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겨 뽑은 국수 라면(拉面), 콩 말캉이 두부(豆腐) [말록홈즈]

2024. 1. 19. 13: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록 홈즈의 플렉스 에티몰로지 3]

‘플렉스 에티모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줍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를 종종 접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말록: 형, 케첩이랑 마요네즈는 무슨 뜻이야?

학이형: 케첩이 케첩이지 뭐겠어?

말록: 그럼 라면은 한자로 뭔가요?“

학이형: 술 먹자~

식품회사 홍보맨 형님이 계셨습니다. 설명을 참 잘하셨죠. TV 출연이 잦은 대학교수나 줄서기 유발자 1타강사보다 훨씬 더 재밌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형을 만날 때면 먹을 거리에 대한 호기심들을 마구 끄집어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어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바로 바로 궁금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없었고, 사전이나 위키류의 지식 데이터 역시 빈약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어디서든 궁금증이 스멀거리면, 바로 메모를 해뒀다가 집에 가서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뒤적대다 보면, 대개 답은 나왔습니다. 간장은 간을 맞추는 용도, 고추장은 핵심원료인 고춧가루, 된장은 뻑뻑한(된) 형질이 말뿌리란 걸 간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외국 유래 음식으로 가면 난도가 높아졌습니다. 케첩이 생선발효액 규즙(鮭汁: 생선 규, 국물 즙)에서 유래해, 토마토로 원료를 대체한 소스란 걸 배웠습니다. 새우회 ‘오도리’는 회쳐진 새우가 춤추듯 꼬리를 흔들어 ‘무용 용(踊)’자를 쓴 일본어 ‘踊り’‘란 유래도 재밌었습니다.

<사진 출처: 농심>
정말 힘든 녀석은 라면이었습니다. 라면의 시작은 중국입니다. 중국의 라미엔(拉麵)은 ‘당길 랍’에 국수 면을 씁니다. 면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칼국수나 우동처럼 칼로 써는 절면(切麵), 냉면같이 기계틀에 눌러 뽑는 압면(押麵), 큰 반죽덩어리를 베는 도삭면(刀削麵: 칼 도, 깎을 삭, 국수 면) 등으로 구분됩니다. 라면은 ‘면을 당겨서 여러 가닥으로 늘려 만든’ 수타면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라미엔은 음식이 아니라, 식자재입니다. 19세기에 일본에 살던 한 화교 식당주인은, 이러한 식자재 라미엔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요리인 ‘라멘’을 만들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의 기원은 중일전쟁설이 설득력 있습니다. 중국군이 오래 먹으려고 면을 기름에 튀겨 휴대했는데, 이 방식이 일본에 알려졌습니다. 1950년대말 일본의 닛신식품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중국라미엔에서 착안해, 최초의 인스턴트라멘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 삼양식품이 인스턴트라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요 두 문단짜리 정보를 찾고 이해하는 데,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사진 출처: 청정원>
두부(豆腐)는 라면보다 열 배는 더 복잡했습니다. 대부분 두부 한자 중 ‘콩 두(豆)’자는 알아도 ‘썩을 부(腐)’자는 모릅니다. ‘썩을 부’자를 접하고 삭힌 두부 취두부를 연상했지만, 콩 갈던 멧돌이 내게 비웃음을 던지는 듯했습니다. 한자사전에서 ‘썩을 부’의 여러 뜻을 찾아 퍼즐조각을 맞춰봤지만, 머리속은 갈수록 난장판이 돼갔습니다.

이해력이 벽에 부딪힐 땐, 다른 언어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기도 합니다. 두부의 영단어 bean curd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curd는 ‘응유(응고된 우유)’를 가리킵니다...

‘대체 어떤 양반이 두부라고 지은 거야!’

뇌신경이 엉킨 채로 늪에 빨려들어가는 듯 폭폭했습니다.

‘이래서 감옥 졸업하면 두부 먹이나?’

세월이 좀더 지나 다시 포털을 뒤적이다가, ‘동물의 뇌처럼 말캉말캉한 물질’을 썩을 부자로 표현한단 설명을 봤습니다. 목욕하던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칠까 망설이다가,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튀어나왔습니다.

“이런, 썩을!”

<어원을 쉽게 푸는 방법>

1. 한자어는 한자사전으로, 영어단어는 영어어원사전으로 찾아본다!

2. 사전을 보고도 명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른 외국어 사전의 풀이로도 해석해 본다.

ex) [검색어] 탕수육 —> [한자사전] 糖醋肉(설탕 탕, 식초 초, 고기 육) —> [영어사전] sweet and sour pork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렝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