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도 중고차 타는데…‘연두색 번호판’ 회사·아빠찬스 슈퍼카의 최후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1. 2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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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번호판 변경’ 최초 제안
1월부터 ‘연두색 번호판’ 시행돼
회사찬스 슈퍼카, 세금도둑 인증?
세금도둑 잡는 ‘카파라치’ 도입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진 [사진출처=SNS, 온라인 커뮤니티]
“그래 이거지”

무릎을 팍 쳤습니다. 벌써 4년 전입니다. ‘세금탈루’ 고가 법인차량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쓴 뒤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던 중 “택시 번호판을 달면 되는데, 법인 표식을 크게 붙여도 되는데”라는 댓글을 봤기 때문입니다.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법인 표식 대신 한번 부착하면 바꿀 수 없는 번호판을 한눈에도 티 나는 색상으로 변경하고, 카파라치와 비슷한 신고·포상 제도를 결합하면 ‘작지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바로 취재에 나섰습니다. 녹색이나 주황색 등으로 번호판 색상을 변경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020년 국내 최초(언론보도 기준)로 번호판 변경을 제안하고, 이슈화를 계속 시도했습니다. 법인차량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번호판 변경과 강력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포르쉐 뽑았다” 뽐내더니…10대 중 7대, 네 차 아니잖아(2020년 6월 21일자)>와 <‘아빠 찬스’ 포르쉐·람보 뽐내다, ‘꼼수 사용’ 세무조사 받을라(2020년 7월 12일자)>를 통해 법인차량 번호판 색상이나 표식 변경을 잇달아 제안했죠.

<딱 걸렸어, ‘아빠찬스’ 포르쉐…법인차 번호판 색상만 바꿔도(2021년2월19일자)>에서도 “법인차량 번호판 색상을 주황색이나 녹색으로 정하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법인차량 악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두색 번호판과 슈퍼카 [사진출처=국토부, 각사]
정치권도 반응했습니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9월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인차량 사적 이용 단속과 적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별도의 번호판 규정을 두거나 눈에 띄는 식별 표시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연두색 번호판을 예시로 제시했죠.

번호판 변경은 대통령 공약으로 등장한 뒤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월 후보 시절에 쇼츠(59초 이내 동영상) 공약을 통해 법인차량 번호판 색상을 연두색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도 “아빠찬스는 그만”을 외치며 동참했습니다.

지난해 2월5일 소셜미디어(SNS)에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슈퍼카를 법인차로 등록해 배우자에 자녀까지 이용하는 꼼수는 횡령·탈세 등 법 위반은 물론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제 ‘법인차 전용번호판’이 도입되면 이런 꼼수를 쓰기 어렵게 된다”며 “제대로 세금내고 소비하는 문화야 말로 공정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다”고 강조했죠.

번호판 변경을 제안한 지 4년 만인 올해 1월부터 취득가액 8000만원이 넘는 법인차에는 연두색 전용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참고로 국내 차량 번호판 색상을 알아보면 흰색은 일반용, 노란색은 영업용, 파란색은 전기차, 군청색은 외교용입니다.

세금도둑 양산한 한국의 법인차 제도
회사명의로 슈퍼카 6대를 구입해 사적 용도로 유용한 사례 [사진출처=국세청]
국내에서 법인차 악용 차량으로 포람페(포르쉐·람보르기니·페라리)가 지탄받고 있지만 이들 브랜드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편법을 부추기고 ‘세금도둑’을 방치하는 우리 법과 제도의 허점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다)이 아닌 ‘남돈내산’(남의 돈으로 내가 산 것처럼 행세)을 부추겼죠.

“법인차를 사적으로 악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바보”라고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법인차 제도 악용 중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나 부모가 소유한 법인 명의로 고성능 스포츠카나 슈퍼카를 구입하는 ‘회사·아빠 찬스’였습니다.

회사가 ‘업무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금융회사에서 빌린 차를 개인이 사적으로 이용하는 ‘회사 찬스’, 회사 운영자가 법인명의 차량을 가족에게 제공하는 ‘아빠 찬스’는 국세청 단골 적발 소재입니다.

