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조작하고 포르노 찍어내는 정부…80년뒤 러시아가 열광한 이 책 [나쁜 책]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1. 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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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마지막 회] 조지 오웰 ‘1984’
[금서기행, 나쁜 책]은 전 세계 현대의 금서를 여행합니다. 국가가 발행을 중단시킨 문학, 좌우 논쟁을 촉발한 논픽션, 외설의 누명을 쓴 예술, 동서고금의 필화 스캔들을 다룹니다.

학창 시절 자주 언급된 소설 ‘1984’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국가 시스템이 자행하는 ‘인간성 말살’을 날 선 문장으로 비판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소설 ‘1984’의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독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본디 너무 유명한 책이란, 사실 아무도 안 읽는 책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미 고전이 된 ‘1984’가 다시 화제입니다. ‘1984’는 러시아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옆나라 벨라루스는 ‘1984’를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소설 ‘1984’는 왜 아직도 논란의 중심에 자리할까요. 오늘은 조지 오웰 장편 ‘1984’를 여행합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03년생으로 47세인 1950년 1월 21일 사망한 ‘단명의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오웰의 문학은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걸작으로 기억됩니다. 사진은 AI 미드저니가 묘사한 조지 오웰의 초상. [Netha Hussain·Wikimedia Commons]
아무도 비판하지 않은, 정부의 ‘집단 통계조작’
가상의 미래를 그린 소설 ‘1984’에 담긴 작중 국제정세부터 살펴볼까요.

소설 세계엔 오직 세 개의 강대국만 존재합니다. 러시아가 동·서 유럽을 전부 흡수했고(유라시아), 미국은 북·남 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호주, 그리고 영국을 통합했으며(오세아니아), 중국은 동남아 국가와 한국, 일본, 대만 등을 10년간의 전쟁 끝에 점령했습니다(동아시아).

전쟁 중인 세 나라는, 그러나 사실 이념이란 게 별반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 국가이며, 일당독재 하 배급 시스템에 의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전체주의 국가를 묘사한 한 외국 작가의 그림. 소설 ‘1984’는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동아시아 등 세 강대국으로 분열된 세계를 묘사합니다. 이들 국가는 서로 전쟁 중이지만 사실 이념이 별로 다를 바도 없고 내부 시스템도 엇비슷합니다. [Eduardo Ruiz Mondragón·Wikimedia Commos]
‘1984’ 주인공 이름은 윈스턴 스미스입니다. 그는 오세아니아의 생계형 공무원입니다. 윈스턴은 미디어, 예술, 연예, 교육을 관장하는 ‘진리부’에 근무합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의 혼합 부처였지요. 그는 이곳에서 기록 변조를 담당합니다.

윈스턴의 주업무인 기록 변조란 국가가 공표한 통계 수치를 사후에 ‘조작’하는 일이었지요.

정부가 발표한 생산계획은 매번 숫자가 틀렸습니다. 제대로 된 생산에 기여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예측했던 수치가 미달했는데도 목표치를 초과달성했다는 식으로 기록을 바꿔치기하는 것. 그게 윈스턴의 일과였습니다.

주인공 윈스턴의 직업은 말단 공무원으로, 그는 정부가 발표한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명저 ‘1984’는 지금까지 3회 이상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은 소설 ‘1984’를 영상화한 2023년 영화 ‘1984’의 한 장면. [IMDb]
일반인은 정부 기록물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윈스턴은 통계수치를 마음껏 조작할 수 있었지요. 무려 일간신문에 보도됐던 내용을 사후에 바꿔도 별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원본은 이미 파기된 상태였습니다.

국민은 정부를 맹신하고 맹종합니다. 시민들은 혼재된 과거 기억과 확실한 현재 기록 사이에서, 윈스턴이 저지른 조작을 신뢰하지요. 그 믿음의 결과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이 퍼졌습니다.

