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트로 시대유감?…이 뉴우스는 회빙환입니다

한겨레21 2024. 1. 1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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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청춘의 봄비][레트로 놀이] 복고 트렌드 인기 끌며 일상화, 영트로·할매니얼·레저렉션·헤리티지 등으로 분화… 과거가 현재 꾸며주는 ‘굿즈’로만 박제되진 않을까
롯데웰푸드는 2023년 12월 ‘부활! 롯데껌’ 캠페인을 시작하며 MZ세대 대표 배우 김아영을 모델로 채용해 레트로 콘셉트를 선보였다. 롯데웰푸드 제공

여전히 세상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굽는 냄새로 진동한다. 가수 서태지는 걸그룹 에스파(aespa)의 <시대유감>(1995년) 리메이크 소식으로 부활을 예고했고, 엠제트(MZ)세대 대표 배우 김아영이 엑스(X)세대의 패션뿐 아니라 서울 사투리를 흉내 내며 인기를 끌고, 편의점 매대에 놓인 식음료품의 포장지는 레트로 콘셉트가 아직도 팔팔히 기강을 잡고 있다. 복고 콘텐츠로 각광받던 2000~1980년대보다 훌쩍 역주행한 1960년대가 슈퍼루키로 부상하는 중이다.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오픈과 동시에 성지가 됐고, 아날로그 포토 부스는 1960대 유럽에서 사용하던 버전을 그대로 들여와 화제다. 현대자동차는 ‘포니의 시간’을 통해 최초 모델인 포니 개발과 출시 당시를 기록해 전시하고,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빈티지 가구 컬렉션을 복각했다. 

복고 인기 식지 않고 진화… ‘과거중독’ 풀이까지

레트로(Retro), 뉴트로(New-tro) 그리고 이제 영트로(Young-tro)까지. 복고가 트렌드로 꼽힌 지도 벌써 삼(三)탕째다. 이미 레트로는 음악·패션·영화·드라마·음식·게임 등 분야나 국경을 막론하고 스테디셀러 카테고리다. 스크런치(곱창머리끈)로 머리칼을 묶고 통 넓은 바지를 추켜올리며 줄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시티팝(City Pop·일본 거품경제 시대에 유행한 대중음악)을 듣는다고 딱히 레트로로 범벅된 스타일이라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5년 곡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한다고 밝힌 SM엔터테인먼트의 X. X 갈무리

일상화된 레트로는 오히려 전문화돼 뉴트로(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옛 세대의 콘텐츠를 참신하게 향유하는 현상으로, 영미권의 Fauxstalgia와 비슷한 개념), 영트로(10~30대가 주도하는 신복고 현상으로, 기성세대에는 생소한 소품이 복고의 이름으로 떠오르기도 함)뿐 아니라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약과 등 옛 세대의 간식을 선호하는 입맛), Y2K(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유행한 패션), 레저렉션(Resurrection·부활, 사라진 브랜드의 재출시), 헤리티지(Heritage·유산, 기업 전통을 활용하는 비즈니스) 등 신조어가 범람한다. 바야흐로 ‘엔(n)트로’의 시대다.

역시, 이미 레트로 현상에 대한 해석도 되풀이됐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레트로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던 텍스트도 재탕됐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레트로토피아>와 잉글랜드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 말이다. 각각 “분통 터질 정도로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에 내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향수에 빠진다거나,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는 진단이 곳곳에 동어 반복됐다. 이제 그들이 가늠한 “과거 중독”의 임계점은 갱신됐고, 이 글의 역할도 그 분석들을 넘는 것이다.

현재의 결과는 미래가 아닌 과거

엔트로는 역설적으로 현재가 너무 넘쳐나는 탓이다. 우리는 어떤 현실이든 4K 화질로 초연결될 수 있고, 실시간으로 증강되는 슬로모션(Slow Motion)이나 줌인(Zoom In)으로 초감각하며, 이것도 모자라 멀티태스킹으로 ‘엔’(n) 개의 현재를 거느린다. 폴더폰이 디지털 디톡스의 하나로 생명을 얻은 이유다.

