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화화 되거나 존재하지 않는’…미디어 속 살찐 여성의 몸[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②]

김정화 기자 2024. 1. 2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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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크고 아름다운, 살찐 몸
‘작은비버’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일러스트 작가 황인후씨가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작업을 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조태형 기자

“롱패딩을 입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D라인’인 거예요. 그게 너무 속상했는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쇼핑몰이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I라인’이더라고요. 당연히 비교하면서 자책할 수밖에 없죠.”

책 <나는 100㎏이다>를 펴낸 일러스트 작가 황인후씨의 말이다. 황씨는 “옛날 코미디 영화나 개그 프로그램에선 뚱뚱한 여자가 의자에 앉으면 갑자기 퍽 부서진다는 게 자주 나왔다. 내 살찐 몸도 저렇게 희화화 될까봐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우스꽝스럽거나, 게으르거나…미디어의 살찐 몸 재현 방식

사람들이 어떤 몸이 좋거나 나쁘다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여러 요인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이 미디어이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에서 표현되는 몸은 의도했든 아니든 대중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남긴다. 오랫동안 미디어가 살찐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황씨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살찐 몸이지만 나는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과는 다르다, 게으르지 않고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 황씨는 자신의 몸에 대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지만 “지금도 낯선 사람들 앞에선 밥이 제대로 안 넘어간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살찐 몸을 대하는 방식이 과거에 비해 개선된 부분도 있다. 개그맨 김민경씨는 유튜브 예능 ‘오늘부터 운동뚱’, SBS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살찐 몸과 운동 능력은 별개라는 큰 가르침을 줬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SPA 브랜드 스파오는 2021년 ‘평균 체형 마네킹’을 매장에 비치해 화제가 됐다. 한국 25~34세 남녀의 실제 신체 치수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이즈를 반영한 마네킹을 만든 것이다.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내세우면서 의류 시장에서 치수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해 빅사이즈 의류를 취급하는 대표 쇼핑몰인 난닝구와 리리앤코의 연간 거래액은 전년 대비 각각 220%, 80% 증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특히 여성에게 살찐 몸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대한비만학회가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비만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는 문항에 여성 7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같은 문항에 남성은 52%가 그렇다고 답했다. 남성보다 여성이 비만으로 인한 낙인을 더 심하게 경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성은 저체중(체질량지수 18.5 미만)이거나 정상체중(체질량지수 18.5~23)인데도 계속 살을 빼려고 한다. 반대로 남성은 과체중이어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2021년 기준 19~29세 여성 중에서 저체중은 14.8%, 정상체중은 55.8%였다. 그런데도 이들 중 체중 감량을 시도한 비율이 각각 16.2%, 53.9%나 됐다. 연령이 낮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마른 몸에 집착하는 정도도 심했다.

“타인의 몸 지적하지 않은 문화 자리잡아야”

이런 현상은 방송, 영화,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지나치게 마르거나 비현실적으로 왜곡된 여성의 몸이 미의 기준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부터 페미니즘 관점에서 TV 방송 모니터링 활동을 해온 한국여성민우회는 2016년 드라마 55편을 분석해 미디어에서 어떻게 몸 다양성이 ‘파괴’됐는지 보여줬다. 드라마 출연자들을 분석한 결과 비만 출연자는 전체의 2.8%에 불과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방송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가 2017년 의류업체 마네킹이 실제 여성들의 체형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이곳을 비롯해 한국여성민우회, 서울YWCA 등 여러 단체가 수년간 마른 몸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몸 다양성을 강조해 왔다. 여성환경연대 제공
2017년 한국여성 표준 신체와 마네킹을 비교한 자료. 여성환경연대 제공

특정한 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 그런 몸은 잘못되고 못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그런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낙인에 찍힌 것과 같은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살찐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시도하기도 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021년 섭식장애 환자가 1만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섭식장애 유병률이 인구의 3%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환자가 15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젊은 여성들이 키에서 몸무게를 뺀 값이 120일 때 ‘개말라’(아주 마름), 125일 땐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름)라고 부르며 비법을 공유하는 상황이다보니 섭식장애는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 문제의 심각성이 조명을 받으면서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업계에 제도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SNS가 10대 청소년의 우울증과 거식증 발병 비율을 높이고, 심지어 자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나온 뒤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에서 몸 다양성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안현진씨는 “인순이 같은 5060 세대 가수들이 나오는 KBS ‘골든걸스’를 보면 다양한 몸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몸이 드러난다”면서 “미디어에서 기존의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몸이 많다는 걸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궁극적으로는 일상에서 타인의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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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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