정부에게 조작은, 현실을 장악하는 가장 쉽고 빠른 선택이었습니다. 책은 묘사합니다. “서류상으로는 매년 천문학적인 숫자의 부츠가 생산되지만 국민의 거의 절반이 맨발로 생활하고 있다.”(75쪽) 맨발로 생활하면서도 날조된 기록(부츠 생산 증가)이 주는 희망에 안도했습니다.

소설 ‘1984’에 묘사된 세 강대국의 모습. 북남미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호주가 통합된 오세아니아, 동유럽 전체를 러시아가 흡수한 유라시아,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 한국과 일본과 대만이 모두 합쳐진 동아시아만이 존재합니다. 책에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따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Wikimedia Commos]
여성이 만든 ‘싸구려 포르노’, 국책사업이 되다
윈스턴이 보는 세상의 풍경은 이랬습니다. 모두가 세뇌된 상태입니다. 어린 남자아이는 여동생에게 ‘가짜 총’을 들이대며 “사상범! 반역자!”라고 외칩니다.

남매가 자주 하는 ‘체포 놀이’였지요. 엄마는 “아이들이 오늘 ‘교수형 구경’을 못 가서 저러는 것”이라고 말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시장에선 이런 풍경도 보입니다. 한 중년 여성이 정부가 만든 포스터로 물건을 포장하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그 여성의 치마에 성냥으로 을 붙입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모독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런 와중에, 포르노는 국책사업이었습니다. 성욕만큼은 절제가 안 되니, 정부가 아예 ‘싸구려 포르노물’을 직접 만든 겁니다. 채용된 포르노 제작자는 전부 여성이었고 남성은 제외되었습니다. 남성들이 보면 ‘오염’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찰싹 때리는 이야기들’과 같은 저급한 제목의 포르노가 밀봉되어 유통됐다고 책은 서술합니다.

책은 모든 것을 정부가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묘사합니다. 사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해외 판본과 한국어판. 후술하겠지만 ‘1984’는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면서 현재 한국에서 10여종 이상이 판매 중입니다. 기사는 오른쪽 한국어판을 저본 삼았습니다. 왼쪽은 해외 출판사 펭귄북스가 2008년 출간한 영문판 표지.
이 나라에선 불법적인 쾌락도 장려되었습니다. 특히 불법 성매매였지요. 결혼의 목적은 사랑과 교감이 아니라 ‘당(黨)을 위해 헌신할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었으므로, 부부 간 성교는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 아닌 정부 지침 사회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빈민가엔 ‘술 한 병’으로 치마를 내려줄 가난한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정부는 불법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무지하고 무비판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윈스턴은 서서히 환멸감을 느낍니다. ‘이 나라가 근원적으로 잘못 작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윈스턴의 반골 기질을 알아챈 회사 상사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접근합니다.

오브라이언은 정부로부터 사회악이자 병폐로 규정된 ‘지하 반군’ 수장 골드스타인의 수하였는데, 그는 윈스턴에게 한 권의 을 읽게 합니다. 존재한다고 알려졌지만 정말로 실재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골드스타인의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윈스턴이 지나가는 거리 벽면에는 ‘전쟁은 평화(War is Peace)’라는 선전 구호가 가득합니다. 유라시아, 동아시아와 전쟁 중인 오세아니아 정부는 전 국민을 전쟁에 동원합니다. 이 나라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언제나 전시(戰時)입니다. 사진은 조지 오웰의 아들(양자)이 운영 중인 오웰소사이어티가 2022년 발행한 잡지의 표지 모습. [orwellsociety.com]
사회주의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두 가지 이유
윈스턴은 골드스타인이 집필했다고 알려진 그 책의 첫장을 펼칩니다.

‘1984’의 가장 핵심적인 매력은, 이 책을 윈스턴이 읽는 대목입니다. 골드스타인은 왜 이 나라가 영원히 전쟁 중인지를 비판적으로 파고드는데, 여기서 작가 조지 오웰의 통찰이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은 주인공 윈스턴이 읽는 골드스타인의 문장을 통해 ①평등을 정의로 내세우는 자에게 권력을 쥐여줘도 세상의 불평등 구조는 왜 사멸하지 않는지를 고찰하고, 이어서 ②인류는 왜 항상 계층화와 강력하게 결합하여 다수의 노예를 낳는지를 함께 사유합니다.

