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무분별한 불소 거부증 극복해야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1. 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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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불산가스 피해지역 내 포도밭 포도 잎이 누렇게 변해 말라 죽어 있다. 연합뉴스 제공

‘불소’에 대한 거부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불소가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2012년 경북 구미 소재 한 공장에서 탱크로리에 실려있던 불산(불화수소)이 대량으로 누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이다.

충치(치아 우식증) 예방을 위한 ‘수돗물 불소 농도 조정 사업’은 시행 38년 만에 완전히 중단됐다. 건설업체도 토양의 불소 오염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모두 불소에 대한 소비자의 도를 넘는 거부감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플로오르(불소). 위키미디어 제공

●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하는 불소

‘불소’(弗素)는 원자번호 9번의 할로젠 원소인 ‘플루오린’(fluorine)의 일본식 이름이다. 유럽에서는 ‘플루오르’(fluor)라고 부르고 중국과 대만에서는 ‘氟’이라는 원소기호를 사용한다. 불소는 우리 건강에 꼭 필요한 영양 성분은 아니다. 그러나 불소가 치아 표면의 에나멜을 단단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순수한 상태의 이원자 분자인 불소(F2)는 연한 황록색의 기체로 인체에 강한 독성과 부식성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맹독성의 불소는 자연 상태나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수없이 다양한 불소의 화합물이 모두 독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불소가 인체에 암을 일으키고,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고, 지능지수(IQ)를 떨어뜨린다는 언론과 인터넷의 주장은 억지 ‘괴담’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탄소의 화합물인 일산화탄소와 복어 독이 인체에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탄소’를 독성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불소는 지구상에서 13번째로 흔한 원소다. 불소는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흙 속에서 불소의 평균 농도는 600ppm 수준이다. 물론 불소 분포의 지역별 편차는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는 평균 농도가 229.6㎎/㎏으로 알려져 있다. 불소는 주로 형석(fluorite, CaF2)‧인회석(fluorapatite, Ca5(PO4)3F)‧빙정석(cryolite, Na3AlF6)과 같은 광물에 들어 있다. 토파즈와 같은 보석은 물론 화강암·운모 등에도 불순물로 들어 있다. 바닷물에도 1.3ppm 수준의 불소가 있고 심지어 우리 몸에도 소량의 불소가 들어 있다.

불소가 포함된 형석은 16세기경부터 철의 제련에 사용했다. 형석이 철광석의 녹는 점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이나 일상생활에서 불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였다. 광물에서 불소를 분리해서 산업이나 일상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강한 황산으로 녹여내는 등의 어려운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불소는 철‧알루미늄의 생산은 물론 냉매‧세정제‧섬유(고어텍스)‧의약품‧농약 등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2012년 울산 불소화합물 공장 화재 현장. 연합뉴스 제공

● 불소 활용의 부작용

자연 상태의 광물에 들어 있는 ‘자연 유래’ 불소는 화학적으로 지극히 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체 위해성이나 환경 문제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자연 상태의 바닷물이나 민물에 들어있는 낮은 농도의 불소 이온(F-)에 의한 인체 위해성이나 생태계 교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산업이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불소 화합물에 의한 오염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산업 현장에서의 누출이나 일상생활에서 함부로 버린 불소 화합물에 의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불소 화합물의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그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소의 부작용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냉매(refrigerant)로 사용하는 CFC(염화플루오린화탄소) 때문이었다. 1928년 미국의 듀퐁이 '프레온(Freon)'이라는 상품명으로 처음 개발한 CFC는 가정과 사무실에서 편리하고 안전한 냉장고‧에어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프레온은 인체와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무색‧무미‧무취의 기적과도 같은 물질이었다.

