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전히 '김치=파오차이'…'신치'로 바꾼 곳은 두 곳뿐

이지현 기자 2024. 1. 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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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한 식당은 서울시가 나눠준 '신치' 스티커를 메뉴판에 덧붙였다. 〈사진=이지현 기자〉
'김치=신치(辛奇)'. 김치의 중국어 표기는 '신치'입니다.

중국식 야채 절임인 '파오차이(泡菜)'와 다른 한국의 전통 음식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 2021년 정부가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치'로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파오차이'가 남아있습니다. 특히 중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과 인사동 일대에도 잘못된 표기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명동 일대의 김치 표기를 점검하고, 파오차이 글자를 신치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뀐 곳은 두 곳에 그쳤습니다.

명동·인사동 70%는 여전히 '파오차이' 표기 중


취재진이 18일 명동 25곳 음식점을 돌아본 결과 17곳이 여전히 '파오차이'라는 잘못된 표기를 쓰고 있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오늘(18일) 취재진이 명동 25곳 음식점을 돌아봤습니다. 김치 메뉴를 판매하며 중국어 표기를 해 놓은 음식점 중 김치를 '신치'로 표기한 곳은 8곳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17곳은 여전히 '파오차이'라는 잘못된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인사동 골목의 한식집 10곳을 둘러본 결과, '신치'라는 표기를 해 놓은 음식점은 3곳에 불과했습니다.

명동과 인사동 모두 음식점의 70%가량이 김치를 '파오차이'로 잘못 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식당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여전히 구글 등 포털 사이트 번역기에서 김치를 검색하면 '泡菜(파오차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런 번역기의 오류가 메뉴판으로도 그대로 이어진 겁니다.

'김치' 표기 점검 나선 서울시…바뀐 곳은 2곳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에 잘못된 표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명동 일대 한식집들의 김치 표기를 점검했습니다.

총 180곳을 점검하고, '辛奇(신치)' 한자가 쓰인 스티커를 배부했습니다. 메뉴판에 붙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거죠.

하지만 서울시 점검 이후 바뀐 곳은 두 곳뿐이었습니다. 한 곳은 메뉴판 자체를 교체했고, 한 곳은 시에서 나눠준 스티커를 메뉴판에 붙여 수정했습니다.

표기를 바꾼 A 식당 관계자는 "파오차이가 잘못된 표기인 걸 알고 있어 스티커를 받자마자 바로 붙였다"며 "오히려 잘못된 표기 때문에 외국인 손님들이 메뉴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들이 있어 바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B 식당 관계자도 "매장에 외국인 직원들이 있어 잘못된 메뉴 표기가 있을 때마다 논의해 메뉴판을 바꾸고 있다"며 "이번에는 책자형 메뉴판만 '신치'로 변경했는데, 앞으로 현판 메뉴판도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명동의 한 식당은 최근 메뉴판을 아예 바꿔 '신치'로 표기를 정정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시 "변경 강제할 수 없어"…상인들은 "비용 부담돼"



하지만 나머지 식당들은 쉽사리 표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C 식당 관계자는 "파오차이 표기가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표기를 바꾸기 위해 메뉴판 전체를 다 바꾸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메뉴판에서 고쳐야 할 게 많을 때 한꺼번에 바꾸면 몰라도 당장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D 식당 관계자도 "안그래도 최근 메뉴판을 바꿀 일이 있어 알아봤는데 견적을 내보니 책자형만 바꾸는 데에도 100만원 가까이 든다"며 "명동 상권이 아직 완전히 살아나지 않아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메뉴판을 다 바꾸기에는 비용 부담이 있을 것 같아 스티커를 제작해 나눠드렸는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메뉴판마다 글자 크기가 달라 붙이기를 꺼리는 분들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시에서도 표기를 바꾸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 지속적으로 개도하고 요청하는 수밖에는 없다"며 "그래도 앞으로 메뉴판을 바꾸게 될 때 '신치' 표기를 반영하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준 분들도 많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경덕 교수 "우리부터 올바른 표기로 바꾸는 게 중요"


중국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김치'를 검색하면 나오는 파오차이 항아리. 〈사진=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중국의 한국 전통문화 왜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김치의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주장을 한 데 이어, 최근에는 비빔밥의 기원도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 최대 포털인 바이두 백과사전이 한국의 전통 음식인 비빔밥의 발원지를 '중국'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중국 쇼핑몰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Kimchi' 또는 '김치'를 검색하면 파오차이를 담는 유리 항아리가 검색되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부터 올바른 표기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서 교수는 강조합니다.

서경덕 교수는 "국내 식당들의 파오차이 표기는 중국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국내부터 표기를 잘 바꿔야 중국인들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한순간에 모든 표기를 바꿀 수는 없는 만큼 서울시나 정부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상인들과 협의해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시 "디지털 메뉴판 활용하는 방안 검토 중"



서울시는 올해도 '파오차이' 표기 정비에 나서겠다는 계획입니다.

실물 메뉴판의 잘못된 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서울시 내 각 자치구와 협의하는 한편, 디지털 메뉴판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서울시 관광산업과 관계자는 "요즘은 QR코드를 찍어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보고 주문할 수 있는 디지털 메뉴판을 많이 활용한다"며 "서울시가 종이 메뉴판을 변경하도록 지원하기보다 디지털 메뉴판을 이용해 표기 오류를 바로잡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들도 디지털 메뉴판을 활용해 편리하게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메뉴판의 표기 오류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라며 "관련 예산도 확보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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