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컬 100] "100km 왜 뛰냐구요? 고통은 몇 시간, 기쁨은 평생"

서현우 2024. 1. 1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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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트랜스 란타우 100km 한국여성 중 1위 김지원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궁금해서 일단 뛰어봤다. 홍콩에서 100km를 뛰고 온 사람의 경험을 어느 정도 공감하려면 비슷한 체험을 만들어 둘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막상 뛰려니 집 주변에 뛸 곳도 마땅치 않은 것 같아 연회원권을 끊어 놓고 한참을 가지 않았던 헬스장을 찾았다. 러닝머신 위에 올라 가볍게 몸을 풀고자 걷다가 마음이 결연해진 것 같아 곧 속도를 쭉 올렸다.

생각보다 뛸 만했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뛰니 지루하지도 않고 기분도 상쾌했다. 그런데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점점 뛰는 것이 싫어졌다. 뛰는 자신을 몸이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유들이 생겼다. 유튜브 프리미엄조차 결제하지 못하는 형편인 탓에 광고 스킵을 누르려고, 이어폰을 타고 들리는 '카톡'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땀방울이 하필이면 안경 렌즈에 닿아서 닦으려고, 무릎이나 발목이 괜히 시린 것 같아서 등의 사유로 뛰던 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제법 숨도 가쁘고 몸도 뻐근해 충분히 뛰고, 걷고 반복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계기판을 쳐다봤다. 그런데 고작 7km.

7km가 이런데 대체 어떻게 하면 100km를 달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쳐야 100km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있는 걸까? '멍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원씨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트레일러닝에서 가장 필요한 재능은 정신력입니다. 아무리 몸이 좋아도 정신력이 약하면 중간에 놓아버리고 포기하지만, 절뚝거리면서도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체력이 남들에 비해 조금 약하면 그만큼 천천히 가면 그만입니다. 트레일러닝은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1초 전의 나보다 한 걸음 더 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입문 1년 만에 대회 입상

코로나 이후 급격히 늘어난 달리기 인구. 도심 속에서 알음알음 달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산으로 향하고 있다. 트레일러닝이다. 김지원씨도 이 물결 속에 있다. 이제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지 단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입문하자마자 준수한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2023년 열린 성남누비길 트레일러닝 대회 40km 부문 5위, 거제 100K 50km 부문 4위, 금수산 트레일러닝 대회 21km 부문 3위 등이다.

"완전 바닥부터 운동한 건 아니에요. 사이클을 10년 정도 탔어요. 훈련법이나 사용하는 근육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하체를 쓴다는 점은 똑같죠."

사이클을 타던 그는 왜 트레일러닝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그는 스스로를 "도시 사람"이라고 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평생을 경기도와 서울에서만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동급생들이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곤 하는 걸 부러워했다. 친구들이 시골에 다녀온 후 들려주는 농촌 관련 일화들이나 자연 속 체험이 무척 흥미로웠다.

장수트레일레이스 38K 부문에 참가한 김지원씨. 사진 스카르파.

"도시에 살다 보니 자연에 대한 결핍과 동경이 계속 축적됐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지금 산에서 수십km를 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원래 달리기를 잘했다. 학창시절, 즉 초중고 전부 계주선수를 했다. 반에서 1~3등 안에는 꼭 들었다. 아버지 핏줄이 운동을 잘했다. 고모가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운동 재능을 만개하진 못했다. 비평준화시절이라 일찍부터 공부를 강박적으로 했다.

"원래는 국어를 제일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엔지니어 출신이라 그 영향을 받아서 공대로 진학했어요. 대학 강의를 듣는데 적성이 너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꿨죠. 마케팅이 정말 재밌었어요."

전공을 살려 백화점마케팅, 스포츠마케팅, 교육업 등에 종사했다. 그리고 현재는 자전거 의류 브랜드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다 보니 이를 살려서 업무에 접목시켰다. 제품도 직접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을 개선한 적도 있고, 브랜드 인플루언싱 시스템과 유튜브 콘텐츠도 촬영, 기획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라토나 들레스 돌로미티 대회에 출전했을 때 주변 산길을 걸었다. 사진 이종현 작가.

'추월'당해 사이클 입문

"자전거 브랜드에 입사하기 전에 원래 사이클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었어요."

