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10) “독도 우편번호가 적힌 술, 깔끔한 독도소주 맛보셨나요?”

박순욱 선임기자 2024. 1. 1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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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케이알컴퍼니(독도소주 생산법인) 임진욱 대표
독도 해외에 알리려고 술 라벨에 독도 우편번호 40240 표기
울릉도 해저 1500m 미네랄 농축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풍부
낮은 온도에서 내리는 감압증류방식 택해, 부드럽고 담백한 맛
미국 수출 시작…”생산량의 절반을 수출해 해외에 독도 알리는 게 목표”
독도소주 임진욱 대표가 감압증류설비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증류원액은 초류(증류 초기에 나오는 증류원액), 본류, 후류로 나눠 내려 각기 다른 통에 담는다. 술덧의 30% 정도인 본류만 실제 상업용으로 사용된다. /박순욱 기자

“숫자 ‘40240′의 의미를 아십니까? 독도소주 라벨에 적혀있는 ‘40240′이라는 특별한 숫자는 독도의 우편번호입니다. 우리 영토인데도, 독도가 고유의 우편번호를 처음 가진 것은 2003년입니다. 당시 우편번호는 ‘799-805′였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행정안전부의 도로명 주소 시행에 맞춰 지금의 40240으로 개편됐습니다.

독도의 우편번호 40240 숫자를 통해 독도가 한국 고유의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인 소주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와 독도의 우편번호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고, 한국인 역시 독도를 더욱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로, 한국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를 만들어 독도사랑을 실천하는 양조장 대표가 있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케이알컴퍼니(독도소주 생산법인) 임진욱 대표가 그다. 임 대표는 독도소주 라벨에 독도 우편번호 ‘40240′을 명시했다. 정식 술이름이 ‘40240 DOKDO’다. 술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는 경우도 드문데, 우편번호가 들어간 경우는 독도소주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독도소주 임진욱 대표는 중앙언론사 기자, 서울 시내버스 대표를 거쳐 '독도 알리기'에 진심인 양조장 대표가 됐다. /박순욱 기자

중앙언론사 사진취재기자, 서울시내 버스회사 대표를 거쳐 양조장 대표로까지 변신한 그의 ‘독도사랑’은 버스회사를 운영할 때부터 드러났다. 독도 우편번호 40240 이전의 우편번호인 ‘799-805′를 자신이 운영하는 시내버스 후면에 부착,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독도 우편번호를 알렸다. 임진욱 대표의 독도사랑은 우편번호뿐 아니었다. 버스 안 미술관에 독도사진전까지 열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세운 동상인 ‘소녀상’을 버스에 태운 것도 그였다.

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던 그가 독도소주를 만들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출시한 ‘799-805(독도 첫 우편번호) 독도와인(DOKDO WINE)’을 알게되면서부터였다. 독도와인은 10여년전 한국인 치과의사(작고)가 미국에서 만든 와인이었다. 임 대표는 “독도와인이 보여준 독도사랑을 독도소주를 통해 다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더라도, 술은 술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술맛이 별로라면 독도사랑 마케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 있는 독도소주 생산공장을 찾았다. 이전에 과실주를 만들던 공장을 인수해, 쌀증류주 전문 양조장으로 개조했다. 전국의 양조장을 100군데도 더 가봤지만, 자동화설비가 가장 잘된 곳이 이곳 독도소주 공장이었다.