이는 단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라 소설 바깥을 살아가는 인류사의 풍경이기도 하지요.

좀 더 깊게 들어가 볼까요?

붉은 깃발을 든 한 남성의 모습. [Wikimedia Commons]
먼저 골드스타인은, 세 강대국이 왜 전쟁을 일으키고 또 전시를 유지하는지를 성찰합니다.

골드스타인의 책에 따르면, 세 강대국은 전쟁으로 인해 얻는 경제적인 소득이나 실익도 없습니다. 이들 국가 내에서 생산과 소비는 하나로 묶여 있어서, 새 시장을 개척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원자재는 자국 내에 풍부했고, 이미 소비 주체도 상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비(非)전쟁 상태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두고 골드스타인은 ‘잉여 생산물의 소진’과 ‘계층 사회의 유지’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 ‘오늘날의 전쟁은 ‘전쟁’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것(세 열강의 전시상태)은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뿔이 이상한 각도로 뻗어 있는 반추동물과 비슷한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이 무의미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잉여 소비재를 소진시킬 뿐만 아니라 계층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정서를 유지하는 데 유용하다. 이제 전쟁은 철저한 내국적인 상황의 일환이 되어버렸다. 전쟁이 영구히 지속되면서 이제 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269~270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에 비극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소설 ‘1984’에서 골드스타인은 실익이 없는 상태에서도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고 전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서술합니다. 사진은 러시아 반(反)정부 민병대 ‘러시아의용군단(RVC)’이 무장 대기하는 모습. 전쟁에 반대하는 의용군이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묘하고도 슬픈 사진입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이 항구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잉여 생산물의 소진 때문이라면, 잉여 생산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생산부터 억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골드스타인이 간파한 정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생산을 억제하면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고 불황은 일자리를 감소시키며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국가 보조금에 기대게 됩니다. 그러면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하여 정권이 무너진다고 골드스타인은 봤습니다.

그렇다면 생산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면서 잉여 생산물을 시민에게 분배하면 해결될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골드스타인이 파악한 사회주의 정부의 속내는 또 달랐습니다.

국가가 국민 동의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항구적인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를 소설 ‘1984’는 ‘잉여 생산물의 소진’과 ‘계층 사회의 유지’라는 두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우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도시 거리(로이터·연합), 러시아군 포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시내의 건물(로이터·연합), 내전에 휩싸인 프놈펜 거리에서 보초를 서는 캄보디아 병사(AP·연합), 우크라이나 주택가의 파괴된 가옥에서 잔해를 치우는 모습(AP·연합), 다마스쿠스 인근 한 마을에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신화연합)의 모습.
인간은 풍족함을 느끼면 사유의 진화를 경험합니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 문맹에서 해방되고 이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확보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일당독재 체제의 허구성을 간파하게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정부 지도자들이 실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자신들을 통치하고 있다’는 진실에 가닿는다는 겁니다. 그게 정부의 본성(本性)이라고 골드스타인은 기술합니다.

따라서 오세아니아 정부에겐 이런 결론이 타당해집니다. ‘잉여 생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도록 시민 전체의 노동력을 동원하되 분배는 하지 않음으로써 전(全) 사회의 궁핍을 영구적으로 유지시킨다.

그걸 가장 손쉽고도 간명하게 진행시키는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철저히 무의미한, 그러면서도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전쟁 말입니다.

낙오자와 잔당이 모여 ‘제2그룹’을 형성한다면
소설 ‘1984’의 계층화된 사회를 피라미드로 표현한 그래픽 [Jordan L‘Hôte]
골드스타인은 책에서 ‘권력의 본질’도 사유합니다. 인류의 항구적인 불평등의 원인을 바라보는 성찰이었습니다.

