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 한국의 ‘저출생’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한겨레21 2024. 1. 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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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엉망진창행성조사반―첫 회] ‘다이어트 북극곰’ 소문을 알아보러 떠난 조사반, 북극곰이 약국에서 꺼낸 것은 정작 ‘이것’이었는데…
캐나다 서부 허드슨만의 북극곰은 5~6월 육지로 돌아와 단식에 가까운 먹이활동을 하다가 10~11월 바닷물이 얼면 바다로 나가 물범을 사냥한다. 바다얼음이 빨리 녹고 바닷물이 늦게 얼면서 사냥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 남종영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시시(CC)라고 한 제보자는 캐나다 작은 마을 처칠의 북극곰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했어요. 북극곰이 떠난 자리에 다이어트약이 발견됐다고 하는군요. 그곳에서는 북극곰이 약국을 수시로 드나든다긴 하지만…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는 법이죠. 조사차 출장을 준비하며 2017년의 제보가 떠올랐습니다. 제보 속 영상에서 삐쩍 마른 북극곰이 곧 죽을 듯 쓰레기통을 뒤지며 느리게 걷고 있었죠.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가 아니라…

북극은 연약한 세계입니다.

하얀 빙원에 북극곰 몇 마리, 북극곰을 따라다니는 북극여우 몇 마리 그리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물범과 고래들. 생태계의 그물망을 이루는 생물종이 극소수입니다. 아마존의 열대 정글이 모든 요소를 갖춰 탄탄하게 지은 집이라면, 북극은 얼기설기 임시로 지은 가건물에 가깝지요. 그래서 종 하나가 사라지면 급작스레 붕괴하기 쉽습니다.

북극권은 북위 66.5도 북쪽의 지역을 일컫습니다. 북극 하면 육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극은 육지(남극대륙)이지만 북극은 바다(북극해)예요.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어서 얼고… 시시각각 그리고 계절마다 움직이는 바다죠. 북극점에 가만히 서 있어보세요. 몸을 옮기지도 않았는데 얼마 뒤 북극점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 있을걸요. 바다얼음은 바다 위에 떠서 항상 움직이니까요.

제보를 조사하러 캐나다 허드슨만의 작은 마을 처칠에 갔습니다. 북극곰이 마을을 활보하며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 ‘콜라 한 병 없어?’라고 한다는, 슈퍼마켓 비닐봉지에도 북극곰이 그려져 있다는 그곳.

북극곰이 이 마을에 많은 이유는 다른 북극해 연안과 달리 매년 7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바다가 ‘완벽하게 얼지 않는다’(ice-free)는 점 때문입니다. 북극곰은 해안가에서 에너지를 비축하며 바다가 얼기를 기다립니다. 특히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 10~11월에는 북극곰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그래서 전세계 과학자, 사진가, 기자들이 북극곰을 보러 이곳에 오죠.

기차에서 내리자 ‘세계 북극곰의 수도’(Polar Bear Capital of the World)라는 입간판이 반겼습니다. 북극곰전문가그룹(PBSG·Polar Bear Specialist Group) 소속 과학자가 나와 조사반에 브리핑했습니다.

“우리 북극곰전문가그룹은 1968년 창설된 세계 최고 북극곰 연구기구로서, 1973년 북극곰보호협약을 만들어내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북극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물로서, 인간이 태어나기 전인 50만 년 전에 그리즐리곰과 갈라져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익사를 밥 먹듯이 하던 중… (1시간이 흐르고) 본 단체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보고한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 약 2만6천 마리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처칠은 사람보다 북극곰이 많은 곳입니다. 마을 인구는 899명인데, 여기 북극곰이 속하는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의 개체수가 1030마리이거든요. 처칠은 허드슨만 철도의 종착역이기도 합니다. 19세기만 해도 캐나다 대평원의 비버 모피를 기차에 실어 이 마을을 통해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대평원의 밀을 실어왔죠. 바다가 얼지 않는 7~9월에요. 지구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릴 거라며 들썩거리지만, 처칠 항구에 가보면 아직 녹슨 건물 그대로예요. 퇴락한 항구입니다.

이누이트 마을인 알래스카 카크토비크 근처에 나타난 북극곰. 이누이트족이 사냥 후 남긴 고래 부산물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다. 류우종 기자

쓰레기장이 없어져서일까? 

처칠 마을의 역사에 북극곰이 처음 등장한 건 1942년입니다. 캐나다 군기지 쓰레기장에 북극곰이 찾아온 거예요. 1960년대에는 처칠에 북극곰이 많다고 소문납니다. 1968년 11월에는 마을 쓰레기장을 북극곰 40마리가 뒤덮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쓰레기 반, 북극곰 반. 북극곰에 관한 한 최고 과학자인 이언 스털링이 말합니다.

“하필 1960년대부터냐고요?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북극곰을 더는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북극곰이 가까이 온 거라고 봅니다. 원인은 확실치 않지만 1957년 허드슨베이 상사가 모피 무역기지인 요크팩토리 운영을 270년 만에 중단하고 캐나다 군부대는 철수했습니다. 1954년 원주민을 제외한 북극곰 사냥이 완전히 금지됐고요.”

