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물까치 구조대’ 새들을 구하다…‘조류충돌 조례’ 만든 나주 노안남초 학생들

강현석 기자 2024. 1. 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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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노안남초 학생들이 지난해 야생 조류가 투명 방음벽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노안남초 제공.

“아름다운 새들이 더 이상 사람이 만든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남 나주시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물까치 구조대’가 지역에서 투명 방음벽 등에 부딪혀 죽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야생조류 충돌 저감 및 예방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2년 동안 충돌로 죽은 야생조류 실태를 조사해 대책을 담은 조례안을 직접 만든 것이다.

지난 17일 노안남초등학교 5학년 김연우양은 “새도 소중한 생명인데 어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김수현군도 “조례가 새들이 안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안남초 5학년과 6학년들이 꾸린 ‘물까치 구조대’가 지역 도로에 설치된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을 조사하고 보호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다. 학생들이 처음 찾은 방음벽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물까치를 모임 이름에 넣었다.

학생들은 2주마다 현장으로 향했다. 처음 조사에 나선 226m 길이의 투명 방음벽 밑에서는 죽은 새를 한 달에 28마리나 발견했다.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우선 환경단체와 방음벽에 출동을 막을 수 있는 스티커를 함께 부착했다.

전남 나주시 노안남초 학생들이 지닌해 지역 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을 살펴보고 있다. 노안남초 제공.

이후 방음벽에서 발견되는 새 사체는 한 달 평균 2∼3마리로 크게 줄었다. 충돌 예방 활동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나주 여러 곳의 방음벽을 돌며 실태조사를 해 왔다.

하지만 충돌로 죽는 새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자신들과 달랐다고 한다. 지자체에 ‘방음벽 충돌 예방 장치 설치’를 요청하는 민원을 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전남도의회 청소년의회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은 각 지역 사례를 참고해 조례 초안을 마련했다.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 황광민 나주시의원이 조례를 발의하면서 물까치 구조대의 노력은 결실을 봤다.

지난해 11월 전남 나주시 노안남초 학생들의 시의회를 방문해 ‘야생조류 충돌 예방 조례’의 시의회 통과를 요청했다. 노안남초 제공.

야생조류 충돌을 예방하는 조례는 지난해 기준 전국 지자체(243곳) 중 43곳에서만 제정됐다. 전남도에는 전남도와 여수·순천시에만 있었다. 게다가 조례 대부분은 ‘(지자체장은)야생조류 충돌 예방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만 언급돼 강제성이 부족하다. 이를 고려해 학생들은 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한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해 12월29일 제정된 나주시 조례는 ‘시장은 공공기관이 설치·관리하는 건축물이나 방음벽에 야생조류 충돌 예방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공감대 확산을 위해 초·중·고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홍보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물까치 구조대’ 출신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해서도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학생들과 함께 활동한 유새영 교사는 “아이들이 힘을 모아 조례를 제정해 뿌듯하다”면서 “야생동물 보호에 학생들이 관심을 두게 된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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