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짜리 술 완판, 이번엔 5억짜리 편의점에 떴다…싱글몰트·버번 ‘각양각색’ 위스키의 세계 [기술자]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4. 1. 21. 1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2만8391t을 기록했습니다.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최고치입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눈이 ‘빵’하고 뜨이는 느낌이 들었죠. 진짜 처음이었어요.”

국내에서 직접 위스키를 제조하는 장인 한 분을 만나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등 선구자들이 있지만, ‘위스키 국산화’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꿈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인은 한 브랜드의 10년산 제품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리더니 “그걸 마셔보고 ‘아, 내가 이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특정 브랜드 홍보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니 어떤 위스키일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5대 생산국, 그리고 제3세계 위스키
말씀드린 사례처럼 위스키 마니아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특별하게 기억하는 제품이 있으실 겁니다. 이번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위스키 브랜드와 구체적인 종류별 특징 등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먼저 위스키를 생산국 기준으로 한 번 나눠볼까요? 가장 대표적인 5대 위스키 생산국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입니다. ‘정통’을 중시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산 제품만 취급하기도 하는데 다른 세 나라 제품들도 꽤 유명합니다.

일본 ‘니카’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하면 투어 중 제품 6종을 시음(유료)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독자 제공]
최근에는 일본제품 불매운동(노재팬)이 힘을 잃은 뒤 현지 관광 등이 급부상하면서 일본 위스키가 특히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 ‘야마자키’와 ‘하쿠슈’, ‘히비키’, ‘치타’, ‘산토리’ 등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현지 증류소 투어도 그렇게 인기라고 합니다.

산토리와 더불어 ‘재패니즈 위스키’의 양대 산맥인 ‘니카’ 증류소를 방문했던 한 분은 “투어가 일본어로만 진행돼 접근성은 떨어졌지만, 무료라 정말 좋았다”며 “정형화된 관람이 아니라 안내원을 따라 공장 구석구석을 살펴본다는 느낌이다. 하이라이트는 시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일부 위스키 마니아들은 희소성과 독창성 등을 중시하는 까닭에 대만이나 인도, 호주, 프랑스 등 제3세계에서 만든 위스키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카발란’으로 유명한 대만 위스키의 경우 지난해 수입액이 207만달러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도 합니다.

예전엔 ‘블렌디드’, 요즘은 ‘싱글몰트’
위스키는 원재료 구성에 따라 ‘블렌디드’, ‘싱글몰트’, ‘버번’, ‘라이’ 등으로 분류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번에는 원재료를 기준으로 위스키를 구분해보겠습니다. 여러 증류소에서 나온 몰트(맥아)를 섞어 만들면 ‘블렌디드(blended)’, 단일 증류소에서 만들면 ‘싱글몰트(single malt)’, 옥수수가 활용되면 ‘버번(bourbon)’, 호밀이 쓰이면 ‘라이(Rye)’ 위스키라고 지난주에 설명해 드렸었죠.

블렌디드 위스키는 술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조금 익숙하실 겁니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해외여행 다녀오시는 길에 면세점에 이름을 얼핏 보셨을 수도, 아니면 가까운 분들이 양주(洋酒)라며 신나서 드시는 모습을 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유독 고연산 위스키를 선호하는 한국 시장에서는 12년산 블렌디드 위스키를 저평가하는 경향도 일부 있는데요. 위스키 제조·유통업자들에게 물어보니 사실 위스키는 12년 정도 숙성됐을 때가 가장 달고 무난한 맛이라고 합니다. 더 숙성하면 향이 너무 강해진다고 하네요.

향 얘기를 꺼냈으니 싱글몰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싱글몰트 위스키는 맛도 맛이지만, 각 제품의 향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까닭에 최근 2030 세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마실 때마다 ‘내 입맛 찾기’ 게임 같은 걸 즐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블렌디드처럼 여러 원액을 섞어 가장 맛있는 조합을 찾는 대신 숙성 방법으로 승부수를 띄운 술입니다. 셰리 와인이나 포트 와인, 심지어 럼(Rum)을 담았던 오크통에까지 위스키를 주입한 뒤 그늘진 곳에서 수년간 묵힘으로써 만들어냅니다.

‘고든앤맥페일’이 2021년 9월 전 세계에 250병만 선보인 싱글몰트 위스키 ‘고든앤맥페일 글렌리벳 제너레이션스 80년’. 1㎖에 약 36만원, 구경만 해봤습니다. [이상현 기자]
‘글렌피딕’이나 ‘글렌드로낙’, ‘글렌알라키’ ‘글렌모렌지’ 등 일부 브랜드에는 ‘글렌(Glen)’이라는 표현이 붙는데요. 글렌은 골짜기 또는 계곡을 의미하는 스코틀랜드 게일어(語)입니다. 위스키에 쓰이는 물이 깨끗한 계곡에 증류소가 있어 글렌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합니다.

이름만큼 맛도 향도 복잡하고 제각각이지만, 요즘 위스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요. ‘발베니’나 ‘맥켈란’ 등 입소문을 잘 탄 싱글몰트 제품들은 연일 ‘오픈런’을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희소성을 인정받을수록 부르는 게 값인데요.