독도소주 임진욱 대표가 2줄로 들어서 있는 발효탱크 앞에 서 있다. 독도소주는 2주일의 발효기간 후에 증류를 한다. /박순욱 기자

쌀 세척에서부터 분쇄(이곳에선 고두밥을 찌지 않고 생쌀발효한다), 발효, 증류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 공정 하나하나마다 파이프로 다음 공정으로 보내기 때문에 외부 공기에 노출될 일이 전혀 없다. 자동화가 잘 돼 있는 만큼 최소한의 인력으로 양조장 가동이 가능하다. 임 대표는 “박스 포장을 제외한 전체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가 돼 있다”고 말했다. 1500평 부지의 생산공장에서 생산 담당 직원은 임 대표를 포함해 3~4명에 불과하다. 온도 조절장치인 ‘콘트롤 판넬’을 통해 전 공정이 자동으로 운영된다. 온수, 냉수 투입시기는 물론 발효탱크와 증류탱크 내부의 자동교반기(휘저어 섞음) 작동시기까지 척척 알아서 한다.

이곳 독도소주 생산공장에서는 발효과정에서 전통누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술은 발효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데, 쌀을 원료로 할 경우, 쌀 속의 전분을 당분으로 만드는 당화과정, 그리고 당분을 알코올로 만드는 알코올 발효과정이 그것이다. 전통 밀누룩에는 당화에 필요한 효소와 알코올 발효에 필요한 효모가 모두 들어있어, 이들 효소와 효모가 결국 술을 발효시키게 된다. 그러나, 독도소주의 경우, 전통누룩은 일부만 넣고, 별도로 효소(조효소제)와 효모(정제효모)를 넣어서 발효를 진행시킨다. 임 대표는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술을 만들기에는 전통누룩보다 정제효소가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효과정에서 고두밥을 찌지 않고 생쌀발효를 선택한 것은 공정의 단순화와 인력절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술의 균일성 때문이다.

독도소주의 제품들. 알코올 도수 기준으로 17도, 22도, 27도, 37도 제품이 있다. /박순욱 기자

발효 다음 공정이 증류다. 독도소주는 감압증류방식으로 내린다. 감압증류는 낮은 압력에서 물질의 끓는 점이 내려가는 현상을 이용하는 증류방식이다. 내부의 압력을 강제로 빼내(감압), 47~50도 정도의 낮은 온도(원래 알코올은 78도에서 끓기 시작한다)에서도 알코올이 끓어, 술에 탄내가 나지 않고, 맛이 깔끔한 것이 장점이다.

다만, 다양한 향과 깊은 맛은 상압증류방식(일반 압력 하에서 증류하는 방식으로 위스키, 브랜디 등이 이 방식을 택한다)으로 내린 증류주만 못하다. 임 대표는 “부드럽고 담백한 술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감압증류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려말에 처음 도입된 국내 증류주는 수백년 동안 소줏고리로 내렸는데, 이 방식은 상압증류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증류방식은 안동소주를 필두로 상압증류가 대세였는데, 2005년에 출시된 화요를 기점으로 최근엔 감압증류방식을 이용한 증류주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안동소주 중에서도 감압방식을 택한 술이 있을 정도로, 화근내(탄내) 없는 담백, 깔끔한 술이 한국 증류주의 최근 트렌드다.

독도소주의 감압증류기는 2톤짜리 2대를 갖추고 있다. 각각 높이가 6m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 설비는 쌀증류주 업체 중 경기도 여주의 화요 말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편이다. 증류 전 공정인 발효를 담당하는 발효탱크 역시 2톤짜리가 16개에 이른다. 감압증류탱크 디자인도 임 대표가 직접 했다. 임 대표는 “탑의 높이와 냉각기 길이, 각도에 따라 증류원액 맛에 큰 차이가 있다”며 “증류과정에서 기화되는 알코올이 높은 냉각탑에 올라가 섭씨 4도의 냉각수를 만나 증류원액이 만들어져 최대한 술 맛이 부드럽도록 했다”고 말했다. 핵심시설인 증류설비뿐 아니라 전체 공정을 거의 1년여에 걸쳐 임 대표가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가며 양조장 설비 설치를 마무리했다. 임 대표는 “발효, 증류설비 구입 비용만큼 설치하는데 거의 같은 비용이 들었다”며 “전국 어느 양조장과 비교해도 자동화 공정이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현재 독도소주는 17도, 27도, 37도 3종류(알코올 도수 기준)가 있다.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가격은 착한 편이다.

