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밥 이미 먹어봤다고요? 아직 109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이스탄불/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4. 1. 2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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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세계 3대 요리 대국
튀르키예 미식 여행
이스탄불 빵집 ‘갈라타 시미트치시’ 제빵사가 뽕 당밀과 참깨를 묻힌 시미트 반죽을 들어 보이고 있다./김성윤 기자

오스만 제국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에는 음식과 관련된 게 많았다. 예니체리 군단은 ‘오작’이라 불렀다. 튀르키예어로 아궁이라는 뜻이다. 산하 대대 또는 연대의 상징은 ‘카잔’, 즉 군사에게 먹일 수프나 필라브(볶음밥)를 조리하는 거대한 솥이었다.

예니체리는 어디든 카잔을 짊어지고 다녔다. ‘요리사(아슈츠)’라 불린 장교들은 병영 한복판 지휘부 앞에 놓인 카잔 주변에 둘러서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예니체리 병사들은 투구에 깃털 대신 숟가락을 꽂았고, 매주 금요일 솥을 들고 술탄이 거주하는 톱카프 궁으로 행진해 양고기가 들어간 필라브를 받는 의식을 행했다. 병사들이 식사의 첫 순서인 ‘초르바(수프)를 먹지 않으면 불만을, 카잔을 뒤집으면 반란·쿠데타를 각각 의미했다.

오스만 제국에서 음식은 이렇게 단순한 먹거리 이상으로 여겨졌다. 제국의 후신이자 ‘삶[life]은 음식에서 온다’는 속담이 있는 튀르키예도 마찬가지다. 과거 오스만 제국이 화려한 식문화를 꽃피웠고, 이를 계승한 튀르키예 요리가 프랑스 요리,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프랑스 레스토랑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가 튀르키예에 최근 진출했다. 2023년판에서 튀르키예 최대 도시이자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 소재 식당들을 평가한 데 이어, 2024년판에서는 튀르키예에서 셋째로 큰 도시인 에게해 항구 이즈미르(Izmir)와 지중해 고급 휴양지 보드룸(Bodrum)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아야 소피아 너머 펼쳐지는 이스탄불 전경./튀르키예문화관광부

◇이스탄불-튀르키예 전체를 맛보는 뷔페상

튀르키예는 면적이 78만㎢로 한반도의 3.5배나 된다. 땅이 넓다 보니, 튀르키예인들은 중국처럼 음식을 지역별로 설명한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모든 지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도시다.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케밥’이다. 고기 구이란 뜻이다. 음식 사학자들은 최소 110가지 이상의 케밥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글로벌한 케밥은 ‘되네르 케밥’이다. 직역하면 ‘돌아가는 구이’. 고기를 차곡차곡 꿴 기다란 꼬치를 수직으로 세워 360도 회전하며 익히다가 겉부분만 저며 채소·소스와 함께 빵에 채워준다.

이스탄불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음식 중 하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베를린 시 정부 홈페이지는 “되네르 케밥은 베를린 시민 카디르 누르만(Nurman)이 1972년 개발했다”고 못 박고 있다. 베를린은 ‘튀르키예 제2의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계가 많이 산다. 1960년대 독일은 부족한 산업 인력을 외국인으로 채웠다. 한국인도 많이 갔지만 튀르키예인이 가장 많았다. 누르만도 이때 독일로 이민한 초청 노동자였다. 맛이 상향 평준화된 음식이라 어디건 웬만큼 맛있지만, 잘하는 곳은 가스 불 대신 숯불을 쓴다.

튀르키예 북서부 부르사에서 탄생한 ‘이스켄데르 케밥’./김성윤 기자

되네르 케밥을 먹어봤다면 ‘이스켄데르(Iskender) 케밥’을 권한다. 튀르키예 북서부 부르사에서 1867년 이스켄데르 에펜디(Efendi)가 개발했다. 이스켄데르는 알렉산더(Alexander)의 튀르키예어(語). 커다란 접시에 폭신한 피데 빵을 깔고 숯불에 구운 양고기를 겹쳐 얹고 토마토 소스와 녹인 버터를 흠뻑 뿌린다. 여기에 구운 토마토와 풋고추, 새콤하고 크림처럼 진한 요구르트를 곁들여 낸다. 이스탄불에 전문점이 여럿 있는데, 이 중 ‘이스켄데르 쿠룰루슈 1867′은 에펜디의 후손들이 운영한다.

