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다고, 조그맣다고 무시하다 ‘큰코’…없으면 난리나는 7가지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1. 2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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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너트 / 로마 아그라왈 지음 / 우아영 옮김 / 어크로스 펴냄
못·스프링·자석·렌즈 등
세상을 바꾼 발명품 조명
볼트와 너트 [사진 = 픽사베이]
손가락보다 작은 못 속에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숨어 있다.

인류는 약 8000년 전 석기시대부터 금속을 캐내기 시작했고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청동을 통해 강한 재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가장 오래된 청동 못은 기원전 3400년 전의 것으로 이집트에서 발견됐다. 이를 통해 배와 전차를 조립했다. 못은 원래 나무조각을 잇는 데 쓰였다.

인도산 철을 쓰는 로마의 못은 품질이 좋고 크기가 균일하기로 유명했다. 숙련된 금속공들은 철을 1300도 이상을 달궈 눈부신 백색으로 빛날 때 망치로 두드려 머리를 만들었다. 망치에 정확한 힘을 실어 정확한 방향으로 내리쳐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노동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유럽에서 못 제조 기술은 수 세기 동안 귀한 기술로 취급됐다. 못의 가치가 높아 산업화 이전 영국은 목재 주택이 일반적이던 북아메리카 등의 식민지로 못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고, 이 지역에선 이사할 때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잿더미 속에서 못을 수거할 정도였다. 17세기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방화를 막기 위해 집을 살때는 못의 개수를 계산해 지급하라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 건국 주역인 토마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기전 못 공장을 차렸다. 400명이 넘는 노예들은 하루에 1만개의 못을 만들었다.

나중에 나사가 등장해 못이 더 큰 힘을 지탱할 수 있게 됐지만, 만들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그 뒤 얇은 금속판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못과 나사는 리벳으로 대체됐다. 냄비를 만들던 리벳이 더 크고 강해지면서 금속판, 선박, 교량을 이어붙일 수 있게 됐다.

기술자들은 리벳과 나사를 합쳐 더 쉽게 쓸 수 있는 볼트를 발명했다. 건물, 공장, 트랙터, 자동차, 세탁기 등 금속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 모든 물건에는 못, 나가, 리벳, 볼트가 쓰인다. 저자가 구조 엔지니어로 6년간 일한 런던의 최고층 빌딩인 더 샤드(The Shard)를 견고하게 고정한 것도 바로 볼트다. 건설에 쓰이는 지름 20㎜ 볼트 하나는 약 11톤의 인장 하중을 견딘다. 런던 이층버스의 무게다.

매혹적인 건축물 이야기를 들려준 ‘빌트’의 저자인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의 신작이 나왔다. 다리, 터널, 기차역, 마천루 등을 설계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을 평생 매료시켜 온 주제를 마침내 책으로 써냈다.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사물들에 얽힌 이야기다.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작고 단순한 7가지 발명품이 있다.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다. 이것들은 다양한 반복과 형태를 거쳤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경이로운 발명품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기에 집에 갇혀 물건을 분해해본 저자는 이 7가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기 이유식을 만드는 믹서기는 기어와 톱니바퀴로 돌아갔다. 볼펜은 스프링과 나사, 회전하는 구가 중심이었다. 딸을 낳을 때 체외수정을 도와준 건 렌즈였다. 친구들과 연락을 하게 해주는 전화와 인터넷에는 자석이 필수품이었다. 굴착기, 고층 건물, 공장, 전력망, 자동차, 인공위성 등 더 복잡한 물건의 기초도 언제나 이 7가지였다.

그 쓰임새도 특색이 있다. 스프링은 우리가 조용한 도시에서 살수 있게하는 특별한 도구다. 자석은 전화와 인터넷 등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물건이다. 렌즈는 실제로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을 탐구할 수 있게 했고, 펌프는 심장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이 책은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사람이란 것도 주지시킨다. ‘만드는 사람들, 필요로 하고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때로 무심코 기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다. 닐 암스트롱이 입은 우주복의 실밥이 터질까 걱정하는 델라웨어주의 재봉사, 현미경으로 자신의 정자를 관찰한 가게 주인, 돼지 심장을 이식받는 환자들처럼 말이다.

서구의 남성이 지배해온 엔지니어링 분야의 그늘에서 활약한 소수자도 조명한다. 그중엔 1893년 시카고 산업박람회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 엔지니어가 있다. 조지핀 코크런은 식기세척기의 원형을 발명했다. 그동안 남성 엔지니어들도 식기세척기를 만들려고 수없이 시도했지만, 설거지와 거리가 먼 그들의 기계는 번번이 그릇을 깨부쉈다. ‘그릇이 상하지 않는 설거지 기계’라는 자신의 필요와 생계를 위해 이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낸 코크런은 사후에야 자신의 발명품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엔지니어링이 과학과 디자인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을 덮고나면 묵묵히 실험실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이름 없는 엔지니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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