김씨가 숨겨져 있던 운동 재능을 재발견한 계기는 꽤 독특하다. 대학생 때 미니벨로를 타고 한강 라이딩을 나갔다. 그런데 누군가 옆을 빠르게 추월하며 지나갔다. 드롭바를 쥐고 앞으로 몸을 푹 숙인 자세, 로드바이크였다.

"원래 성격이 승부욕이 있는 스타일이라 그걸 보니 바로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로드바이크를 샀죠. 타다 보니깐 점점 기량이 좋아져서 대회도 경험 삼아 출전해 봤어요. 그리고 속으로 계속 '기왕이면'이라고 되뇌었죠. 기왕이면 조금 더 잘해보자, 타는 김에 더 잘해보자…. 그렇게 욕심이 조금씩 쌓이자 아마추어 사이클 팀에 들어갔고, 입상도 노리게 됐죠."

10여 년에 걸쳐 수십 번의 국내대회에 출전했다. 100km 내외의 장거리 대회인 그란폰도부터 10km 오르막을 타는 힐크라임 대회 등 가리지 않았다. 그는 "체중이 가벼워서 다운힐이나 평지 주행은 조금 불리하지만, 오르막은 강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7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란폰도인 마라토나 들레스 돌로미티입니다. 국내 한 사이클 대회 우승 경품이 바로 이 마라토나 돌로미티 대회 출전 전액 지원이었는데 제가 우승했거든요. 여기서 최장거리인 마라토나 코스 108km에 출전해서 한국인 여성 최초로 완주했죠. 상승고도가 자그마치 4,300m입니다. 한국에선 유사한 환경이 없어서 훈련하기가 어려워요. 평지가 없이 무조건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고, 업다운이 거듭되지 않고 매우 긴 오르막과 또 마찬가지로 긴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거든요. 오르막이 10km 이상이에요. 상상이 되세요? 차로 가도 힘들어요."

홍콩 트랜스 란타우 100K 출발 직전.

돌로미티의 멋진 풍광에서 즐기는 라이딩은 너무나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해마다 지인들을 모아 '팀코리아'를 만들어 마라토나 들레스 돌로미티에 출전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만 제외하곤 2022년까지 이어가고 있다.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인가요?"

"마리아 캐닝스 할머니입니다. 대회 전까지 소셜라이딩이라고 해서 출전 선수들이 한데 모여서 돌로미티 곳곳을 다녀요. 이때 선두에서 이끈 분이 캐닝스입니다. 투르 드 프랑스 여성부 우승자 출신이고 서울올림픽도 출전했던 분으로 현재 70대예요. 지금은 은퇴하고 고향인 돌로미티에 살고 계시죠. 이분이 내리막 코스를 내려가는데 백발을 휘날리면서 쏜살같이, 정정하게 체중이동하면서 가더라고요. 진짜 멋있었어요. 그걸 본 이후로 제 롤모델이 됐죠."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트레일러닝 시작

지금은 트레일러닝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 사이클에 매진하고 있진 못하다. 직장인이니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데 두 운동을 다 하기는 힘들다. 물론 둘 다 하체를 사용하는 운동이지만 주력해야 하는 근력이나 트레이닝 방법이 조금 다르다.

"사이클을 시작한 계기가 남다른데 트레일러닝도 왜인지 그럴 것 같아요."

"정말 우연히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 대회 영상을 보고 입문했어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3개국을 뛰는 대회죠. 찾아본 것도 아니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영상을 가져와서 눈앞에 보여줬죠. 간택됐다고 할까요. 꼭 이 대회에 출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마라토나 들레스 돌로미티 대회에 출전한 김지원씨관악산둘레길은 김씨의 주 훈련장이다.

"원래 성격이 꽂히는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시군요."

"맞아요. 인생에는 다양한 분기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 코스에서 다른 코스로 연결되는 지점들이죠. 저는 그럴 때 생각을 오래 하지 않고 일단 몸을 밀어 넣는 편입니다."