포털에 검색어만 입력해도 기사가 쏟아집니다. 댓글도 분노일색입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국가가 세법 테두리 안에서 업무용으로 적법하게 사용하라며 제공한 혜택을 법인이 악용하면 나라 살림 조세제도의 근간인 ‘형평성’이 무너지기 때문이죠.

법인명의 차량은 구입비, 보험료, 기름값 등을 모두 이용자가 아닌 법인이 부담하고 세금도 감면받습니다.

업무용으로 쓰지 않을 법인명의 차량을 개인이 정해진 용도 외에 사용하면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혐의를 받죠.

탈루 소득으로 구입한 슈퍼카 [사진출처=국세청]
무너진 조세 형평성은 민생경제에 해악을 끼칩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유리지갑’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습니다. 회사·아빠 찬스 이용자를 ‘세금도둑’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영업용이나 업무용으로 쓴다고 보기 어려운 포람페가 회사·아빠 찬스에 자주 악용됐습니다.

물론 포람페라도 ‘업무용’으로만 적절하게 사용하면 문제되지 않습니다. 비난받을 일도 아니죠. 포람페를 업무용·영업용으로 쓸 정도로 ‘좋은 회사’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업무용을 개인용도로 악용하는 게 위법이자 탈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낸 세금을 도둑질하는 셈이죠.

법인명의 스포츠카나 슈퍼카 이용자 중 일부는 연간 리스료 800만원, 관리비 700만원 등 1500만원만 비용 처리할 수 있다며 ‘찬스’ 효과가 작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연간 800만원이 넘는 리스료는 그다음 해로 계속 이월하면서 비용 처리할 수 있습니다.

주유비, 주차료, 수리비 등 관리비도 연간 700만원 한도이지만 초과 비용을 다른 항목으로 바꿔 넣어서 비용 처리하는 탈세 행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리스료와 관리비에 한도가 없게 되죠.

이득은 또 있습니다. 리스를 이용하면 차량은 리스사 명의가 돼 이용자에게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공채가 제일 저렴한 지역에 차량을 등록하기에 공채 청구 금액도 없습니다.

리스료를 법인 비용으로 넣어 매출에 비해 순이익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게 해 세금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법인명의 슈퍼카를 타지만 관리비는 이용자가 부담한다며 탈세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량은 부동산과 달리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고가 차량일수록 가치 하락폭이 큽니다. 법인 자산에 손실을 주죠.

연두색 번호판이 찐부자 인증한다고?
연두색 번호판과 슈퍼카 [사진출처=각사]
기사를 통해 처음 제안한 지 4년 만에 번호판 변경이 실현됐습니다. 문제는 기존 법인차 제도 개선 때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2~2023년에 포람페 판매가 급증한 이유는 연두색 번호판을 달기 싫어하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포람페 딜러들도 ‘연두색’을 실적 올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포람페 만큼은 아니지만 벤츠도 법인차 수요 확대에 나섰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승용차 등록 현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3억원 이상 법인 승용차는 1858대였습니다. 취득가액 3억∼5억원 차는 1554대, 5억원 초과 차는 304대에 달했습니다.

2022년에는 3억원이 넘는 법인차 등록 대수가 1173대(3억∼5억원 934대, 5억원 초과 239대)였습니다. 1년 만에 685대(58.4%) 급증한 셈입니다.

3억원 이상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8년에는 357대였습니다. 5년 만에 5.2배 증가한 셈입니다.

회사찬스, 아빠찬스 사례 [사진출처=국세청]
물고기가 큰 구멍이 뚫린 엉성한 그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떠오르는데도 ‘소급적용’은 되지 않습니다.

번호판 변경에 드는 비용과 번거로운 절차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무너진 공정’을 회복하는 데 비용과 절차가 정말 문제가 될까요.

결국 연두색 번호판은 기존처럼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용두사미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연두색 번호판 슈퍼카를 사적으로 악용하면 세금도둑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밝히는 셈인데도 ‘찐 부자’를 인증하는 수단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반증이 되겠죠.

힘없는 사람에게 더 가혹한 ‘아빠·엄마 찬스’ 학교폭력과 마찬가지로 세금도둑 찬스는 ‘돈도 빽도 없이’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듭니다. 공정이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삭 무너집니다.