그러나 냉장고‧에어컨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함부로 배출한 CFC가 분해되지 않은 채로 대기 중에 떠돌다가 성층권으로 올라가서 햇빛의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어 ‘오존 구멍’을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4년에 그런 사실을 처음 밝혀낸 미국의 화학자 몰리나와 셔우드, 그리고 독일의 화학자 크루첸은 199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결국 1987년에는 CFC의 생산을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체결되었다. CFC는 2010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최근에는 과불화화합물(PFAS, poly- and perfluoalkyl substance)의 인체 유해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프레온과 달리 PFAS는 특정한 화합물의 이름이 아니다. 과불화 메틸기(-CF3) 또는 과불화 메틸렌기(-CF2)를 가지고 있는 모든 화합물을 일컫는 이름이다. 1938년 듀퐁이 개발한 ‘테프론’(Teflon)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600만 종이 넘는 PFAS가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40년대부터 안전한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던 PFAS가 전 지구적 생태 환경에서 검출되고 있다. 특히 먹는 물에서도 PFAS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있는 형편이다.  

PFAS는 강한 방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프라이팬과 같은 조리기구나 종이컵의 코팅제, 자외선 차단제와 같은 화장품, 콘텍트렌즈 세척제, 전자부품의 난연제, 반도체 공정에서의 냉매‧세척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PFAS는 지구 환경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PFAS를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로 분류하기도 한다. 심지어 ‘영속적 화합물’(forever chemical)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불소와 탄소의 결합이 매우 강해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대부분의 PFAS는 인체나 환경에 무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4,735종을 독성화학물질 목록에 올려두고 있다.

더욱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23년 과불화옥테인산(PFOA)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PFOA는 화장품‧샴푸‧종이컵‧전자제품‧소파‧건축마감재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대체물질의 개발이 시급한 형편이다. 특히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반도체 산업 등에서 PFAS의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재개되어야 한다.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불소의 현명한 활용과 적정한 규제

그렇다고 산업 현장이나 일상생활에서 ‘불소’를 완전히 퇴출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불소 화합물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무차별적인 ‘불소 거부증’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우선 2019년부터 중단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서둘러 재개해야 한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1981년 진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수돗물에 0.8ppm 이하의 불소 이온을 넣으면 어린아이들의 충치(치아 우식증) 예방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적극적인 권고도 있었다.

그러나 치과의사협회의 적극적인 노역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쉽지 않았다. 2000년에 ‘수돗물 불소 농도 조정 사업’을 법제화한 ‘구강보건법’이 제정되었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처음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2001년에도 전국 31개 지역 36개 정수장에서 불소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의 수혜인구는 443만 명으로 총인구 중 9.4%에 지나지 않았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였다. 실제로 1995년 5월에는 ‘월간 말’이라는 잡지에 영남대의 영문학자가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원자탄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등장했다는 엉터리 외신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불소가 암(뼈암·방광암)을 일으키고, 면역 체계를 파괴하고, 노화를 촉진하고, 지능(IQ)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명백한 엉터리 ‘괴담’이 소비자들에게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2019년 영월을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보건복지부가 엉터리 괴담에 백기를 들어버렸고 애써 만들어 놓은 ‘구강보건법’은 허울뿐인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치과의사협회도 손을 놓아버렸다.

그렇다고 충치 예방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물론 상황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인구가 크게 즐어든 것은 사실이다. 불소를 첨가한 생수를 개발하는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와 치과의사협회가 구강보건법으로 법제화된 수돗물 불소 농도 조정 사업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환경부가 관리하고 있는 토양환경보전법에도 문제가 있다. 환경부가 2002년 ‘불소’를 토양오염 물질로 지정한 진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토양에 들어있는 불소는 화학적 반응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상태다. 환경부가 규제해야 하는 것은 화학적으로 안정한 자연 유래 불소가 아니라 산업단지에서 불소의 불법적인 누출 사고로 발생한 토양 오염이다. 

흙에 들어있는 불소가 인체에 피해를 주게 될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거이다. 오히려 불소에 의한 수질 오염을 걱정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토양의 ‘우려기준’을 낮추기만 하면 국민 안전이 지켜진다고 우기는 환경전문가의 억지도 볼썽사나운 것이다. 불소에 대한 무분별한 거부증에서 시작된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혜하는 것이 마땅하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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