윈스턴이 살아가는 오세아니아 국가는 세 개의 계층으로 구분됩니다. 먼저, 상징적인 제1 통치자 빅 브라더 밑에는 600만명으로 제한된 내부당(黨)이 자리합니다. 그들은 특권 계층입니다. 인구의 2% 정도로 구성되지요.

내부당 산하에는 총인구의 13%에 달하는 외부당이 있습니다. 윈스턴이 외부당원 중 한 명입니다. 나머지 85% 일반인은 힘없는 대중입니다.(소설에선 ‘프롤’로 지칭, 프롤레타리아란 의미)

저들 세 계층은 비중은 달라도, 구성의 원리는 인류사에서 늘 같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최고위 계층(제1그룹)은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중간계층(제2그룹)은 최고위 계층으로의 진입을 희망했으며. 굶주리고 헐벗은 하위 계층(제3그룹)은 아예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전복적 사회를 꿈꿨으니까요.

소비에트 연합(소련)이 당 내부 지도자를 위해 한정판으로 제작했다고 알려진 소설 ‘1984’ 표지. 사회주의 국가를 비판하는 책을 사회주의 국가의 핵심 계층이 읽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한정판이어서 그런지 우측 상단에 ‘91’이란 숫자가 찍혀 있습니다. 이 책이 제작된 1984년엔 이 책 ‘1984’가 소련 공식 금서였습니다. [издательстве «Прогресс]
제2그룹은 언제나 제3그룹을 앞세우면서 혁명과 전복을 꿈꿨다고 골드스타인은 씁니다. 평등보다 좋은 ‘명분’은 없었습니다.

◎ ‘과거에는 중간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평등이라는 명분 아래 혁명들이 자행되었다. 이들은 옛 독재를 몰아내자마자 또다시 새로운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던 목표는 포기되었다.’ (274~275쪽)

제2그룹은 제3그룹의 평등과 자유를 명분 삼아 기존의 제1그룹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제1그룹으로 진입합니다. 그러나 사회 체제가 바뀌면 사회 전복의 명분으로 사용된 제3그룹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제2그룹에서 낙오된 사람들과 제1그룹의 잔당이 합세해 ‘새로운 세상의 제2그룹’을 형성합니다. 그 결과, 사회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조지 오웰은 골드스타인의 글을 통해 이렇게까지 이야기합니다. “인간들 간의 간격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는다.”(273쪽)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조지 오웰 광장의 모습. 영국과 스페인 곳곳에는 그를 추앙하는 명판이 걸려 있습니다. [Adam Jones ]
소설은 전개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을 거듭합니다. ‘1984’를 읽는 재미이지요.

오브라이언을 통해 골드스타인의 책을 접했던 윈스턴은 결국 검거되고, 고문 끝에 사랑하던 애인 줄리아를 밀고하고 배반합니다. 그의 애인 줄리아 역시 윈스턴을 배신합니다.

총 3부로 집필된 400쪽짜리 책에서 두 사람의 배반 과정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그 내용은 직접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친(親)러시아 독재국가 벨라루스의 금서 지정
전체주의 국가를 비판한 소설 ‘1984’가 1949년 출간된 뒤 1988년까지 소련(소비에트연합)에서 금서였다는 얘긴 너무 유명합니다. 그 과정에 대해선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이 최근 다시 또 화제가 됐습니다. 러시아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과 그의 저서를 촬영한 사진. ‘1984’는 러시아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상당한 인기를 다시 얻고 있습니다. [AFP·연합뉴스]
2022년 12월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합니다. 러시아 유명 서점이 연간 판매 순위를 집계해보니 ‘1984’가 종합 베스트셀러 2위, 전자책 부문 1위를 차지한 겁니다. 출간된 지 73년이 지난 책이 뜬금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이지요.

