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커피를 아시나요? 오징어 고장 주문진의 명물이 되다!

박미향 기자 2024. 1. 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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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주문진 도깨비시장 먹거리
‘강냉이소쿠리’의 옥수수커피와 강냉이아이스크림.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옥수수커피를 아시나? 오징어 산지 주문진에서 옥수수커피라니! 옥수수 알갱이를 원두 볶듯이 볶아 간 가루로 만든 마실 거리일까? 원두 가루와 섞은 커피일까? 도통 이름만으로는 맛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난 12일 강릉 주문진 일대를 찾았다.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신-도깨비’(tvN.2016)의 한 신을 찍은 방사제가 이 지역에 있다. 도깨비 김신(공유)이 빨간 목도리를 두른 지은탁(김고은)에게 메밀 꽃다발을 내미는 장면이다. 드라마의 ‘꺾이지 않는’ 인기 때문에 이 동네는 추운 겨울에도 찾는 이가 많다.

이날 해는 빠른 속도로 얼굴을 감췄다. 혼자 떠난 여행길은 스산하다. 사막에 홀로 핀 선인장처럼 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 간판을 만났다. 여행지에서 처음 맞닥뜨린 ‘나 홀로 여행족’ 친구로 나선 게 ‘말이 없는’ 간판이라니! ‘주문진 도깨비시장’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간판 뒤 좁은 길에 지붕 낮은 작은 집이 보였다. 초가집처럼 아담하고 소박한 카페 ‘강냉이소쿠리’(주문진읍 학교담길 32-8)였다. 차림표에 옥수수커피가 있었다. 강릉이 커피 고장이 된 지는 오래다. 2000년대 초반 안목해변에 커피숍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2010년을 넘기면서 그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지금은 확고한 국내 대표 커피 거리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해 커피 연구에 매진한 한국 커피 1세대 장인 박이추 선생의 공이 크다. 강냉이소쿠리의 옥수수커피 맛도 안목해변 커피 맛과 같을까?

‘강냉이소쿠리’ 밖 풍경. 박미향 기자
‘강냉이소쿠리’ 외관. 박미향 기자

한 모금 마신 옥수수커피에서 달보드레하고 엇구수한 맛이 났다. 혀끝에 감도는 맛이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고요하게 침잠하며 음미하기에는 충분했다. 고적한 여행자 마음을 온기로 보듬는다. 매료되고 만다. 마셔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옅고 구수한 맛이다. 덤으로 먹은 강냉이아이스크림은 알싸한 겨울을 담았다. 깨고소한 맛이다. 얄미울 정도로 달곰하다. 아이스크림에 박힌 강냉이는 씹을 때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이 맛들이 주연이라면 나무 뼈대가 드러난 천장, 헤지고 낡은 소반, 지푸라기로 엮는 듯한 광주리 등 온갖 옛것들은 조연이다. 그것도 실력 출중한 조연이다.

과거를 박제한 듯 꾸민 카페는 또 있었다. ‘콩방앗간’, 나무 창살 문짝이 강냉이소쿠리와 닮았다. 조청콩도넛, 콩물도넛, 인절미라떼 등이 메뉴다. 옥수수커피만큼 생소하다. ‘조청’은 우리 음식인데, 거기에 붙은 ‘도넛’은 서양 간식이다. 하지만 가운데 구멍 뚫린 서양식 도넛이 아니었다. 우리 재래시장에 흔히 보는 찹쌀도넛에 콩가루와 조청을 뿌린 간식이었다. 차지고, 존득하다. 콩물도넛은 기묘한 모양새였다. 콩물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찹쌀도넛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마치 해녀 물질하듯 떠 있었다. 쫄깃한 도넛과 은근한 콩물의 ‘컬래버’에 매혹당하고 만다.

‘콩방앗간’의 ‘콩물도넛’. 박미향 기자
‘콩방앗간’의 ‘조청콩도넛’과 ‘인절미라떼’. 박미향 기자

도대체 이런 맛은 누가 만든 것일까?

