 강북에서는 이미 3.3㎡당 1억원이 넘는 물량이 등장해 평균 분양가를 크게 끌어올릴 전망이다. 서울 광진구 옛 한강호텔 부지에 들어서는 '포제스 한강'이 역대 최고 분양가를 새롭게 쓴 것. 주택형별로 전용 84㎡가 32억~44억원대, 펜트하우스인 전용 244㎡는 150억~160억원 선으로 책정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만간 청약통장 가점제 당첨조건이 바뀌기 때문에 장기가입자라면 통장을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민영주택 일반공급 가점제에서 동점자 발생시 현재는 추첨제로 당첨자를 가려내지만, 오는 3월 25일부터는 청약통장 장기가입자가 최우선 순위로 올라간다.
또한 당첨자 발표가 같은 날인 아파트 청약에도 부부가 각자 개별 통장으로 신청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부부 모두 통장을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오는 3월부터 장기가입자가 유리하도록 청약 당첨조건이 바뀐다"며 "물론 분양가격이 최대 청약 허들로 작용하겠지만, 최근 청약 당첨 커트라인도 낮아지는 추세라 청약으로 내집마련을 준비 중인 수요라면 당첨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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