그 뒤 소문이 나면서 과학자들이 찾아오고 여행자가 몰려들었습니다. 과학자들은 1967년 처음으로 북극곰에게 전파발신기를 부착해 위치추적을 했지요. 1970년대에 북극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1980년대부터 북극곰 생태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지금은요? 처칠은 ‘세계 북극곰의 수도’가 아니라 사실 ‘세계 북극곰 관광의 수도’가 됐죠. 도로는 없고 기차와 비행기로 갈 수밖에 없는 외딴 이 마을에 성수기인 10~11월에 오려면, 1년 전에 교통과 숙박을 예약해야 합니다. 그즈음엔 과학자, 사진가, 기자, 여행객이 뒤엉켜 마을이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동안 처칠에선 북극곰과 관련한 온갖 일이 일어납니다. 1975년 북극곰이 못 들어가도록 마을 쓰레기장 주변에 울타리를 쳤는데, 이놈들이 그걸 뚫고 들어가는 방법도 알아냅니다. 마을에 북극곰이 출몰하자, 동물원으로 북극곰을 이송하거나 어쩔 수 없이 사살하는 일이 허다했죠. 결국 북극곰 보안경찰단을 설립하게 됩니다. 연간 300통의 신고 전화를 처리하고, 매일 순찰하며 북극곰을 쫓아내는 겁니다.

“당신이 제프 처치머치 경감이군요.”

“정확히는 매니토바주 환경보전국 소속입니다.”

“요즘에도 북극곰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나요?”

“아닙니다. 쓰레기 매립장을 뒤지는 건 옛날얘기예요. 2006년 마을 북쪽에 실내 자원재활용센터를 만들었어요. 바닥이 콘크리트입니다. 정문과 창문은 금속 막대 자물쇠로 채우고요. 북극곰은 못 들어옵니다.”

그때, 한 조사반원이 다급하게 뛰어왔습니다.

“북극곰이 먹던 다이어트약이 마을 외곽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싹쓸이해 한국 사람들은 구경도 못하는 ‘삭센다’랍니다!”

긴급 상황 발생! 북극곰 경찰차에 올라 ‘삐뽀삐뽀’ 경광등을 켭니다. 처치머치 경감이 말합니다. “폼 나서 켰다.” 경찰차가 도착한 곳은 북극곰이 마을로 진입하는 통로인 마을 북쪽 해안가 주변의 나대지. 12월이 됐는데도 바다는 여전히 파란 파도가 치고, 바람은 습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얼지 않은 툰드라의 땅에 북극곰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 돋보기를 들고 발자국을 따라가던 조사반원이 소리쳤습니다.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네요!”

“어? 무슨 내용이지?”

약을 먹고 버린 듯한 포장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조심하라, 당신들은 길을 잃었다.’

북극곰의 수도, 캐나다 처칠 위치.

허약 체질이 된 북극곰

“처칠은 각종 도시 괴담과 소문 그리고 협잡이 넘쳐 돌아다니는 곳이에요. 아무리 다이어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북극곰이 그걸 할 리가요.”

우리는 탐문 중에 처칠 마을의 유일한 피트니스센터인 ‘북극곰 피트니스센터’의 사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중국의 돌고래수족관에 간다던 흰고래(벨루가)가 와서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은 거 말고는 동물이 온 적이 없다고 했어요.

“사진 찍기 전에는 다이어트약인 삭센다도 먹고 그러죠. 저기 약국에서 팔아요. 12월인데도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곰이 죄다 삐쩍 말랐는데 무슨 다이어트? 이미 얼음 타고 사냥 나갔을 때인데, 여기서 토끼나 잡아먹고 있잖아요. 북극곰도 이제 단백질보충제를 먹어야 해요.”

2017년 제보 영상의 곰도 비슷했어요. 북극곰이 발견된 캐나다 배핀만 동부는 여름에 바다가 얼지 않는 곳이었어요. 바다얼음을 타고 나가서 물범을 실컷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북극곰은 육지에서 먹이를 얻곤 했죠. 이곳 허드슨만 처칠도 여름에 바닷물이 아예 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핀만과 비슷합니다. 북극곰에게 가혹한 환경이죠.

“그럼, 북극곰이 다이어트한 게 아니라 굶주리는 게 아닐까요?” 조사반원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어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논문과 보고서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칠을 통과하는 북극곰에 관해서는 많이 연구됐더군요. 그중 이 개체군의 건강이 ‘악화’했다는 논문 몇 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초기 논문은 북극곰의 신체건강지수(BCI·Body Condition Index)를 분석했어요. 우리가 건강검진 때 재는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와 비슷한 거예요. 왜 인바디 기계에 올라가 양팔 벌리고 그래프 올라가는 거 보면서 ‘제발, 저 경계선을 넘지 말아다오’ 하고 기도하잖아요. 결국 경계선을 통과해 비만으로 뜨고 말지만.