‘고든앤맥페일’이 2021년 9월 전 세계에 250병만 선보인 싱글몰트 위스키 ‘고든앤맥페일 글렌리벳 제너레이션스 80년’은 롯데백화점이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국내에 들어온 2병이 모두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무려 2억5000만원짜리인데 저는 운 좋게(?) 구경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또 최근 CU에서는 올해 설을 맞아 선물 세트로 무려 5억원짜리 최상급 블렌디드 위스키 ‘다이아몬드 쥬빌레’를 선보였습니다. CU에 문의해보니 전 세계에 단 12병뿐인 제품 중 1병을 CU가 들여온 것이라 합니다. 아직 팔리지 않았다지만, 이것도 조만간 아닐까요?

가성비 최고는 ‘버번’, 그리고 ‘라이’
국내에서는 ‘메이커스 마크’, ‘와일드 터키’, ‘버팔로 트레이스’ 3개 브랜드를 일명 ‘버번 3대장’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속 메이커스 마크는 특유의 빨간색 밀랍 봉인으로 유명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술 한 병에 롤스로이스 한 대 값이라니! ‘다른 세상 이야기다’ 싶은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저에게도 다음 생에나 기대해봄 직한 술인데요.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준수해 ‘가성비’ 위스키로 꼽히는 제품들도 있습니다. 바로 ‘버번’ 위스키와 ‘라이’ 위스키입니다.

먼저 버번은 주재료 중 옥수수 함량이 51% 이상인 미국산 위스키를 의미합니다. 버번이라는 종류로 분류되려면 속을 까맣게 태운 새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하고, 병입할 때 알코올 도수가 40도(80프루프) 이상, 최소 2년 숙성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데요.

보리(맥아)를 증류해서 만드는 대부분 위스키와 달리 옥수수를 쓰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예로부터 미국에서 옥수수가 남아돌 만큼 많이 생산됐기 때문인데요. 주로 켄터키주(州)에서 생산되는데 주 내 ‘버번 카운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버번의 강점은 무엇보다 단 향입니다. 평소 고도수 술을 즐기지 않으신다면 코와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알코올 때문에 느끼기 어려우실 수 있는데요. 잔에 아주 조금 남아 있는 버번에 코를 갖다 대면 그윽한 바닐라와 캐러멜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버번 위스키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짐빔’ 브랜드의 ‘짐빔 화이트’는 여러 요식업장에서 ‘하이볼’의 재료로 흔히 활용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국내에서는 ‘메이커스마크’, ‘와일드터키’, ‘버팔로트레이스’ 3개 브랜드를 일명 ‘버번 3대장’이라고 부릅니다. 판매처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각 브랜드의 가장 기본 제품을 6만~8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어 싱글몰트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여담으로, 하이볼의 원조 격인 ‘잭콕(잭 다니엘+콜라)’을 드셔보신 분들은 또 ‘잭다니엘’이 버번이라고 알고 계실 수도 있는데요. 잭다니엘은 버번이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지키면서도 단풍나무 숯에 여과한다는 테네시주의 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테네시 위스키’입니다.

마지막으로 ‘라이’ 위스키는 버번과 더불어 미국산 위스키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히는데요. 호밀을 주재료로 하는 이 제품은 버번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조금씩 유명세를 얻고 있는 품종입니다. 전반적으로 톡 쏘는 듯 매콤하면서도 강렬한 향이 특징입니다.

라이 위스키는 주로 미국 펜실베니아주와 메릴랜드주, 또 캐나다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들어 종류가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싱글몰트는 밍밍하고, 버번은 마실만큼 마셔봤다’ 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위스키 이미지가 원래 별로였다고?
최근 한국 시장에서는 취향 따라 입맛 따라 즐기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사실 주류업계에서는 과거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국내 시장에서 위스키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들 말합니다. 각 브랜드의 제품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에도 ‘어렵고 비싼 술’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지금처럼 위스키가 흔하고 다양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유흥업소에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맥주에 섞어 마시는 ‘폭탄주’ 형태로 소비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최대 매출처가 유흥업소인 까닭에 위스키를 즐긴다는 건 유흥업소에 자주 간다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위스키의 이미지가 대체로 음침하거나, 벽장 속 ‘아버지 술’ 정도로 인식될 만큼 낡은 느낌이었다고 하는데요. 팬데믹 기간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 확산과 더불어 급성장한 시장이 낯설 때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술에 덜컥 겁부터 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다음 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좀 더 마시기 쉬운, 그런데 도대체 왜 내가 고른 건 늘 맛이 없는지 모르겠을 ‘와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ㅇ술 잡학사전, 클레어 버더(Clare Burder), 문예출판사, 2018

ㅇ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라루스 편집부, 시트롱마카롱, 2021

ㅇ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수출입실적 데이터

누가 따라주니 그저 마시기만 했던 술. 그 술을 보고 한 번쯤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했던 적 있으신가요? 매주 금요일, 우리네 일상 속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 이야기를 전합니다. 술을 기록하는 사람, 기술자(記술者)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