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멀리하고야 깨달았다…‘아, 나 마라톤 좋아하네’

심우삼 기자 2024. 1. 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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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인류④ 디지털 디톡스
폰 없는 캠프·카페·리조트
“처음엔 불편, 적응하니 웰빙”
스마트폰 중독 탈출. 게티이미지뱅크
 도파민은 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거나 성취하는 과정에서 ‘기쁨’의 감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게임이나 쇼핑을 할 때, 음란물을 볼 때도 보상 작용처럼 도파민이 분비된다. 비슷한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도파민을 적게 생산하거나, 도파민에 반응하는 수용체 수를 줄인다. 동일한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자극을 찾는 ‘중독’으로 가는 길이다.

세상 모든 자극의 집합소인 스마트폰과 도파민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스마트폰은 위험하지 않다’고 방심하는 사이 우리는 도파민을 얻고, 대신 많은 것을 잃었다. 스마트폰 중독 실태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알고리즘의 비밀, 치유책을 4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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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들이 집단 상담을 받고 있다. 김채운 기자

“저는 스마트폰 중독인 것 같아요.”

지난달 11일 전북 무주에 위치한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드림마을)의 ‘치유 캠프’에서 만난 윤호(가명·15)는 겨울방학을 맞아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된 이곳에 자발적으로 입소했다. 입소자 대부분은 보호자나 학교, 상담기관의 권유로 캠프에 오는데, 윤호는 되레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했다. 윤호는 중학교 1학년 전교 3등까지 올랐던 성적이 1년여 만에 두자리 등수로 떨어진 게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윤호는 하루 평균 4시간, 많게는 6시간씩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달간 스마트폰 사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Detox·해독)’에 나선 30여명을 만나 이들의 생활을 관찰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공간을 찾아 자발적인 ‘디지털 단식’을 시도하거나, 일상의 소소한 행동부터 바꾸어가는 ‘디지털 자가 치료’를 실천하고 있었다.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디지털 디톡스가 스마트폰 중독에 찌든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마트폰 없는 일주일 경험해보니

지난달 11일은 온종일 스마트폰을 놓지 않던 윤호가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윤호는 평온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여러 활동을 경험하다 보니 스마트폰 생각을 점점 잊게 된다. 운동을 전혀 안 했는데 여기서는 풋살도 하고 농구도 한다”며 “앞으로 스마트폰 없이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4년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드림마을은 윤호처럼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진 청소년들의 ‘디지털 디톡스’를 돕는 국내 유일한 시설이다. 입소자들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 남짓 기숙 시설에 머무르면서 스마트폰 없는 삶을 경험한다. 아침 7시30분에 눈을 떠, 밤 9시30분에 잠들기까지 각종 문화·체육·체험 활동을 하고 임상심리전문가들로부터 상담과 치료도 받는다.

전북 무주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한 청소년이 집단 상담을 받던 중에 자신의 스마트폰·인터넷 사용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집단 상담이 한창인 가운데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발표하는 시간.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우정”, “스트레스 감소” 등을 얻은 반면 “가족관계”, “건강” 등을 잃었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가족과 갈등을 빚었고 그로 인해 가족과 소통이 단절되며 다시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험했다는 고백이 많았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며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쓴다는 경범(가명·16)이는 “엄마가 친척 집에 가면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 (너무 스마트폰을 많이 해서) 엄마랑 많이 싸워 가족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루에 6시간씩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는 윤상(가명·13)이는 “게임에서 죽이는 걸 많이 하다 보니 슬픔이란 감정에 무뎌졌다. 얻은 건 한순간의 재미밖에 없다”고 했다.

숨 쉬듯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빼앗긴 아이들은 처음엔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스마트폰 하는 꿈을 꿨다”며 금단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매일 밤 곁을 비춰주던 스마트폰 불빛이 없어서인지, 몇몇 아이들은 취침 시간 불 꺼진 방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불안이나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스마트폰 없는 삶에 익숙해진다. 윤호는 “꿈꿀 때 브롤스타즈(스마트폰 게임)가 생각났다. 금단 현상이 있었지만 점점 잊게 됐다”고 했다.

실제 캠프를 경험한 아이들의 가족 적응력과 자기통제력이 나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드림마을이 특정 차수 수료생들의 캠프 종료 직후 효과성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가족 적응력은 59.9%→65.57%, 자기통제력은 61.45%→67.41%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드림마을은 올해 총 22차례의 캠프를 계획하고 있는데, 남학생 대상 캠프의 경우 2월까지 모두 마감됐다.

성인들 사이에서도 의도적으로 모든 전파를 차단하는 ‘디지털 디톡스 리조트’를 찾아 디지털 단식을 경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21년 처음으로 리조트 전체에 전파가 차단되는 ‘힐리언스 선마을’을 찾았던 이경남(61)씨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뇌를 쉬게 하는 경험’을 처음 한 뒤 삶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영업직이라 손에 스마트폰을 항상 쥐고 사는데, 디톡스를 경험한 뒤로는 쉴 때 폰을 내버려두고 취미 생활에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어요. 명상에 몰입하면서 뇌가 시원해지고 정신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처음 경험했거든요.”