독도소주 생산공장의 핵심시설인 증류기. 임진욱 대표가 가리키는 곳은 가로로 긴 냉각탑. 기화된 증류원액은 냉각탑에서 찬물을 만나, 다시 액화된다. /박순욱 기자

임진욱 대표는 “양조는 곧 과학이다”고 말한다. “전통누룩으로 술을 빚어야 하고, 그것도 나만의 누룩으로 술을 빚어야 진짜배기 전통술”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후발주자로 전통주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한국전통주연구소, 한국가양주연구소 같은 전통주 전문교육기관에서 술을 배우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독학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주류업계 원로의 가르침으로 술을 배웠다. 그는 “양조장을 지으면서 시스템 구축에 최우선을 두었다”며 “(맛이)일관성 있는 술, 깔끔한 증류주를 만드는 것이 내 철학”이라고 말했다.

증류를 끝낸 술은 알코올 도수가 평균 50도가 넘는다. 물을 일부 넣어서 원하는 도수로 내려야 한다. 이 과정을 ‘가수’라고 하는데, 독도소주의 가수용 물은 남다르다. 울릉도 해양 심층수 성분을 압축한 미네랄 농축수를 가수용 물로 쓰기 때문에 여느 소주보다도 마그네슘, 망간 같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임 대표는 “독도소주라는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울릉도 해저 1500m 심층수를 추출해 농축시킨 액상 미네랄을 정밀정수한 물과 섞어 가수용 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압증류한 원액은 별도의 숙성을 거치지 않고 2~3주 후 곧바로 병입한다. 상압증류한 원액은 장기간 숙성이 필요한 것과 대조적으로 감압증류 원액은 증류 직후에 바로 마셔도 될 만큼 부드럽기 때문이다. 최근 감압증류 소주가 쏟아지는 이유 역시 별도의 숙성(숙성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고, 하더라도 6개월을 대개 넘기지 않는다) 없이 곧바로 병입해, 상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숙성은 곧 시간이고, 시간은 결국 돈이다. 숙성에 필요한 공간도 필요없고,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감압증류의 매력이다.

독도소주는 최근 미국에 3만2,104병을 수출했다. 미국 현지 사정(알코올 도수에 따른 과세)에 맞추어, 기존 27도 제품 대신 24도로 알코올 도수를 조금 내린 제품으로 포장했다. 첫 수출 물량 3만병은 많다고도 볼 수 있고, 작다고도 볼 수 있는 물량이다.

그러나, 수출에 거는 임 대표의 목표치는 크다. 생산 전체 물량의 30~50%를 수출로 돌린다는 계획이다. 임 대표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독도를 해외에 알리려면, 독도 우편번호를 표기한 독도소주를 한병이라도 더 수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현실과도 직접 연관돼 있다. 독도소주는 주세의 50%를 감면받을 수 있는 지역특산주인데, 판매량이 일정량 넘어가면 50% 감면 혜택이 없어진다. 때문에 무작정 국내에 많이 팔기보다는 해외 물량을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글로벌 술시장에 먹힐 정도의 품질을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임 대표는 조만간 오크통을 들여와 오크 숙성 독도소주도 준비하고 있다. 위스키처럼 오크 숙성 증류주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입맛을 겨냥한 전략이다.

다만, 장기 숙성이 필요하지 않은 감압증류로 내린 부드러운 원액을 오크통에 수년간 숙성시켰을 때 과연, 국내는 물론 해외 애주가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오크 숙성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임 대표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오크 숙성 증류주가 아직 흔지 않은 국내는 몰라도, 10년, 20년 이상 숙성시킨 프리미엄 위스키가 드물지 않은 글로벌 주류시장에서 2~3년 정도 숙성한 제품으로는 존재감을 과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도소주가 하루빨리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독도 알리기 전령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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