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옥중 편지서도 기후위기 경고…시대 앞서간 문익환의 환경 사상

윤연정 기자 2024. 1.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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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별세 30주기
생명·환경문제 역설 재조명
늦봄 문익환 목사 3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1부 추모예배가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익환 목사는 1918년 6월1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진 문재린과 어머니 김신묵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6년 8월 월남해 김천 배영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봉직한 뒤 194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구약학자로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위원을 맡아 성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와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계기로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89년 3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4·2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1991년 6번째 수감 뒤 1993년 3월 출소했고, 1994년 1월18일 심장마비로 자택(통일의 집)에서 별세했다. 영화 ‘1987’ 마지막 장면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외치던 사람도 문 목사다. 그의 30주기를 맞아 최근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수감 시절 아내와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그의 생애를 짚어본다.

“사람도 못 살겠다 아우성인데 나비가 어떻고 비둘기, 개미가 어떻고, 무슨 쓸데없는 넋두리냐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문익환 목사가 6번째 투옥 중이던 1992년 9월 부인 박용길 여사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이다. 문 목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하는 세계관이 결국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 못 된다는 것이 드러났거든요. 푸성귀, 벌레의 목숨까지 소중히 생각하게 돼야 사람의 목숨도 소중해지는 문화가 열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하찮은 벌레들의 꼬물거리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걸리네요”라고 보냈다.

18일로 문 목사 30주기를 맞아 그의 통일운동 정신과 더불어 생명 사상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와 맞물리며 그의 글 밑바탕에 생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투옥되어 있던 1987년 2월 옥중 편지엔 이런 글귀가 있다. “대기권 밖의 방사능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는 날이면, 지구는 농사지을 만한 낮은 땅은 다 물에 잠겨 버릴 테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요. 인류 문화의 근본적인 대전환이 요청되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소.” “온갖 공해의 요인인 공장들을 닫아 버리고 흙을 사랑하는 흙의 문화로 말이에요. 인류의 대위기에서 가진 자들의 양심은 기어이 잠꼬대를 깨우지 못할 것인지. 이렇게 해서 양심은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어 가고 있군요.”

늦봄 문익환 목사 3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2부 기념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김평수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사장의 춤을 감상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쌀알 하나’는 문 목사에게 ‘자연’과 ‘역사’적 산물 자체였다. 1986년 9월 문 목사가 부인과 주고받았던 옥중 편지에는 “밥이란 사실 자연의 산물인 동시에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밥 한 알에는 전 우주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인류의 역사와도 끊을 수 없으니까요. 쌀 한 톨의 생산을 위해서 땅은 그 지력을 다하는 것이요, 하늘은 햇빛을 쏟고 비를 내리고 바람이 불고. 과일, 파, 토마토 등의 생산을 위해서는 나비와 벌이 수술의 가루를 암술에 옮겨 주고, 거기에 사람들의 손이 더해지는 거고. 밥상 하나가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 얼마나 긴 인류의 역사가 있소?”라는 글이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문 목사의 정신을 기억하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지난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모였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문익환 30주기 기념문화제’에는 문 목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람들 500명가량이 모였다. 이곳에서는 문 목사의 평화통일 정신을 기리는 것과 더불어 그의 생명·환경 사상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알려진 풀무원 농장의 고 원경선 원장의 딸이자 40년 넘게 유기농업을 실천해온 농부 원혜덕씨는 “1989년 3월 방북해 김일성을 만나 투옥된 이후 문 목사님이 저희 집에 머물 때 ‘녹두빈대떡이 먹고 싶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와 문 목사님의 생명사랑에 대한 실천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 생명과 평화, 막연해 보이는 단어지만 결국 통일로 연결되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평화선언문을 발표한 청년 김지혜씨는 “30주기를 맞아 우리는 문익환 목사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밑바탕은 가장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됐음을 새삼 깨닫는다”며 “세계 평화와 남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안의 분열과 차별을 극복하고 목소리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찾게 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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