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달러면 실어드립니다” 학술지 편집자들과 논문공장의 은밀한 뒷거래

이정아 기자 2024. 1. 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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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논문 출판하는 대가로 최대 2만 달러 이상 지불
사이언스·리트랙션 워치가 저널 편집자 30여 명 적발, 빙산의 일각으로 더 많을 것으로 추정
2021년 10월 실렸다가 지난해 11월 철회된 가짜 논문. 가짜 논문 공장이 저널 편집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출판한 것으로 드러났다./힌다위 헬스케어 엔지니어링 저널

가짜 논문을 대량 생산하는 회사들이 저널 편집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8일(현지 시각) 수십 명의 유명 저널 편집자가 소위 ‘가짜 논문 공장’으로부터 불법적인 돈을 받고 해당 논문을 실어왔으며, 이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가짜 논문 공장은 가짜 논문을 매년 수 만~수 십만 건씩 쏟아낸다. 대부분 표절했거나 허구 데이터를 포함했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자기 이름을 올리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논문 공장은 가짜 논문을 팔아 상당한 이익을 얻는다. 사이언스는 연구자들에게 논문을 축적해야 한다는 압박이 늘면서 이 같은 일들이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명성 있는 저널의 편집자들마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짜 논문을 실어주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체역학을 연구하고 있는 니콜라스 와이즈 연구원은 지난해 6월 수상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발견했다. 올리브 아카데믹이라는 뜻의 중국 이름을 가진 회사와, 그 회사를 운영하는 잭 벤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저널 편집자들이 논문 출판을 수락하는 대가로 거액의 현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50명 이상의 저널 편집자와 거래를 했다고 썼다. 관심 있는 편집자들이 작성할 수 있는 온라인 양식도 올렸다. 또한 거래한 증거로 최대 2만 달러 이상 이체한 스크린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것을 본 와이즈 연구원은 ‘당장 신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간 비영리법인인 영국연구무결성사무국(UK Research Integrity Office)의 관리자 매트 헛킨슨은 “최소 수십 억 달러가 가짜 논문 공장 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한 저널에서는 이 때문에 편집자 300명을 해고해야 했다”며 “그들은 대규모 사기 범죄 조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가짜 논문에 대한 위협을 인식한 저널과 출판사는 자체적으로 연구무결성팀을 강화하고 가짜 논문으로 판명된 수백 건을 철회하기도 했다. 또한 가짜 논문을 선별하기 위한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사이언스는 이 때문에 현금이 많은 가짜 논문 공장들이 가짜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편집자에게 뇌물을 주거나 편집위원회에 자체 대리인을 배치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와이즈 연구원과 사이언스, 세계 최대의 논문 철회 공개 사이트인 리트랙션 워치(Retraction Watch)에서 조사한 결과 가짜 논문 공장 여러 곳과, 이들과 결탁한 유명 저널 편집자 30여 명을 밝혀냈다. 심지어 이들 편집자 중에는 저널 특별호의 객원 편집자들도 상당수였다. 특별호는 일반호와 별도로 편집되기 때문에 가짜 논문 공장과 결탁하기가 훨씬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정규 편집자거나 편집위원이었다. 사이언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훨씬 더 많은 편집자와 저널이 가짜 논문 공장과 연결돼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와이즈 연구원은 잭 벤이 페이스북에 올린 스크린샷에서 제목이 식별 가능한 논문 두 건을 추적했다. ‘위암 후 위장 기능 회복의 영향 요인’이라는 가짜 논문은 2021년 10월 ‘헬스케어 엔지니어링 저널’ 특별호에 실렸다가 지난해 11월 철회됐다. 이 저널을 내는 출판사인 힌다위 역시 가짜 논문을 많이 싣는 것으로 논란이 많다. 스크린샷에 따르면 이 가짜 논문을 실은 대가로 올리브 아카데믹은 840달러를 지불했다.

다른 논문 역시 논란이 많은 출판사인 MDPI에 실렸다가 지난해 11월 철회됐다. 스크린샷에는 저널 편집자에게 1050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사이언스는 벤과 직접 통화를 했다. 벤은 “(가짜 논문을) 저널에서 승인 받은 후 절반, 온라인판으로 제출한 뒤 나머지 절반을 지불하겠다”며 “그 규모는 저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통화하는 사람이 저널 편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벤은 전화대신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대화하기를 원했다. 사이언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저널 편집자에게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다”며 “논문 저자에게 논문에 대한 조언만을 제공한다”고 말을 바꿨다.

올리브 아카데믹을 운영하는 잭 벤이 페이스북에 올린 이체 증거. 저널 편집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가짜 논문을 실어온 것으로 보인다. 사이언스는 스크린샷에 나와 있는 정보를 추적한 결과, 이들 논문이 이미 철회됐음을 확인했다./사이언스, 페이스북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10.1126/science.zrjeh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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