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혼자가 좋아”

강경희 기자 2024. 1. 1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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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가 세계 38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가 “집에 홀로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문항에서는 세계 1위를,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웃는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자녀·손주를 가르치며 성취감을 느낀다”는 문항에서는 세계 꼴찌를 기록했다고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국가들보다 한국인이 혼자 있기를 더 원한다는 이 결과는 충격이다. 조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듯하다. “지금 내 밥상머리에는/.../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공광규의 시 ‘얼굴 반찬’) 가족 간 사랑을 행복의 원천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다른 풍경도 많아졌다. “연말에 가족이 방문했다. 가족이지만 혼자 사는 집에 누군가 온다니 갑자기 신경이 쓰였다. 1인 가구 N년 차가 되니 가족은 손님이 되었다. 혼자 살 때보다 잠을 더 일찍 잤고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청년 세대의 블로그 글이다. 1인 가구 750만 중에 20대 비중이 가장 높다. 진학과 구직을 위해 상경한 청년 세대로 인해 인구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산다. 작년 추석 연휴에 셋 중 하나만 귀성했다. 절반 이상이 명절에 부모와 친척 보러 고향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거나 여행 떠나는 쪽을 택했다. 한 데이터 분석가는 우리 사회를 가리켜 ‘핵가족’을 넘어선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표현한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안 들어맞는 가족도 많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가족과 저녁 먹는 청소년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한국은 성과주의 과잉의 ‘피로 사회’다. 부모 세대의 생존 불안이 자녀 양육에 그대로 투사돼 아이들이 일찍부터 집 밖으로 내몰린다.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과열 경쟁에 시달린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OECD 최하위, 청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부모된 도리, 자식된 도리 등 강한 가족주의가 되레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면서 사회 한편에서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심리가 빚어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가족치료학자 머레이 보웬은 “가족은 하나의 감정 덩어리”라고 했다. 감정적으로 쉽게 전염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가족 관계에는 각자의 경계를 인정해주는 ‘자아 분화’도 필요하다고 한다. 전통적 가족주의 대신 느슨하면서도 오래가는 새로운 가족애가 필요한 시대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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