동부 에르주룸에서 탄생한 ‘카그(Cag) 케밥’은 꼬치를 수평으로 눕혀 회전시키며 익힌다. 12시간이나 걸리는 수고로운 요리다. 저민 양고기를 양파, 소금, 후추를 섞은 양념에 반나절 재워뒀다가 꼬치에 꿰 천천히 장작불에 굽는다. 토마토·양파와 ‘시브리(sivri)’라는 기다란 에르주룸 토종 풋고추와 함께 낸다.

‘테스티(Testi) 케밥’은 중부 네브셰히르 음식이다. 키즈릴리르막강에서 채취한 붉은 진흙으로 만든 질주전자를 소고기와 토마토, 피망, 마늘, 버터로 채우고 입구를 감자와 알루미늄 포일로 막아 장작 화덕에서 익힌다. 재료가 다 익으면 주전자를 꺼내 윗부분을 작은 망치로 깨뜨리고 완벽하게 익은 내용물을 꺼내 먹는다.

튀르키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국민 빵 '시미트'./김성윤 기자

케밥이 유명할지 몰라도 튀르키예 식사의 근간은 빵이다. 100가지가 넘지만, 참깨가 잔뜩 붙은 ‘시미트(simit)’가 제일 유명하다. 버스 손잡이 크기 고리 모양 빵으로, ‘튀르키예 베이글’로도 불린다. 쫄깃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매력적이다. 쉴레이만 대제 시절인 1500년대 톱카프 주방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빵집 ‘갈라타 시미트치시’에서 시미트 만드는 과정을 관찰했다. 제빵사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여 고리 모양으로 양끝을 이어 붙인 뒤 적갈색 액체에 담갔다 꺼내곤 참깨를 듬뿍 묻혀 화덕에 굽는다. 빵집 주인은 “뽕(오디)으로 만든 당밀”이라며 “시미트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을 더해준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바클라바(baklava)’는 라마단 기간 술탄이 예니체리 병사들에게 특식으로 하사하던 귀한 디저트였다. 이스탄불 최고의 바클라바 명가 ‘카라쿄이 귈뤼올루’ 제조실 유리창 너머로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하얀 작업자들이 보였다. 파이지를 최대한 얇게 펴기에 최적의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제조실은 유리창과 문으로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작업자들은 연신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대로 파이지를 폈다.

종이보다 얇아진 파이지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정제 버터를 발라가며 겹겹이 오븐팬에 담는다. 다진 피스타치오도 중간중간 뿌린다. 그렇게 쌓은 파이지 40장에 끓는 설탕물을 붓는다. ‘저렇게 많은 설탕물을 부어도 넘치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놀랍게도 모두 파이지에 흡수됐다. 오븐에서 황금빛이 나도록 구워준다. 완성된 바클라바 한 조각을 깨물었다. 켜켜이 쌓인 파이지가 바사삭 도미노처럼 부서지면서 달콤함과 고소함이 흘러나와 입안을 가득 채웠다.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로 영어권에서 유명한 ‘로쿰(locum)’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인기를 얻은 건 1800년대 이스탄불 제과상 하지 베키르(Haci Bekir)가 옥수수 전분을 더하면서부터다. 물, 설탕, 전분을 섞어 약한 불에서 천천히 졸이면 말랑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디저트가 만들어진다. 장미수로 은은하고 우아한 향을 내거나, 피스타치오만 더한 고전적 로쿰이 여전히 최고다. 베키르의 6대손이 운영하는 가게가 성업 중이다.

동화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마을과 해변으로 유명한 이즈미르 알라차트./튀르키예문화관광부

◇이즈미르-비둘기 빵 샌드위치와 와인 부흥

이즈미르는 30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항구도시다. 1930년대까지 서방에서는 본래의 그리스어 이름 스미르나(Smyrna)로 더 알려졌었다.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때까지 그리스계 주민이 다수 거주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튀르키예 도시 중 그리스계 비중이 높은 편이다. 15세기 스페인에서 강제 추방된 유대인의 후손도 많다. 튀르키예 최대 관광지 파묵칼레와 고대 도시 에페수스 유적도 근처에 있다.

‘보요즈(boyoz)’는 유대인들이 스페인에서 가져온 페이스트리 빵. 이제는 타지에 사는 이즈미르 출신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먹는 솔 푸드로 자리매김했다. 겹겹의 페이스트리 반죽에 치즈, 고기, 올리브, 아티초크, 시금치, 타히니(참깨 소스) 등을 넣어 오븐에 구워낸다. 아침 식사로 인기가 높다. 삶은 달걀과 튀르키예식 차(茶) ‘차이’를 곁들인다.

