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함부로 버리지 마라…친환경 소재로 다시 태어날 ‘자원’[도시광산]

이진주 기자 2024. 1.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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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AI 로봇이 전국에서 빈 ‘페트병’ 모으는 이유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이 운영하는 친환경 재활용 공장 ‘아이엠팩토리’ 내부 모습. 납작하게 압축된 투명한 페트(PET)병을 큐브 형태로 묶은 베일(bale)들이 공장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친환경 재활용 아이엠팩토리
AI 로봇 ‘네프론’이 페트병 회수
AI로 병뚜껑 등 불순물 제거
고품질의 재생 플레이크 생산
재활용 섬유·용기 등으로 변신
대표적인 순환 자원으로 주목
재생원료 의무화 비중 높이고
세제 혜택 등으로 비용부담 완화
자원의 선순환 확산 정책 필요

서울 관악구의 이진영씨(42)는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고 난 투명한 페트(PET)병을 모아뒀다가 1주일에 한 번씩 동네에 있는 폐기물 회수 로봇(네프론)에 가지고 간다. 자판기 모양의 ‘네프론’은 인공지능(AI) 회수 로봇이다. 네프론에 페트병을 넣으면 AI가 유색 페트병이나 라벨, 병 뚜껑 유무를 확인해 투명한 페트병만 수거한다. 네프론으로 수거된 폐페트병은 어디로 갈까?

지난 2일 경기 화성에 있는 ‘아이엠팩토리’에는 납작하게 압축된 투명한 페트병을 큐브 형태로 묶은 베일(bale)들이 공장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베일 1개 무게는 500㎏ 정도로 약 2만5000개의 페트병을 압착한 것이다.

‘수퍼빈’이 전국에 보급한 AI 회수로봇‘네프론’ 1036대가 수거한 패트병이 공장에 도착했다.

아이엠팩토리는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이 운영하는 친환경 재활용 공장이다. 수퍼빈이 개발한 AI 회수 로봇 ‘네프론’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재생 페트 플레이크(r-PET Flake)’로 만드는 곳이다.

페트병을 잘게 자른 플레이크는 녹여서 펠릿을 만들거나 그 자체로 섬유나 용기 등 재활용 소재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플레이크를 고온에서 녹여 작은 알갱이 형태로 가공한 펠릿은 플레이크보다 크기가 균일해 보다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2022년 12월부터 플레이크 양산을 시작한 아이엠팩토리는 페트병을 분쇄한 뒤 세척 및 건조 과정을 거치는 물리적 재활용 방식으로 자원순환을 하는 현장이다.

진동으로 라벨을 제거한 페트병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선별 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방법은 플라스틱을 잘게 잘라 사용하는 ‘물리적 재활용’과 열과 각종 화학물질로 원재료에 가까운 형태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 발전시설이나 시멘트 공정 등의 대체 연료로 소각하는 ‘열적(에너지) 재활용’ 등으로 나뉜다.

18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물리적 재활용은 공정이 단순해 투자비용이 낮고 화학적 재활용 대비 탄소 배출이 적어, 재활용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폐플라스틱 오염도에 따라 강도나 탄성 등 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적용 가능한 플라스틱 소재도 한정적이다. 또 여러 번 재활용하면 분자구조 간 결합력이 약해져 품질이 떨어진다.

아이엠팩토리는 고품질의 플레이크를 만들기 위해 총 12단계 공정을 거친다.

분쇄·세척 등 12단계의 물리적 재활용 공정을 거처 완성된 고품질 재생 플레이크.

먼저 베일을 지게차로 옮겨 자원 투입구에 넣고 금속 끈을 끊어내면 낱개로 분리된 페트병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재활용 공정으로 이동한다. 기계의 진동으로 페트병에 붙은 라벨을 제거한 뒤 수퍼빈이 구축한 폐기물 빅데이터 기반의 AI 선별기에서 유색 페트병, 병뚜껑 등 불순물을 걸러낸다.