북극곰은 반대예요. ‘비만이 정상’입니다. 처칠 마을에서 말썽을 피웠다가 감옥에 수용된 북극곰을 장기간 조사해보니, 체질량 수치가 떨어지는 겁니다. 최근에는 북극곰의 신체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에너지저장량’과 ‘에너지밀도’ 값을 내요. 에너지저장은 에너지대사에 쓰일 수 있는 신체조직의 중량값이에요. 그중에서도 에너지밀도는 그 핵심인 단위 지방층당 지질량을 말하죠. 신체 상태가 좋다는 것은 나이나 덩치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축적한다는 거예요.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 2533마리를 1985~2018년 조사한 결과, 에너지저장량은 56% 줄었고 에너지밀도도 53% 감소했어요. 쉽게 말해, 북극곰이 허약 체질이 되는 거예요.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까요?

189㎏ 홀쭉이 북극곰

허드슨만의 북극곰은 여름에 육지로 돌아와 4~5개월 머물다가 바닷물이 어는 가을이 되면 북극해로 긴 사냥 여행을 떠납니다. 육지에 머물 때는 작은 동물이나 새알, 해초를 먹고 근근이 버텨요. 겨울에는 바다얼음으로 나가 사냥한 물범으로 폭식하고, 여름에는 육지로 와서 단식하는 거죠.

그런데 허드슨만의 바다얼음이 봄에는 너무 빨리 녹고, 가을에는 바닷물이 너무 늦게 얼고 있습니다. 보통 6월에 녹던 바다얼음이 5월에 녹고, 11월 초에 얼던 바닷물이 11월 말~12월 초에 얼고 있어요. 2016년에는 한겨울인 12월7일에야 결빙될 정도였습니다.

1985년 바다가 얼지 않는 날은 105일이었는데, 2018년에는 145일로 훌쩍 늘었습니다. 대략 1년에 하루꼴로 얼음 없는 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북극곰이 사냥할 수 있는 날이 매년 하루씩 줄어든다는 거예요. 에이미 존슨 캐나다 앨버타대학 생물과학과 교수는 말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바다얼음의 감소는 암컷과 새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암컷은 임신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새끼를 낳고 보살피고 함께 활동하기까지, 약 8개월 동안 ‘단식’을 하면서 지냅니다. 따라서 그 전에 바다얼음에서 얼마나 많은 물범을 잡아 포식했느냐, 다른 말로 얼마나 에너지를 비축했느냐가 번식 성공의 관건이죠. 근데 바닷물이 잘 얼지 않으니 번식률과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요. 물론 189㎏ 홀쭉이 북극곰이 새끼를 낳은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상황이 이런지라 허드슨만에서는 세 마리 새끼를 낳는 북극곰은 거의 사라졌고, 두 마리를 낳는 북극곰은 부쩍 줄었고, 한 마리를 낳는 북극곰이 대세가 됐죠. 그리고 몇 십 년 뒤면… 0.78마리? 한국의 저출생 사태와 비슷해지겠네요.

조사반은 약국 주변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북극곰이 삭센다를 사러 왔을 때, 붙잡기로 한 거죠.

그날 밤, 야윈 북극곰 하나가 저벅대며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곧장 달려갔어요. 약국에서 북극곰은 삭센다가 아니라 ‘오쏘몰’을 들고 있었어요. 피로 회복에 최고라는 독일산 명품 비타민! 

“우리가 사라지면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라”

“당신들이 나를 찾는다던 사람들이군. 우리는 바다얼음 자체야. 얼음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물범은 얼음에서 살고, 북극곰은 얼음 위를 걷지. 그런데 우리의 삶터가 사라지고 있어. 이미 12월이 넘었잖나? 아직도 바다가 얼지 않았어. 계속 기다렸다간 굶어 죽을지 몰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헤엄쳐 가볼 거야.”

“그래서 비타민을 준비한 거군요?”

“북극곰 역사의 영웅이 있지. ‘20741’이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북극곰이야. 2008년 8월 말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알래스카 배로를 떠났어. 북극해가 아직 얼지 않았을 때지. 그분은 헤엄치고 헤엄치고 헤엄쳤지만 얼음을 만날 수 없었어. 687㎞를 헤엄치고 나서야 조그만 얼음 위에 올라갈 수 있었지. 수영한 지 232시간째였지. 아마 ‘안 되겠다’ 싶었나봐. 그분은 방향을 돌려 다시 육지로 돌아왔어. 새끼는 이미 죽은 뒤였지. 이렇게 헤엄치다 죽은 새끼가 부지기수라네. 그래도 난 혼자니 괜찮아. 비타민도 챙겼고. 내일 출발이야.”

하늘에서 눈이 소복소복 내렸습니다. 바다를 향해 북극곰은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죠.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길을 잃었어. 우리가 사라지는 순간 당신들에게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라.”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기후위기로 고장 나 신음하는 지구 곳곳을 조사하러 다닙니다. 고통받는 모든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입니다. 한겨레 온라인 ‘오직 한겨레에서만’ 연재와 동시 진행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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