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늘 푸른 나무처럼…“베푸는 삶 살 것”

황지원 기자 2024. 1.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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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20) 은퇴 후 산 사랑 더 깊어진 조연환 전 산림청장 <충남 금산>
공직생활 마치고 운명처럼 ‘금산’ 정착
행복한 귀촌에 고마운 마음 보답 고민
산림아카데미 세워 교육…1000명 배출
지역 발전 도모하는 ‘금산포럼’도 창립
지난해 ‘세계 인삼 수도 선포’에 큰 역할
조 전 청장은 2010년 한국산림아카데미재단을 설립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강연에 참여하며 임업인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100세 시대인 요즘 예순살에 은퇴하면 남은 4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많은 사람이 하는 고민이다. 조연환 전 산림청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귀농인으로서 살고 있다. 조 전 청장을 충남 금산군 남일면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퇴직하고 처음엔 고향인 충북 보은으로 귀농하려고 했습니다. 적당한 곳을 모색하던 중 지인 소개로 금산을 알게 됐죠.”

사방이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비단 산’이라는 뜻을 품은 금산(錦山)으로 오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곳에 2층짜리 집을 짓고 마당엔 잔디와 멋들어진 소나무를 심어 가꾼다. ‘녹우정(綠友亭)’이라는 작은 정자도 지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세월’과 ‘숲을 함께 가꿔온 벗들과 만나는 곳’을 의미한다. 정원 너머론 커다란 산이 우뚝 서 있다. 바로 앞에 흐르는 하천인 ‘봉황천’에서 이름을 따 ‘봉황산’으로 불렀다. 집 옆에 있는 661㎡(200평)짜리 텃밭에선 아내와 함께 고추·배추·파·상추·마늘 등 수십가지의 작물을 기른다. 그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쌀과 해산물을 제외하곤 모두 텃밭에서 나온다.

1948년 보은에서 태어난 조 전 청장은 보은농업고등학교 임과를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으로 산림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열여섯살 때부터 산림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셈이지만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제가 살던 곳 주변엔 보은농고밖에 없었어요. 청주나 대전으로 유학 갈 형편은 안돼서 농고에 갔죠. 임과를 택한 것도 장학금을 받기 쉬울 것 같아서였어요.”

은퇴 후 충남 금산에서 귀농 생활을 하는 조연환 전 산림청장. 산이 보이는 곳에 2층짜리 집을 짓고 앞마당엔 잔디와 나무를 심어 가꾼다.

임업에 거창한 꿈을 품었던 건 아니었지만 산과 나무는 그와 평생을 함께했다. 공직에 들어선 뒤 10여년이 지나 7급을 달게 됐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건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주말과 밤에는 책을 보며 기술고등고시 임업직에 도전해 수험 생활 2년 만에 합격했다. 1980년부턴 5급 공무원으로 산림청 업무를 시작해 2004년 7월 청장에 올랐다.

산림청장으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건 무엇일까? 조 전 청장은 국민에게 ‘백두대간’ 알린 것을 꼽았다.

“지금에야 모두가 백두대간을 알고 있지만 2000년대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대신 일제강점기 광물 수탈을 위해 일본이 조어한 ‘산맥’을 써왔죠. 산맥은 우리 실정과 맞지 않을뿐더러 전통적인 지리관을 외면한 개념입니다.”

그가 백두대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과장으로 있던 1995년이었다. 여러 고서를 찾아보며 백두대간을 공부했고 2003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데까지 힘썼다. 2005년 청장 재직 시절 법이 시행된 이후엔 백두대간 인근 지역을 찾아다니며 수백번 주민 간담회를 열고 ‘백두대간 보호지역’을 설정해나가기도 했다.

2006년 1월, 38년4개월간의 산림청 공직 생활을 마치고도 그는 여전히 산과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2010년 한국산림아카데미재단을 세워 산림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다. 1년 과정을 수료한 이들이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여름, 텃밭에서 참깨를 돌보는 조 전 청장.

“은퇴 후 시골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귀산촌은 아주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산나물이나 버섯을 한번 심어두면 몇년 동안 자라고 산에는 농약을 치지 못하니 여유를 즐길 수 있죠.”

이뿐 아니라 2021년엔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단체 ‘금산포럼’을 세웠다. 금산군민으로 이뤄진 회원 120여명은 매달 번갈아 가며 지역 발전안을 찾는 포럼과 금산 내 유적지를 둘러보는 행사를 연다. 지난해 열린 금산인삼축제에서 금산을 ‘세계 인삼 수도’로 선포한 것도 금산포럼의 제안이 반영된 결과였다.

“행복한 귀촌 생활을 하게 해준 금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갚을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 금산포럼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늘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나이가 들어도 당당하고 화려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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