페트병은 생수나 음료가 담긴 투명한 페트병과 맥주, 양념통 등 유색 페트병으로 분류된다. 이곳은 투명한 페트병만을 사용해 플레이크를 만든다. 홍성은 수퍼빈 홍보팀 책임은 “유색 페트병이나 병뚜껑이 섞인 플레이크로 만든 섬유는 뚝뚝 끊어지는 등 제품으로 만들었을 때 품질이 확연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AI 선별 기술 없이 10명 이상의 직원들이 직접 불순물을 골라낸다”며 “아이엠팩토리에서는 AI를 통해 3차례 불순물을 걸러낸 뒤 직원 1명이 최종 검수한다”고 설명했다.

투명 페트병보다는 질이 떨어지지만 병뚜껑을 비롯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등의 폐플라스틱도 플레이크나 펠릿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펠릿은 빨간색 고무 대야나 고무 슬리퍼, 저품질의 충전재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선별기를 통과한 페트병은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플레이크로 분쇄된다. 플레이크 품질은 이물질 여부와 수분율에 따라 결정된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라벨 및 접착 테이프 등 오염물질 제거와 건조가 중요하다.

분쇄된 플레이크는 비중이 작아 부상하는 이물질을 걸러내는 ‘비중선별’과 바람으로 플레이크보다 가벼운 이물질을 제거하는 ‘풍력선별’ 등을 거친다. 이후 온수 세척을 통해 이물질을 한 번 더 제거한 뒤 탈수와 건조, 금속 제거 등을 통과하면 모든 공정이 마무리된다.

폐페트병이 플레이크로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 정도다. 시간당 1.5t의 플레이크를 만들 수 있으며 연간 최대 생산량은 1만t에 달한다. 완성된 플레이크는 화학회사와 섬유회사, 용기회사 등에 납품돼 실과 포장재, 플라스틱 용기 등으로 재탄생한다.

수퍼빈은 2016년 AI 기술을 활용해 페트병, 캔 등 재활용 폐기물을 회수하는 자판기 모양의 로봇인 ‘네프론’을 먼저 개발했다. 일반인들이 투명한 페트병을 물로 세척한 뒤 라벨을 떼어내 네프론에 투입하면 개당 10원씩 포인트를 제공받고, 2000포인트부터는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섬유·용기 등 제품 생산에 재활용하기 위해 납품 대기 중인 재생 플레이크.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06개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기업 등에 네프론 총 1036대가 보급됐다. 네프론을 통해 그동안 수거한 페트병은 2억8000만개에 달한다.

수퍼빈은 폐플라스틱의 가공 및 소재화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올해 전북 순창에 펠릿 공정을 추가한 제2 아이엠팩토리를 준비 중이다.

물론 국내에서 폐페트병을 식품 용기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모두 적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수퍼빈은 이미 환경부로부터 재생 페트 플레이크가 식품용 재생원료의 생산에 적합하다는 ‘식품용기 재생원료 생산 확인서’를 받았다. 식약처의 ‘식품용기 재생원료 인증서’를 취득하려면 재생 펠릿 공정을 갖춰야 한다.

홍 책임은 “사용한 페트병을 다시 새 페트병으로 재활용하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은 자원순환의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자 회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라며 “제2 아이엠팩토리가 가동된다면 펠릿 공정에 대한 식약처 승인을 취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내 생활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19년 418만t에서 2021년 489만t으로 17% 늘었다. 이 중 페트병 계열은 2017년 45만6761t에서 2021년 228만8923t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 원료 페트병 사용 비중을 3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국내에서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업체는 24곳이다. 대부분 영세한 수거업체 위주로 꾸려졌다.

구재현 아이엠팩토리 공장장은 “플라스틱 재활용에 속도를 내려면 시장을 크게 넓혀야 한다”며 “폐기물 시장에 자본과 민간기업의 유입이 확산될 수 있도록 재생원료 비중을 높이는 등 재생원료 의무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생원료는 새 플라스틱 원료보다 비싸기 때문에 이를 구입하는 업체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생산자 재활용책임제(EPR) 분담금을 낮추거나 세제 혜택을 통해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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