하지만 UTMB는 일단 몸을 밀어 넣을 수 없는 대회다. 다시 말해 아무나 출전할 수 없다. 간택되어야 한다. UTMB 측에서 인정하는 일부 대회에 출전해 완주하면 '러닝스톤'이란 걸 받을 수 있는데 이를 갖고 응모하는 방식이다. 러닝스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첨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에는 트랜스제주 대회가 있어요. 50km 뛰고 2개의 러닝스톤을 얻을 수 있죠. 그리고 트랜스 란타우라고 홍콩에서 열리는 100km 대회도 있어요. 제가 최근 이 대회에 출전해서 한국인 여성 중 1위를 기록했죠. 그래서 지금까지 러닝스톤은 총 5개 모았어요. 이걸로 2024 UTMB 출전권을 노려볼 계획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성남누비길, 거제100K, 금수산 트레일러닝 대회 등 다양한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러닝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워낙 사이클로 몸이 잘 만들어진 상태였기에 상위권을 기록할 수 있었다.

"사이클도 그렇지만 트레일러닝도 극한스포츠입니다. 물론 재밌기는 하지만 정말 끔찍한 순간도 많잖아요. 그래도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잖아요. 항상 대회를 시작할 때면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그리고 도전해서 성공하면 이 의문이 해소되면서 큰 성취감을 얻죠. '이 정도까지 내가 해낼 수 있구나'란 감정은 정말 기뻐요. 이 과정에서 인내심과 의지력도 기를 수 있고요."

"정말 힘든 순간은 어떻게 이겨내나요? 부상을 입은 적은 없고요?"

"무조건 힘든 상황은 와요. 고비죠. 그럴 때면 끝은 무조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만 생각합니다. 고통은 몇 시간이지만 이걸 완주하면 기쁨은 몇 년, 평생에 걸쳐 유지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고통이 참아져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죠."

마라토나 들레스 돌로미티 대회에 출전한 김지원씨

걱정과 고민을 고통으로 치환

가장 힘들고, 인상 깊은 대회는 홍콩 트랜스 란타우를 꼽았다. 그에게는 첫 100km 대회였다. 100km부터는 이제 트레일러닝 앞에 '울트라'란 말이 붙는다. 그만큼 의미가 있고, 스스로 알을 한 번 깨야지만 완주할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국내에서 100km 도전을 먼저 해본 다음 해외대회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씨는 이를 거꾸로 한 것.

"첫 100km인데 대회 환경도 정말 극악이었어요. 홍콩 기후가 정말 너무 덥고, 너무 습해요. 그래서 같이 출전한 한국 주자 분들이 애를 먹었어요. 초겨울에서 운동하다가 갑자기 열대의 날씨에서 뛰려니 죽을 맛이죠. 그래서 중도포기한 분들도 꽤 있습니다."

김씨도 탈수 증상이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그는 "머리에서 솟아난 땀이 모자챙을 따라 방울방울 맺히더니 나중에는 폭포처럼 눈앞에 떨어져 내렸다"고 묘사했다. 그래도 최대한 물을 섭취하고, 영양 보충에도 신경을 썼다.

"저는 대회에서 한 번도 스틱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홍콩 대회에서는 스틱을 썼어요. 혹시 이 대회 출전에 관심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스틱을 사용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한국에 비해 계단 하나의 높이가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다리를 더 올려야 되고, 스틱이 없으면 그 데미지를 고스란히 무릎이 받게 되죠."

낙성대공원 인근 마을 골목길을 달리는 김지원씨.

"그런데 그렇게 뛸 때는 어떤 기분인가요?"

"산에서, 자연에서 달릴 때면 그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진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살면서 생각할 것도 많고, 걱정할 것도 많잖아요? 하지만 달릴 때면 그런 것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요. 그저 무념무상이 되죠. 현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여기선 고통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반갑다. 그는 "어떤 느낌이냐면, 마음 안에 들어차 있던 걱정과 고민이 고통으로 치환되는 감각"이라며 "그러니까 그 고통을 견뎌내는 만큼 걱정과 고민을 이겨내는 셈이다. 그래서 더욱 견디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념무상이라곤 했지만 사실 많은 생각을 하긴 해요. 특히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죠. 의지가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달려요. 이번 홍콩 대회는 남자친구가 서포터로 와줘서 CP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달렸죠. 또 제가 잘못했던 순간들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김씨의 트레일러닝 장비. 쥐를 방지하기 위해 파워젤 크램픽스를 먹고 프레스온 전해질 소금 알약을 챙긴다.

