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독서 길잡이로 삼아볼까…신작 에세이 3권3색

김용래 2024. 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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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듣는 사람', 은유 '해방의 밤', 이기주 '보편의 단어'
[난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새해 첫 달, 독서의 방향을 잡지 못해 고민인 독자라면 시·소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수 있는 에세이는 어떨까.

읽고 또 읽어도 닳지 않는 고전의 세계를 안내하는 시인의 경쾌한 문장, 편견과 억압을 깨는 삶과 현실에 밀착한 글쓰기의 가치, 일상 속 평범한 단어를 매개로 천천히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개성 강한 산문집들이 독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신작 산문집은 박연준 시인의 '듣는 사람'(난다)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섬세한 심미안으로 읽은 서른아홉 권의 고전에 관한 이야기다.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의 고전에 대해 말하는 책이지만 글이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저자에 따르면 고전이란 "해석으로 탕진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살아남은 책"이다. 고전은 또한 "읽고 또 읽어도 닳지 않는 책,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도 소문을 등지고 커다래지는 책"이기도 하다.

혼자 숨어 읽고 싶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사유와 문장으로 쓰인 장 그르니에의 '섬', 저자가 사랑의 복판에서 길을 잃고 신음했을 적에 읽고 또 읽었던 사랑의 경전과 같았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침묵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해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등 2019~2021년 일간지에 '다시 보다, 고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저자가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책은 이태준(1904~?)의 산문 '무서록'이다. 손바닥 크기의 작고 얇은 책이지만 문장이 빼어나고 사유가 그윽하며 펼치는 곳마다 머물러보고 싶은 '고수의 맛'이 가득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시시콜콜하게 살아가는 일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삶이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방의 밤'(창비)은 르포,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 은유의 신작 산문집이다.

저자가 관심 있게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박연준 시인의 '듣는 사람'과 일맥상통하지만 결은 상당히 다르다. '듣는 사람'이 책, 특히 고전이 가진 미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정(靜)적인 책이라면, '해방의 밤'은 현실 참여적이고 동(動)적인 에세이다.

은유 작가는 책이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라고 말한다. 독자, 즉 읽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고정된 생각과 편견을 하나씩 깨뜨리며 자유로워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에 관한 글에선 사랑이 쉽게 정의되고 가볍게 소비되는 세태를 경계하면서 진정한 타자 체험의 기회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바디우의)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거대한 왜곡'이라는 말은 우리를 사랑의 대인배로 만들어줄 멋진 문장 같아요."(67쪽)

작가는 이외에도 리베카 솔닛, 아니 에르노, 켄 로치 감독, 루쉰, 최승자, 아룬다티 로이 등 자신이 깊이 읽은 책이나 영화를 매개로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을 옥죄는 조건들에 관한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이런 책들을 그는 '나를 살린 책들'이라고 했다.

제목 '해방의 밤'은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시간인 밤이 바로 사유가 시작되고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정했다고 한다.

[말글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편의 단어'(말글터)는 에세이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등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다.

언어에 깃든 숨겨진 의미와 관계망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전작들처럼, 이번에도 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쓰는 평범한 단어들의 의미를 파고들어 삶을 천천히 돌아보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삶의 무게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날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 곁에 있는 익숙한 것들이다. 가령, 일상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보편의 단어야말로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위로'라는 단어를 말하며 저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인에게 격려와 응원을 전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런 이들이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로와 응원 대신에 '매운맛 잔소리'를 쏟아내며 대중의 각성과 분발을 독려하는 전문가들이 추앙받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세태를 지적하며 "우린 타인을 내려다보면서 위로할 수 없다. 위로의 언어는 평평한 곳에서만 굴러간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선 무턱대고 따뜻한 말을 쏟아내기 전에 상대와 마음의 높이부터 맞춰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 듣는 사람 = 박연준 지음. 난다. 364쪽.

▲ 해방의 밤 = 은유 지음. 창비. 260쪽.

▲ 보편의 단어 = 이기주 지음. 말글터. 288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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