이런 현재-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증상 중 하나는 ‘빨리 감기의 시대’인데, 이는 물리적으로 가속하는 일 이상이다. 쇼츠나 릴스처럼 숏폼 콘텐츠 유행의 핵심은 러닝타임이 짧은 것 자체가 아니라 ‘시간 가성비’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콘텐츠가 과연 시간을 들여 ‘러닝’할 가치가 있는지다. ‘유잼’ 선호보다 ‘노잼’ 기피가 크다. 그래서 굳이 기-승-전-결에서 ‘기’를 쌓지 않아도 재생하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선호한다.

네이버 자회사인 카메라 앱 스노우는 2023년 10월 ‘인공지능(AI) 이어북’ 콘텐츠를 출시했다. 이용자가 사진 8~12장을 입력하면 1990년대 미국 학생으로 구현해주는 서비스다. 스노우 제공

유튜브 내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초사실주의) 트렌드도 이 맥락에서 짚는 분석이 많다. 프랜차이즈 매장별 알바생(<사내뷰공업>)이나 남매(<숏박스>), 신도시 기혼 여성(<피식대학> ‘서준맘’) 등은 주위에서 쉽게 접해 기본 캐릭터나 관계 구도, 갈등 유형이 큰 틀에서 예상되기에 곧바로 ‘승-전-결’로 이어져도 매끄럽게 소비할 수 있으니까.

레트로 역시 시간 낭비의 불안을 줄여주는 콘텐츠다. 결말이 구면이기에 다시 찾는 것. 특정 과거를 직접 겪지 않더라도 회고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정규교육 과정이나 문화 곳곳에 녹아 있어 직간접으로 접하는 상징과 기호에 익숙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방송사마다 종영한 프로그램들을 업로드한 유튜브 채널이 있다. 문화방송(MBC)은 <옛드> <오분순삭> <올끌>(구 옛능), 한국방송(KBS)은 <드라마 클래식>, 에스비에스(SBS)는 <빽드> 등 상당수가 백만 구독자를 훌쩍 넘는데, 이미 저작권을 보유한 영상을 편집만 해서 내놓기에 가성비 높은 콘텐츠로 꼽힌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시청자를 학습시키는 수고가 절약되는 것. 지금 콘텐츠 소비자는 모든 정보를 꿰뚫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주인공과 닮았다.

양극화하는 과거의 상징, ‘올드머니’ 트렌드

한때 가수 지드래곤(GD)과 방송인 정형돈이 찾는 빈티지 패션의 메카로 유명했던 서울 동묘시장의 활기는 예전만 못하다. 이제 서울 성수동으로 향해야 한다, 지갑을 더 두툼히 하고서. 빈티지 의류가 그냥 중고인 구제와 희소성이 높은 중고인 빈티지로, 그러니까 저렴한 과거와 비싼 과거로 나뉘게 돼서다.

1960년대 유럽 감성으로 포토부스를 만든 ‘이터널로그’의 모습. 매일 100장 촬영이 끝나면 마감해, 오픈에 맞춰 줄을 서는 사람이 많다. 도우리 제공

2023년 패션계를 점령한 키워드는 ‘올드머니’(Old Money)다. 순식간에 번 돈으로 각종 명품을 걸치면서 부를 과시하는 영머니(Young Money)와 구별해, 대대손손 물려받은 재산 덕에 굳이 로고플레이(Logo Play·브랜드 로고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디자인) 연출 등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부티가 나는 스타일을 뜻한다. ‘시간이 금’이라는 자본주의 구호야 워낙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과거가 더 순도 높다는 가치판단이 떠오른 신호다. 자본주의식 상대성이론이다. 졸부와 다른 ‘찐부자’를 추앙하듯 상품도 ‘찐과거’를 따지게 됐다. 레트로 중에서도 헤리티지 마케팅이 떠오른 이유다.