이즈미르 명물 '쿰루' 샌드위치./김성윤 기자

‘쿰루(kumru)’는 이즈미르 체슈메 지역 샌드위치다. 쿰루는 원래 염주비둘기란 뜻인데, 양끝이 뾰족하고 가운데가 살짝 부푼 빵 모양이 이 비둘기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쿰루 빵은 밀가루에 병아리콩 가루를 섞어 만드는데, 부드러우면서 약간 퍽퍽한 맛이 독특하다. 철판에 치즈, 토마토, 소시지, 소고기 페퍼로니를 굽고 숯불에 구워 버터를 바른 빵에 올린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단순한 샌드위치지만 각 재료가 좋고 빵을 숯불에 구워 풍미가 있다. 가격도 저렴해 간식이나 야식으로 그만이다.

‘최프 시시’는 ‘쓰레기 케밥’ 혹은 ‘찌꺼기 케밥’이란 뜻이다. ‘시시 케밥’을 만들기 위해 양을 잡아서 각 뜨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볼품은 없어도 맛은 좋다. 마늘, 토마토, 올리브오일, 오레가노, 후추로 양념해 꼬치에 꽂아 센 불에 빠르게 굽는다.

이즈미르는 튀르키예 내 주요 올리브오일 생산지 중 하나다. 이즈미르 내 우를라(Urla)는 인류가 처음 올리브를 식용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올리브오일 생산 업체 ‘히치’ 대표는 “올리브는 탄닌 성분이 많아 떫고 써서 소금물에 담가두지 않으면 먹을 수 없지만, 우를라 올리브는 나무에서 따서 바로 먹을 수 있다”며 “우리 지역에만 있는 균류가 올리브를 자연 발효시켜 생식(生食)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즈미르는 튀르키예 와인 부흥의 중심이기도 하다. 과거 이즈미르에는 많은 그리스계가 거주하면서 우수한 와인을 생산했지만,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으로 이들이 가지고 있던 와인 생산 노하우가 사라졌다. 음주를 금하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도 컸다. 부부가 운영하는 ‘비노 로칼레’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를 맡은 아내 세라이 콤바사르는 “튀르키예 와인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토착 품종 포도를 이용해 다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와인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튀르키에 리비에라'에 있는 고급 휴양지 보드룸./튀르키예문화관광부

◇보드룸-태양 가득한 튀르키예 리비에라

지중해를 끼고 있는 튀르키예 남서부 해안은 ‘튀르키예 리비에라’로 불린다. 풍광이 아름답고 연중 햇살이 빛나는 고급 휴양지로 사랑받는 프랑스 남부 ‘프렌치 리비에라’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드룸은 튀르키예 리비에라 중심에 있는 항구로, 초호화 요트와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미쉐린이 이스탄불에 이어 이즈미르와 함께 보드룸으로 진출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보드룸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최케르트메 케밥’을 꼽는다. 구운 송아지 고기를 감자튀김, 마늘 요구르트, 토마토 소스, 구운 토마토, 초록 피망과 함께 낸다. 바닷가답게 생선, 문어, 오징어 등 해산물 요리도 많다.

미쉐린 2스타를 획득한 이스탄불 레스토랑 ‘튀르크 파티 튀타크’의 요리./인스타그램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전통의 재해석

2024년판 튀르키예 미쉐린 가이드는 총 111개 레스토랑을 선정했다. 12개 레스토랑이 별을 획득했다. 2스타가 1곳, 1스타가 11곳이다. 3스타 레스토랑은 없다. 가성비 뛰어난 식당을 의미하는 ‘빕 구르망(Bib Gourmand)’은 26곳에 주어졌다. 나머지 73곳은 추천할 만한 훌륭한 식당을 의미하는 ‘셀렉티드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그래픽=송윤혜

튀르키예 전통 식문화와 식재료를 존중하면서 세계 미식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업장들이 결국 별의 영예를 얻었다. 미쉐린이 튀르키예는 물론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평가 기준이다.

미쉐린이 일본이나 중국, 한국에 진출할 때는 “어찌 감히 외국인이 우리 음식을 평가하는가”라는 분노와 “과연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있었다.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에서 만난 요리사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었다.

튀르키예 원로 요리사이자 바슈켄트 대학 튀르키예 식문화 연구·응용 센터 회원인 데니즈 오르혼은 “튀르키예 요리는 뛰어나지만 시대에 뒤처진 감이 있다”며 “미쉐린은 간절히 필요한 점검과 혁신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문화관광부 장관 메흐메트 누리 에르소이는 “미쉐린은 튀르키예 식문화의 풍요로움을 세계에 선보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제국의 후예이자 진정한 강자다운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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