법인차량 문제를 진정 해결하고 싶다면 제도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구멍을 닫아야 합니다. 정부 당직자들이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도 ‘아주’ 많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업무차량으로 출퇴근한 것도 사적사용으로 간주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법인차량 등록 자체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죠. 번호판 변경을 ‘마중물’로 여기고 법인차량 악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해외 사례를 참고로 후속 대책을 계속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카파라치’처럼 꼼수 사용에 대한 신고 제도까지 결합하면 법인차량 악용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겠죠.

차만 명품이네 vs 사람도 명품이네
이재용 회장의 ‘쉿’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포람페 악용 문제를 다루다보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회장은 포람페는 물론 롤스로이스를 타도 어울릴 대기업 회장인데도 국산차, 그것도 중고차를 탔습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중고차로 구입한 뒤 직접 운전했죠.

이 회장은 2007년부터 ‘9년간’ 업무용 차량으로 현대차 에쿠스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8월부터는 쌍용차(현 KG모빌리티) 체어맨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이 타던 체어맨은 5년 뒤 중고차 매물로 나와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도 경차인 기아 레이를 타고 산동네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습니다.

레이를 3대째 구매했다는 그는 최근에 소셜미디어에 레이를 극찬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박 전 회장은 “(봉사를 다닐 때) 골목길이 비좁고 주차도 아주 어려운 동네를 다녀도 걱정이 없다”면서 “주방서 만든 반찬을 배달하느라 레이를 탈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한다”고 말했죠.

레이 타고 봉사 활동 펼치는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사진출처=SNS]
수천만부가 팔린 ‘털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사람을 실력자와 추종자로 구분했습니다.

그가 쓴 ‘맨워칭’에 따르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실력자에게 자격지심을 심하게 느끼는 추종자들은 자신을 과장·과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죠.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리는 ‘호가호위’ 전략도 사용합니다.

심리학에서도 허세를 부리며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승인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또 겉으로는 잘난 체하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낮은 평가에 불안해하고 자기혐오로 가득 찬 경우가 많다고 하죠.

거만하게 행동하는 이유도 사실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도로 한복판에 주차된 차량 [사진출처=보배드림]
반대로 진짜 실력자,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 남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자신을 믿는 사람은 거드름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빌런(악당) 행위도 하지 않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잘난 척하기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랑할 수단을 찾는다고 하죠. 빌런 짓도 저지릅니다.

‘남돈내산’ 법인차량을 ‘악용’하는 부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있는 척 하고 싶거나 자격지심이 많은 부류일 수 있습니다. 사기꾼들이 명품과 명차로 ‘위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후광효과’를 노리는 셈이죠. ‘세금도둑’이라는 주홍글씨(앞으로는 연두색 글씨라고 해야 할까요)가 자신의 몸과 차량 곳곳에 써 있는데도 차종의 후광효과 덕에 남들이 자신을 ‘찐 부자’로 우러러본다고 착각합니다.

물론 업무용으로 포람페 차량이 진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사적으로만 쓰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돈으로 좋은 차를 타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남돈내산이 아니라 내돈내산 능력을 갖췄으면 자랑하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자랑하지 않으면 ‘존중’을 넘어 ‘존경’을 받게 됩니다.

자격지심이 일으킨 허세와 과시가 아니라 부러움과 존경을 일으키는 후광효과는 남들에게 일부러 보여주려는 ‘쇼윈도 삶’에서 벗어날 때 빛난다고 합니다.

자만심이나 자격지심이 아닌 자존감과 자부심이 가진 돈에 상관없이 후광효과를 일으킵니다.

차만 명품이라고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차가 명품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 됩니다.

사람이 명품이면 그가 타는 차도 차종·가격에 상관없이 포람페보다 더 빛나는 명차가 됩니다.

※‘세상만車’는 자동차 잡학사전을 추구합니다. 자동차 세상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신차와 중고차, 애물을 보물로 만들어주는 차(車)테크를 주로 다룹니다. 숨겨진 자동차 역사도 전해드립니다. 때로는 심도 깊게 때로는 얄팍하게 소개합니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상식도 알려드립니다. 사족(蛇足)도 많습니다. 언젠가는 귀하게 쓸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세상만사, 세상 일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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