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노트 <41>] 2024년에도 스몰 럭셔리 열풍…빨간 쿠튀르 립스틱의 미학

김의향 2024. 1. 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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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새해 공개된 ‘뉴 루주 디올’. 2 ‘뉴 루주 디올’의 뮤즈들. 왼쪽부터 야라 샤히디, 안야 테일러 조이, 디리러바, 레이첼 지글러. 사진 디올

새빨간 립스틱 컬러를 그대로 물들인 듯한 드레스를 입은 4인의 뉴 립스틱 뮤즈! 미국 여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 레이첼 지글러(Rachel Zegler), 야라 샤히디(Yara Shahidi)와 중국 여배우 겸 가수 디리러바(영문명 Dilraba Dilmurat)가 선명한 레드 컬러 립스틱을 들고, 2024년 ‘립스틱’의 해를 선포한다.

레이첼 지글러. 사진 디올

프랑스 럭셔리 뷰티 브랜드 디올은 강렬한 캠페인 영상과 함께 ‘뉴 루주 디올(New Rouge Dior)’의 대대적인 글로벌 홍보로 새해를 열었다. ‘루주 디올’은 디올 뷰티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립스틱 라인이다. 하나의 립스틱 라인을 위해 무려 네 명의 뮤즈를 선정했고, 2023년 연말부터 공식 SNS 채널을 통해 티저 영상과 이미지를 공개한 후 새해 전 세계에 일제히 광고 캠페인을 터뜨렸다.

김의향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세계 럭셔리 메이크업 시장 트렌드를 리드하는 디올이 2024년을 새로운 립스틱의 해로 정의한 건 의미가 있다. 2024년 ‘립스틱 효과’가 더 강력해질 거란 예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립스틱 효과는 ‘넥타이 효과’와 함께 잘 알려진 경제학 용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대부분의 사업별 매출 통계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립스틱 매출이 증가한 현상을 발견하고, 경제학자들이 붙인 용어다. 이후 2001년 에스티 로더의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는 립스틱 판매량으로 경기를 가늠하는 립스틱 지수(Lipstick Index)를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립스틱 지수는 경기를 판단하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시대는 바뀌어도 경기 변화에 따른 소비 형태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불경기를 체감한 2023년 9월 관세청은 상반기에 립스틱과 틴트 등 립 메이크업 수출액이 1억9800만달러(약 257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3.5%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은 아이 메이크업의 전성기였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기 때문에 립 메이크업이 필요 없어지자 눈매를 강조하는 메이크업이 유행했다. 그리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종식하고 ‘노 마스크’ 시대가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 세계 뷰티계는 립 메이크업의 화려한 부활을 외쳤다. 특히 최근에는 고광택의 ‘탕후루 입술’이 유행하고 있다. 입술 질감이 과일에 투명 시럽을 입힌 중국식 디저트 탕후루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뷰티 트렌드로 시작됐지만, 립스틱 판매량 증가는 불경기 소비 형태로 이어졌다.

립스틱은 ‘스몰 럭셔리’를 대표하는 아이템이다. 이름 그대로 ‘작은 사치’를 뜻하는 스몰 럭셔리 역시 불경기의 소비 형태다. 지금은 ‘영끌’까지 서슴지 않았던 ‘명품 플렉스’ 시대가 저물고 스몰 럭셔리 시대가 열렸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럭셔리 쇼핑이 비싼 백과 옷, 시계 등에서 립스틱, 향수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의 뷰티 제품 인기가 높아진다. ‘디올이나 샤넬 백을 사진 못해도 디올과 샤넬의 립스틱은 살 수 있잖아’라는 심리다. 여성들이 늘 백에 소지하고 다니는 립스틱은 패션 액세서리와 같다. 컬러, 발색감, 발림성과 지속력도 중요하지만, 고급스럽고 예쁜 케이스 디자인이 립스틱 선택의 주요 조건이다.

디올의 쿠튀르 립스틱 ‘루주 프리미에’ 한정판(왼쪽)과 유리 공예 예술품 같은 케이스의 쿠튀르 립스틱 ‘샤넬 31 르 루주’. 사진 디올·샤넬

이런 MZ 세대의 스몰 럭셔리 쇼핑의 증가를 예측한 럭셔리 뷰티 브랜드들은 립스틱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여성들이 작은 사치를 위해 선호하는 디올과 샤넬 뷰티는 스몰 럭셔리를 뛰어넘는 ‘스몰 쿠튀르’ 립스틱을 선보였다. 새해의 ‘뉴 루주 디올’에 앞서 2023년 공개한 ‘루주 프리미에’ 한정판은 디올의 초히트작인 ‘북 토트’ 백을 립스틱 케이스로 옮겨 놓은 듯하다. 세라믹 케이스에 크리스챤 디올의 첫 부티크인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의 ‘콜리피셰(Colifichets)’ 벽을 장식했던 ‘투알 드 주이(Toile de Jouy)’ 패턴이 새겨졌다. 투알 드 주이는 18~19세기 프랑스 파리 근교 주이(Jouy) 지역에서 탄생한 프린트로, 디올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프린트가 됐다. 루주 프리미에의 세라믹 케이스는 프랑스 도자기 공예가 메종 베르나르도와 5년간 협업 끝에 탄생한 작품으로, 무려 50명의 장인이 수공예 작업으로 15단계의 공정을 통해 완성했다.

샤넬은 유리 공예 예술품 같은 ‘31 르 루주(트렁테 엉 르 루주)’를 선보였다. 케이스 디자인은 파리 캄봉가 31번지에 위치한 가브리엘 샤넬 아파트의 전설적인 아르데코 스타일 계단을 따라 늘어선 거울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각면으로 이뤄진 스퀘어 글라스 케이스의 유리를 더욱 얇고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4년 여의 시간을 공들였다. 또한 다이아몬드처럼 섬세하게 커팅한 글라스의 각면과 골드 메탈 링 두 개가 조화를 이룬다. 샤넬 최초로 립스틱 표면에 양각 로고를 새겨 넣었다.

또한 디올과 샤넬을 비롯한 대표적인 럭셔리 뷰티 브랜드들이 메인 컬러로 선명한 레드를 내세우고 있다. 불경기에 립스틱 판매가 증가하는데, 특히 빨간 립 컬러가 유행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레드 립 메이크업은 다른 메이크업 연출을 더하거나 주얼리로 장식하지 않아도 얼굴을 화사하게 돋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빨간 립 컬러 하나로 충분하기 때문에, 불경기에 레드 립스틱이 유행하곤 했다. 2024년 새해를 연 뉴 루주 디올의 뮤즈들 모두 드레스부터 입술까지 선명한 레드로 물들이며, 클래식 레드 립 메이크업의 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스몰 럭셔리에서 스몰 쿠튀르로 더욱 고급화되어 가고 있는 립스틱! 2024년 럭셔리 브랜드들에 이어 뷰티 브랜드들의 ‘립스틱 마케팅’이 점점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불경기를 의미하는 립스틱 효과가 반가운 현상은 아니지만, 쿠튀르 립스틱 하나로 작은 사치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고급 립스틱의 사치조차 부담스럽다면 새빨간 립 컬러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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