2022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해로, ‘1984’ 내용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는 게 서구 외신의 분석입니다. 전쟁의 무의미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음하는 대중들(강제 동원된 병력)이 이미 ‘1984’에 예견돼 있으니까요.

작년 2023년엔 더 웃지 못할 뉴스가 보도됐는데, 2023년 러시아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이 바로 ‘1984’였다고 합니다.

책 ‘1984’ 발행 혐의로 벨라루스 정부가 구금한 안드레이 야누쉬케비치 대표의 모습. 구금되기 전인 2020년 촬영된 사진입니다. [Wikimedia Commons]
친(親)러시아 성향의 독재국가 벨라루스는 2022년 ‘1984’를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벨라루스 주간지 나샤 니바(Nasha Niva)에 따르면, 벨라루스 정부는 “조지 오웰의 책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1984’ 등 오웰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대표는 안드레이 야누쉬케비치로, 그는 구금 몇 개월 뒤 출판사 등록을 취소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러시아에서 소설 ‘1984’가 권장도서 된 이유는
그런데 더 흥미롭게도 ‘1984’는 러시아에선 정작 금서가 아닙니다.

‘1984’ 출간과 독서가 권장될 정도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소설 ‘1984’가 러시아 등 동유럽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구 자유 민주주의를 비판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주인공 윈스턴의 국적이 오세아니아이고, 오세아니아는 미국과 영국의 서구문명 복합체라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조지 오웰이 생각한 오세아니아가 미국이나 영국을 닮았는지, 구소련과 러시아를 닮았는지의 답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요.)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닷컴에는 소설 ‘1984’ 독자들이 평점을 매겼습니다. 무려 448만명이 참여했는데 절반의 독자가 만점인 ‘5점’을 주었습니다. [굿리즈닷컴]
다만 미국 역사상 딱 한 명의 지도자만이 조지 오웰의 ‘1984’ 속 오세아니아 독재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푸틴과 트럼프, 한때 ‘스트롱맨’으로 불렸던 국가 지도자의 시대에 ‘1984’가 소환된 겁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영국 런던의 시민들이 조지 오웰의 ‘1984’ 문장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온 모습입니다. [Wikimedia Commos]
英식민지 ‘제국 경찰’부터 스페인 내전 참전도
조지 오웰은 47세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작가로서 매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요. 사인은 심각한 결핵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웰의 문학은 이미 그 성취도가 탁월합니다. 개인적으로 오웰의 문학이 걸작인 이유는 그가 항상 세계사의 현장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웰은 현대사의 현장에 목숨을 걸고 직접 뛰어들었고, 그 경험을 책으로 썼으니까요.

1940년에 촬영된 조지 오웰의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힌 모습. 그는 온몸으로 현대사를 관통하며 소설을 썼습니다. 그의 소설이 추앙받는 건 그가 책상에서 펜만 굴리지 않고 온몸으로 현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Wikimedia Commons]
오웰은 영국의 명문 이튼 칼리지에 진학했지만 학교 생활은 그에게 잘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가족을 설득해 영국이 식민 통치했던 인도의 버마로 떠났고 5년간 ‘제국의 경찰’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경찰의 식민지 폭압을 경험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했고 사표를 냅니다.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파리의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의 극빈생활을 체험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바르셀로나로 가서 시민군으로 참여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의 리허설”로 불리게 될 만큼 거대한 이념의 각축장이었습니다.

당시 오웰은 교전 과정에서 목에 관통상을 당할 만큼 크게 다쳤지만, 현장을 중시했던 그의 스페인 내전 경험은 훗날 ‘카탈로니아 찬가’로 기록됐습니다. (앞서 영국 식민지 제국 경찰 경험은 책 ‘버마 시절’로 집필됐습니다.)

조지 오웰이 직원으로 근무했던 한 서점에 걸린 조지 오웰의 부조상. [Matt Brown]
그는 히틀러의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영국 육군 입대 시험을 보며 참전을 희망했지만 (훗날 그의 목숨을 앗아갈 원인이 될) 폐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떨어집니다.

