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3] 눈 위를 걷는 마음

교사 김혜인 2024. 1.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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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고등학교 교사 김혜인이 발달 지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교사 김혜인]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끝내 눈물이 났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문화센터에 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영유아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친한 아기 엄마들을 따라 강좌를 신청했다. 여러 강좌가 있었는데 모두 주 1회 40분 내외이고 내용도 유사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오감 놀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게 발달에 도움이 되어서이겠다.

문화센터에서 본 아이들은 엄마 무릎에 잘 앉아 있고 강사 말과 행동에 가만히 주목할 줄 알았다. 귀여운 옷으로 갈아입고 병아리콩, 미역, 천사채 등을 만지며 노는 촉감 놀이에 주저함이 없었다. 간혹 울기도 했지만 금방 다시 놀곤 했다.

내 아이는 달랐다. 옷을 갈아 입히려 하면 울기 시작했다. 모자나 머리띠는 하자마자 던져버렸다. 촉감 놀이는 아예 하지도 못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미역은 쳐다보기도 싫어했다.

40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에서 30분은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강사는 매번 아이가 졸린가 봐요, 배고픈가 봐요 위로했지만 아이는 항상 잠을 잘 자고 배를 채운 뒤였다. 그렇게 3개월 정도 꾸역꾸역 참여했지만 아이는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마지막 수업이 되었던 그날, 다른 아이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동안 내 아이는 아예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다. 조금만 참여를 시도해도 자지러지며 울었다. 혼자 교실 구석을 기어다니며 그제야 편안해 했다. 아이와 나는 수업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지만 그날따라 왠지 눈물이 났다.

문화센터 수업만이 아니었다. 무엇 하나 순조롭게 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모유 수유를 할 때 아이가 너무 울어서 분유로 바꿨다. 초반엔 괜찮았는데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유식 진행도 잘 되지 않았다. 씻기고 로션을 발라 줄 때도 울었다. 마사지를 해주며 아이와 교감하는 건 불가능했다. 비눗방울도 거품 놀이도 싫어했다.

병원에서 발달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알게 됐다. 내 아이가 외부 자극에 매우 예민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손과 입의 촉각, 시각이 예민하다고 한다. 나는 비로소 그간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나 있었다.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애쓰는 모든 것들이 거절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나보다 더 힘들었으리라. 아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거칠고 무서운 것들 투성이었을까.

아이는 걸음마를 늦게 시작했다. 집에서 잘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신발을 신기자 세상이 무너지듯 울었다. 겨우 안전해진 자신의 세상이 다시 흔들리는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집에서 신발을 신고 걷는 게 익숙하게 되었을 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이는 처음에 내내 나에게 매달려 울기만 했다. 매일 데리고 나가서 달래기를 한 달 정도 했을 때에야 아이가 밖에서도 웃으며 걷는 걸 볼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특별한 건 없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면 좋겠다. 세상은 때로 거칠고 무섭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재미있기도 한 곳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아이와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이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새해 첫날에도 눈이 내렸다. 아이에게 눈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을 밟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눈이 쌓인 길이 나오자마자 울면서 내게 매달린다. 나는 아이를 안고 천천히 눈 위를 걸었다. 울음을 그친 아이가 내 어깨에 기댔던 고개를 살며시 든다.

내년 겨울에 아이가 눈을 밟는 모습을 그려 본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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