지난 1일 서울 역삼동 ‘욕망의 북카페’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일상 속 디지털 디톡스도 인기

일상 속 디지털 디톡스를 표방하는 공간도 인기다. 지난 1일 찾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욕망의 북카페’에는 새해 첫머리부터 이용객들이 북적였다. 2층 주택을 개조한 카페 안 20석 자리가 금세 차더니 대기줄까지 만들어졌다. ‘디지털 디톡스 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에선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 ‘핸드폰 감옥’이란 이름의 보관함에 스마트폰을 맡겨야 입장이 가능하고, 중간에 되찾아 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스마트폰을 건네주며 ‘수감’에 동참했다.

일주일째 카페를 찾고 있다는 대학생 김한규(20)씨는 벌써 디지털 디톡스의 효과를 느끼고 있다. 그는 “수능을 볼 때까지는 스마트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수능 뒤 스마트폰 사용을 시작하니 1시간 집중하는 것도 힘들어졌다”며 “카페에 처음 온 날엔 이런저런 잡생각도 들고 불안해서 1시간도 집중하지 못했지만, 일주일째 이용해보니 이제는 4∼5시간 집중해 책을 읽는 것이 어렵지 않다. 릴스나 쇼츠에서 도파민을 얻을 때보다 삶의 행복도와 만족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목표로 만들어진 모임도 있다. 지난해 부산에서 결성된 청년 모임 ‘단하루’는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되는 대신, 베이킹, 다도, 북 토크 같은 다양한 실내 활동을 함께 한다. 단 몇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에 손대지 말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다. 스마트폰을 강제로 걷진 않지만, 비행기 모드로 통신을 차단하는 게 원칙이다. 매달 한두번씩 열리는 이 모임에는 적게는 2명, 많게는 4명이 참여한다. 모임 회원인 김주연(33)씨는 “보통 소모임 활동을 하면 에스엔에스(SNS)를 하거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실제로는 본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모임에선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욕망의 북카페’에 있는 스마트폰 보관함. 이곳에선 스마트폰 이용을 할 수 없다. 김채운 기자

일상 속 ‘디지털 웰빙’ 실천도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동부터 바꾸는 방식으로 ‘디지털 웰빙’을 실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 입대 전 온종일 ‘인스타그램에 뭘 올릴까’만 고민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독 증세를 보였던 김훈민(25)씨는 군 입대를 계기로 강제 디지털 단식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씨를 비롯해 동료들은 훈련이 고되다 보니 다들 저녁엔 쇼츠나 릴스를 보며 멍하니 누워 있기 일쑤였다. “입대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니 인스타그램은 줄었지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저녁 6시부터 3시간이 넘게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 빠져 지냈어요. 몸을 움직이기는 싫으니 아무 생각 없이 밤까지 영상을 보게 되는 거죠.”

모두가 침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군대의 풍경은 그에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줬다. 그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하고 대신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전역했을 때는 짧은 자극에 절여지지 않고 뭔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됐으면 좋겠어요. 디톡스를 한 후 다른 것에 몰입하는 게 쉬워진 것 같습니다.”

1년 전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해온 고순미(48)씨는 스마트폰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는 것으로부터 삶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여가 시간에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명상·산책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마라톤이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내가 안방에 있으면 거실에, 거실에 있으면 안방에 스마트폰을 놨어요.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면서, 나를 통제할 준비를 하는 ‘스몰 스텝’이 중요한 것 같아요.”

‘효도폰’으로 불리던 폴더폰이 이제는 20∼30대 사이에서 강제 ‘디지털 디톡스 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톡 등 일부 앱은 구동이 가능하지만, 구동이 느리거나 제약이 많아 디지털 단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 스크린타임이 16시간에 이르렀던 대학생 김건희(23)씨는 지난해 폴더폰을 사면서 수면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폴더폰을 사용하면서 사용 시간이 크게 줄어서, 그동안 달고 살던 수면 장애도 사라졌어요. 일을 미루면서까지 스마트폰을 보던 습관이 사라져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사용자 설정대로 제한하는 ‘잠금 앱’ 활용도 늘고 있다. 특정 시간대를 설정해 폰 전체를 잠금하거나, 앱별로 잠금을 설정할 수 있는데, 설정을 해제하려면 돈을 들여 포인트를 구매해야 한다. 숙면을 위해 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폰 잠금을 걸어둔다는 조원영(32)씨는 “돈 써가면서까지 해제하고 싶지 않아 강제로 지키고 있다. 폰 보다가 새벽 늦게 자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못 쓰게 돼 효과가 크다”고 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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