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현실을 긍정하는 마음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 2024. 1.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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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진로 정해야 한다면 진정 하고싶은 일 하시라
난관 당장 해결 어렵다면 정면 돌파로 대안 찾기를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

‘논어’는 청빈한 삶을 격려하는 책이다. 공자의 수제자로 알려진 안회(顔回)는 특히 가난하게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기 때문에 공자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공자는 그의 제자 누구에게도 “어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현인(賢人)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어떤 특출한 인물을 어진 사람이라고 칭송하면서 공자에게 동의를 구할 때마다 그는 다만 “모르겠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 수준이 아님을 완곡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안회에 대해 공자는 분명하게 “어질다”고 극찬했다. 공자가 안회를 그렇게 평가한 것은 가난한 생활을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살았던 그 태도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 역시 세속인 부귀한 삶을 원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직업이라도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안 다음에 그는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울산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석계서원에는 ‘재천정(在川亭)’이라는 건물이 강변을 향한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회야강인데, 직접 가보면 절벽 아래 물이 흐르는 경치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오면 공자가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도(道)를 깨달았다고 하는 논어의 그 유명한 문장이 그대로 생각난다. “선생님께서 시냇가 위쪽에 서 계셨다. 말씀하시기를,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흘러 멈추지 않는구나’(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져 不舍晝夜로다).” 이 건물의 현판은 바로 이 문장에서 “재천(在川)” 두 글자를 따온 것이다. 득도의 순간을 감격적으로 표현한 이 문장에서 글자를 취해서 이름을 지은 이 현판의 철학적이고 심오한 의미에 모두가 감탄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재천정에 있는 2개 방 중에서 서쪽 방을 ‘종오료(從吾寮)’라고 작명한 그 지식인의 결심에 놀라움과 함께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공자가 말한바, “부자가 되는 것이 만약 노력해서 가능한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또한 하겠지만, 만약 노력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富而可求也인댄 雖執鞭之士라도 吾亦爲之어니와 如不可求인댄 從吾所好호리라)”는 문장에서 ‘종오(從吾)’ 두 글자를 취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선택한 사람이 사는 작은 집’이라는 뜻으로 작명한 그분은 분명히 그 이전에 누리던 세속적인 영광과 부귀를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추구하는 삶을 찾아 여기 재천정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중용에 “군자는 현재 자기가 처한 위치에 맞게 행동하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君子는 素其位而行이요 不願乎其外니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의 ‘소(素)’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주자가 풀이한 바에 따라 “지금 있는 그 자리”라는 뜻으로 본다. 현재 부귀한 상황에 처해서는 부귀한 자로 처신하고, 현재 빈천한 상황에 처해서는 빈천한 자로 처신한다는 말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리대로 적응한다는 뜻이라서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지키는 가치나 추구하는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또는 당장에 극복할 수 없는 고난과 환난에 처해서는 일단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뜻이다. 이렇게 당장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그다음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롭게 직업이나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면 경제적인 전망에 따르기보다는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런 선택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 결과적으로 현명한 결정이 될 확률이 높다. 이것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에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뜻으로 방 이름을 정한 분이 미리 경험하고 전해주는 충고이다.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그 일을 하다가, 또는 올바른 소신을 지키다가 일시적인 가난이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용의 가르침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된다.


논어나 중용과 같이 오랫동안 지식인의 사랑을 받았던 고전은 단순히 공부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또한 삶의 지혜의 원천이면서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책이다. 이런 고전을 읽으며 현실을 긍정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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