대신 ‘옵서버’에서 종군기자로 2개월간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요.

식민지에서 또 전쟁터에서 조지 오웰이 걸었던 걸음은, 한 개인이 선택한 여유롭고 흥미로운 산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의 완전한 실체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지요.

오웰의 도정은, 비극적인 세계를 직접 온몸으로 걸으면서 감추어진 진실을 파악하고 인간이 비극을 견딜 수 있는 돌파구를 발견하려는 한 인류의 걸음이기도 했습니다.

격변의 시대는 오웰 자신의 소설적 독무대였던 셈이지요. 우리가 조지 오웰에게 감화되고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저 ‘현장성’에 있을 겁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한 ‘멋진 신세계’를 집필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조지 오웰의 이튼 칼리지 재학 시절 프랑스어 교사였습니다. 사진은 1925년 촬영된 올더스 헉슬리와 그의 대표작 ‘멋진 신세계’ 표지. [Henri Manuel]
“완전히 비정치적인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작가 조지 오웰의 생애를 추적하다 보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20세기 초의 또 다른 명작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쓴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조지 오웰의 이튼 칼리지 재학 시절 프랑스어 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멋진 신세계’는 ‘1984’와 상당한 유사점을 공유하지요. 통제된 사회의 암울함이란 뼈 아픈 공통점 말입니다. 사제지간인 둘은 미래사회를 그리면서 인간 세계에 펜과 종이로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작가 조지 오웰의 서명. [Wikimedia Commons]
소설 ‘1984’가 그려낸 1984년도 벌써 4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건넨 주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미래에도 유효할 겁니다.

좌우 이데올로기를 떠나 개인과 사회는 영원히 대립하기 마련이며, 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모든 개인이 당면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조지 오웰의 소설은 바로 저 위기의 징후를 파악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진실한 종(鐘)인 것이지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초저음 주파수처럼 말입니다. “완전히 비정치적인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오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1984’ 표지.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면서 한국에도 상당수의 판본이 존재합니다. 주로 오세아니아의 감시사회를 은유하는 눈(眼)이 묘사됐습니다. 아예 이오시프 스탈린의 얼굴을 넣은 을유문화사판(맨 윗줄 세 번째)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주로 언어학이나 역사학에서 쓰이는 용어 하나를 소개하며 글 맺습니다.

공시성(synchronicity)은 ‘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의 보편성’을, 통시성(diachronicity)은 ‘시대를 불문하고 어느 시대에나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보편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공시성과 통시성은 문학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문학은 한 시대의 독자를 감동시킬 때 위대한 문학으로 도약합니다. 그런데 정말 위대한 공시적 문학은 놀랍게도 통시적 문학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시대의 독자를 움켜쥘 가능성을 획득하니까요. 조지 오웰의 문학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오웰의 소설 ‘1984’가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전체주의의 출몰에 대한 1940년대 시민들의 불안감을 움켜쥐면서도, 동시에 2020년대 현대사회의 불안감까지 동시에 증거하기 때문이겠지요. 공시적이면서도 통시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문학, 그게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책의 유일한 조건이 아닐까요.

영국 런던에 세워진 조지 오웰의 동상. 벽면에는 “자유가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If liberty means anything at all, it means the right to tell people what they do not want to hear)”고 적혔습니다. [Matt Brown]
이 기사는 다음 책과 논문, 외신기사를 참고했습니다. ◎ 조지 오웰, 이기한 옮김, 『1984』,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 조지 오웰, 김승욱 옮김,『카탈로니아 찬가』, 문예출판사, 2023. ◎ 조지 오웰 소사이어티 웹사이트(orwellsociety.com)

※지금까지 [금서기행, 나쁜 책]에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독자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년 7월 15일 첫 연재 이후 6개월간 주말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력 질주했더니 다소 지쳤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 댓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형식, 새로운 글이 담긴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쁜 책’은 없습니다. 연재에서 다룬 책은 전부 ‘좋은 책’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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