“본래 도깨비시장, 이 자리는 ‘오징어가미공장’이 있었어요. 전체가 1700평(5619㎡)인데요, 문 닫는 공장 터죠. 뼈대는 그대로 두고 재생 건축으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어요. 지하에는 쇼핑 숍도 있지요. 이 지역 문화유산을 그대로 담은 공간도 있답니다.” 도깨비시장에는 강냉이소쿠리, 콩방앗간 포함해 가게가 총 5개 있다.

도깨비시장을 ‘창조’한 이는 박소영(51) 대표다. 그는 박이추 선생처럼 1세대다. 커피가 아닌 ‘푸드스타일링’ 영역에서 말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푸드 디렉터’ ‘푸드 컨설턴트’ 등이 붙는다. 그가 20여년 전 설립한 ‘푸드앤테이블’은 외식이 ‘먹는 것’ 이상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냈다. 푸드앤테이블이 브랜드나 공간 컨설팅한 기업은 디자인이나 오라(아우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굵직한 식품 회사들이 이 회사 고객들이었다.

방송 출연, 각종 식음료 관련 강의 등 그는 아이돌 뉴진스만큼은 아니지만, 일상을 바쁘게 쪼개 쓰는 유명 인사다. 그런 그가 대도시를 떠나 강릉에 ‘도깨비’처럼 나타나 ‘도깨비시장’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는 포항이 고향이지만, 강릉에 사신 지 30년 넘으셨죠. 저도 거의 강릉 사람이고요. 이 땅에 ‘우리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역 고용 창출’, ‘지역 특산물 살리기’ 등에도 기여하고 싶어요. 도깨비시장이 지역 랜드마크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깨비시장 들머리에 있는 간판. 박미향 기자
‘콩방앗간’ 외관. 박미향 기자
‘콩방앗간’ 실내. 박미향 기자

도깨비시장은 2021년에 문 열었다. 박 대표 특유의 미학적 공간 감수성이 십분 발휘돼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반신반의했다. 인기 드라마(‘도깨비’) 촬영지가 지척에 있다고는 하나, 지금 대세 유행은 아니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진 여행 트렌드는 ‘더 빨리 가, 더 빨리 찍고 더 빨리 다른 포토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머물며 사색하고 침잠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도깨비시장 콘셉트가 이른바 대중에게 ‘먹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장 바닥에 햇살이 설탕처럼 반짝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열린 플리마켓, 구름이 낮게 앉은 날이면 어김없이 펼쳐진 루프트 톱 공연 등은 여행객을 사로잡았다.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였다. 그가 짠 스토리텔링도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강냉이소쿠리는 1958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박 대표가 구입한 소반, 자개상도 다 낡은 것이다. 이런 팩트들을 주렁주렁 엮어 외국 유학 다녀온 손녀가 외할머니 집에 따스한 공간과 맛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림책에 담았다. 책은 가게에 비치돼 있다. 이젠 트렌드세터들 입에 자주 오르는 동네가 됐다. 주문진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옥수수커피, 강냉이아이스크림, 콩물도넛, 조청콩도넛 등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콩방앗간’의 ‘인절미라떼’. 박미향 기자
‘강냉이소쿠리’ 자개상 등. 박미향 기자
‘강냉이소쿠리’에서 선물용으로 파는 캐러멜. 박미향 기자

“옥수수커피, 강냉이아이스크림은 강원도 찰강냉이가 재료인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어요. 콩방앗간 콩도 다 국내산이고요, 도넛엔 강원도 감자로 만든 가루도 들어갑니다.”

맛의 8할은 재료가 정한다고 했다. 이쯤 되면 옥수수커피 제조법이 정말 궁금해진다. “드립커피 만들 때 붓는 물 대신 우리는 로스팅한 찰강냉이 우린 물을 써요. (맛 비결은 더 있지만) 더는 말씀 못 드려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강냉이아이스크림은 특허출원할 정도로 인기 메뉴다. 곧 온라인 마켓도 열 예정이란다.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 행사도 계획 중이다. 경쾌한 그의 목소리 어디에서도 암 환자라는 그의 현실이 느껴지지 않는다. 30차례 넘는 항암 치료를 하는 통에 한동안 도깨비시장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하루 일상을 적금 들 듯이 밝은 마음으로 채워갈 거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생명에 대한 퍼덕이는 열망이 도깨비시장 곳곳에 스며들지 않을까. 그래서 옥수수커피는 더 맛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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