식품기업 롯데제과가 과거에 지웠던 기린(KIRIN) 로고를 되살리고, 현대자동차가 ‘포니의 시간’이라며 전통을 과시하며, 서점 교보문고의 문구 브랜드 핫트랙스가 그 전신인 문보장(文寶藏)을 자랑스레 론칭했다. 특히 문보장의 카피라이팅에서 헤리티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문구의 숨겨진 스토리를 발견하고 문구를 쓴다는 것의 가치를 오롯이 느끼며 영감과 호기심을 나누는 공간.” 여기 숨겨진 뜻은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가 그 기능은 기본이고 디자인, 콘셉트, 각종 마케팅 기법, 인플루언서의 추천만으로는 불충분해졌다는 거다. 이제 미래 경쟁력의 원천은 과거다. 기업 중에는 제품과 모델에 대한 스케치와 샘플, 도안이나 육성 자료 등이 저장된 아카이브 구축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거나 전문 아카이비스트를 고용하는 일도 많아진다고 한다. 역으로 전통적인 문화유산(헤리티지) 관리 기관에서 문화상품 브랜드를 출시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한국문화재단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각각 운영 중인 ‘K-헤리티지’와 ‘뮷즈’가 그렇다.

당연히 유서 깊은 아우라는 아무나 갖추거나 모방할 수 없지만, 특히 희귀해지려면 ‘현재’가 빨리 그리고 많이 죽어야 한다. 현대인인데도 좇아가기 숨찬 현재의 트렌드와 정보, 숙련보다 업데이트가 미덕이 되는 문화, 정치권조차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아엎는 공약과 정책, 예산 속에서 시간 명맥은 자꾸 끊어질 수밖에 없다. 엔트로에 붙은 도돌이표에는 현재에 대한 불신이 찍혀 있다.

교보문고의 문구 브랜드 핫트랙스는 2023년 여름 문구 편집숍 ‘문보장’을 론칭했다. 1991년 만든 ‘교보문보장’을 전신으로 만든 브랜드다. 도우리 제공

‘시간-젠트리피케이션’ 증상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의 관계는 ‘얼굴 바꾸기’(Face Swap) 앱인 양 손쉽게 갈아 끼우는 것이 됐다. 향수라는, 공동체라는 실뭉치에 푹 적신 무거운 감정보단 개인화된 ‘감성’으로 음미하려 한다. 엔트로 마니아는 자아를 꾸며줄 정체성으로서 시간-필터를 찾아 헤맨다. 물론 이렇게 과거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참조 삼는 ‘레트로 플레이’ 자체는 흥미롭다. 하지만 돌아보아야 할 풍경이 있다.

<텔 미>(Tell Me)는 이제 원더걸스가 아닌 뉴진스가 부른다(2022 가요대전). 과거를 부른다고 ‘진짜 과거’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점점 어색해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원더걸스도 뉴진스처럼 복고 콘셉트로 국민 아이돌 자리를 꿰찼다.) 트와이스가 <톡 댓 톡>(Talk that Talk) 티저 영상을 공개했을 때, Y2K나 사이버 펑크 등이 혼합된 스타일을 두고 일각에서 “뉴진스를 따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작 뉴진스 멤버들은 모두 2000년 이후 출생으로 Y2K 시대를 진짜 겪지 않았고, 트와이스의 멤버들이 진짜 당사자라는 점에서 엔(n)트로에서 갈수록 환영받는 건 과거 없는 과거처럼 보인다.

문방구와 ‘○○상회’들은 멸종 직전이지만 소품숍의 콘셉트로는 잘 팔린다. 서울 을지로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위기에 놓였지만, 특정 기업의 ‘을지로체’라는 선전 도구로 전유됐다(최호랑 디자인역사·문화연구자). 이상·김소월·윤동주는 ‘북퍼퓸’(Book Perfume·책에 뿌리는 향수)으로 소비된다. 역사는 브랜드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공통 유산은 개인이 소유할 굿즈로만 축소되는 것 아닐까? 엔트로가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건 시간-젠트리피케이션의 증상이지는 않을까? 과거가 소외된 과거는 없는지, 있다면 규명하고 애도하는 것이 충분한지도 함께 유념할 일이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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