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사무관 74%, 개인 용무 보고는 ‘야근했다’ 수당 챙겨

김경필 기자 2024. 1. 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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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산하 기관 인력 파견받아 잡일 시키는 ‘갑질’

금융위원회 사무관(5급) 74%가 개인적인 일을 보고도 초과 근무를 한 것으로 꾸며 수당을 챙긴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금융위는 금융위 감독을 받는 민간 기관들로부터 직원을 불법 파견받아 공무원 일을 시키다가 적발됐다.

16일 감사원이 공개한 금융위 정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3년간 금융위 사무관 182명 중 135명(74.2%)이 초과 근무 수당을 부정 수령했다. 부정 수령은 2365차례 이상 벌어졌고, 부정 수령액은 4662만원이었다. 100만원 넘게 부정 수령을 한 사무관은 10명이었고, 30차례 이상 부정 수령을 한 사무관은 28명이었다.

대다수는 초과 근무 시간을 전산망에 입력할 때 개인 용무를 본 시간을 제외하지 않고 입력하는 방식으로 수당을 챙겼다. A사무관은 2022년 12월 오후 6시 30분쯤 퇴근하고 B사무관 등 동료들과 함께 금융위 인근에서 식사와 음주를 했다. 그러고는 오후 10시 30분쯤 금융위로 가 ‘잔여 업무’를 오후 6시부터 4시간30분 넘게 한 것으로 입력하고 귀가했다. B사무관은 인근에서 2차로 술을 마신 뒤 오후 11시 50분쯤 금융위로 가 자정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B사무관은 이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0시 6분까지 6시간 6분간 ‘잔업’을 한 것으로 입력하고, 업무용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C사무관은 2020년 9월 어느 토요일에 급히 할 일이 없는데도 금융위에 들러, 오전 8시 44분에 ‘출근’했다고 입력하고 곧바로 나갔다. 그러고는 4시간 45분간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 30분쯤 금융위로 돌아와 오후 1시 34분까지 4시간 50분간 ‘잔여 업무’를 했다고 입력했다. D사무관은 지방선거로 임시공휴일이었던 2022년 6월 1일 오전 9시 21분 금융위로 출근했다가 24분 만에 나가서 전직 금융위 직원과 함께 브런치를 먹는 등 8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오후 5시 40분에 금융위로 돌아와 8시간 넘게 “현장 소통반 건의사항 검토”라는 활동을 했다고 입력하고 귀가했다.

한 사무관은 3년간 초과 근무를 했다고 입력한 시간 540시간14분 중에서 206시간21분(38.2%)이 개인 용무를 본 시간이었다. 이 사무관이 받은 초과 근무 수당 761만원 중 306만원(40.2%)이 부정 수령한 것이었다.

정부의 공무원 징계 기준에 따르면, 초과 근무 수당을 100만원 이상 부정 수령한 공무원은 감봉 이상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 부정 수령 정도가 심하거나 고의적인 경우엔 강등, 해임 또는 파면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금융위는 2021년 말 자체 점검을 통해 사무관 7명이 초과 근무 수당을 부정 수령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이들에게 아무 징계도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주의·경고조차 받지 않았다. 2명은 이듬해 초 서기관(4급)으로 승진했고, 다른 2명은 이듬해 말 금융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금융위가 사무관들의 수당 부정 수령을 방치한 탓에 부당 수령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감사원은 “금융위와 달리, 행정안전부 등 다른 기관들은 초과 근무 수당 부정 수령 적발 시 중징계 등으로 엄격하게 조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금융위에 “수당 부정 수령 등 소속 공무원의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도 온정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를 줬다. 또 금융위에 부정 수령을 한 사무관들에 대해 징계 규정에 따라 징계하라고 통보했다.

금융위가 ‘갑’으로서 ‘을’의 위치에 놓인 민간 기관들로부터 인력을 비공식적으로 파견받아 부려온 사실도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다. 감사원이 조사해 보니, 금융위는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금융감독원, 금융결제원, 금융투자협회,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20개 기관으로부터 44명을 비공식적으로 파견받아 금융위 일을 하게 했다.

대다수는 금융위에서 공무원들의 지시를 받아 문서 작성, 자료 정리 등의 보조 업무를 했다. 일부는 금융위원장이 행사에서 쓸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를 작성하는 일까지 떠맡았다. 국민신문고로 들어온 민원의 처리, 과태료·과징금 부과 처분, 회계법인 인·허가 업무 등 금융위 공무원이 해야 할 일까지 떠맡은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인건비는 원 소속 기관이 부담했다.

감사원은 금융위가 2017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민간 기관으로부터 329명을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파견받아 일을 시켰고, 이들의 인건비 344억원을 원 소속 기관이 부담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금융위 같은 중앙부처가 산하기관 등으로부터 인력을 비공식적으로 파견받는 것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한 ‘갑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금융위는 “국정 과제 등 중요·긴급 현안을 민간 기관과 공동 수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관과 구두 협의를 통해 파견 의사가 있는 경우에만 비공식 파견을 받았던 것”이라며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일인 만큼 특정인에게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다”고 감사원에 답했다. 금융위는 또 “모든 파견 직위에 대한 직무 분석을 실시해 불필요한 파견 직위의 감축을 추진하고, 단순 행정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은 금융위에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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