도착 직전이 가장 기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는 "도착하기 직전"을 꼽았다. 가령 100km 구간이라면 10km 정도 남았을 무렵이다. 김씨는 "이때가 제일 기쁘고 설렌다"고 설명했다. 실제 골인보다 골인이 눈앞에 확실히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더 가슴이 벅차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가장 조심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정을 억지로 억눌러요. 마음은 마구 달떠 있지만 그걸 그대로 놔둬서 흥분하면 다칠 수 있거든요."

"평상시에는 어떻게 운동하시나요?"

"직장인이라 평일에는 퇴근 후 러닝, 주말에는 산행이나 트레일러닝을 합니다. 주중에는 5~10km 정도 짧은 거리만 뛰어서 감각만 유지하고 주말에는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좀 더 길게 달리거나 산행하는 걸 선호해요. 제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관악산둘레길입니다. 한 바퀴 다 돌면 30km를 조금 넘는데다가 길도 너무 깔끔하지 않은 적절한 산길이라 트레일러닝 훈련하기 좋아요. 특히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만약 대회를 앞뒀다고 한다면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페이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몸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저강도로 운동합니다. 50km 대회라면 30km 정도를 완주하는 걸 목표로 뛰어요.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거에 주안점을 둬요. 그러다 대회가 3~4일 남으면 아예 푹 쉽니다. 스트레칭 정도만 하고 카보로딩이라고 해서 탄수화물을 계속 밀어 넣는 작업을 하죠. 그리고 대회 당일에는 페이스를 확 올려서 뜁니다. 그리고 버티는 거죠."

그는 정말 잘 버틴다. 북한산 일출산행을 갔다가 발목이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꺾인 적이 있다. 통증은 있는데 버틸 만해서 하산을 마치고 스스로 운전해서 집에 왔다. 그런데 통증이 영 묵직했다. 양말을 벗어보니 복숭아뼈가 거의 두 배 크기로 부어 있었다. 골절이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뼈가 부러졌는데 하산도 다하고 운전까지 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비닐봉지'가 최애장비인 이유

배낭은 가볍게 들고 다니는 편이다. 간단한 에너지바와 쥐를 방지하기 위해 먹는 파워젤 크램픽스, 프레스온사의 전해질 소금 알약 등을 챙긴다. 여기에 식수와 비상상황을 대비한 서바이벌 블랭킷과 물집을 대비한 옷핀과 밴드를 챙긴다.

"장비들 중 꼭 하나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챙기실 건가요?"

"비닐봉지요. 제가 백패킹도 하는데 좀 이름이 알려진 박지들 가보면 정말 기가 막혀요. 쓰레기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유명한 박지들 대부분이 막혔죠. 트레일러닝도 마찬가지예요. 러너들이 쓰레기 버리고 다니면 막힐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절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다녀요."

"산행과 트레일러닝을 둘 다 하시잖아요.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요?"

"선호도를 따지자면 그때그때 달라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보통 산행으로 다녀오죠. 아무래도 트레일러닝으로 가면 놓치는 풍경들이 많거든요. 왜냐하면 산에선 무조건 계속 땅을 보면서 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넘어질 수 있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요. 그게 좀 아쉽죠. 그래서 최근에는 분초를 다투는 대회에서도 가급적 몇 초라도 주변을 둘러보려고 해요. 가장 기록적으로 좋은 건 50km 내내 땅만 보는 거지만 그러면 너무 적은 경험밖에 남기지 못하죠."

관악산둘레길을 걷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트레일러닝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평소 가는 산을 조금 빠르게 가는 거죠. 오르막이나 평지는 걷고, 내리막은 살살 뛰어가시는 걸 추천 드려요. 자연스럽게 중력에 내 몸을 맡기는 느낌으로요. 그러면서 점점 거리는 늘려나가는 재미를 느껴 보시면 되죠."

"내리막을 뛰면 무릎에 안 좋을 수 있지 않나요?"

"발을 빨리빨리 떼고 보폭을 짧게 해서 체중을 양 무릎에 왔다갔다 빨리 옮겨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한 발에 오래 체중을 실으면 부하가 가는 시간이 길어져서 안 좋아요. 잔발을 밟으면 부하가 걸리는 시간이 짧아서 훨씬 무리가 덜하죠.

등산과 트레일러닝 사이에 어마어마한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끼시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두 개 사이에는 교집합이 있어요. 그 교집합 속에 무궁한 즐거움이 숨어 있으니 그걸 걷고 뛰며 찾아다니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덧 자유롭게 산을 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실 거예요."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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