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강원도의 겨울’…얼음낚시 빙어축제 문 닫았다

신소윤 기자 2024. 1.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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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홍천 등 겨울축제 현장 가보니
소양강 결빙 안 돼 인제 빙어축제 취소
홍천 꽁꽁축제도 야외낚시 못 열어
지난 8일, 강원도 인제군 부평리 빙어호 일대에 ‘얼음판 출입금지’라고 적힌 팻말에 세워져 있다. 인제/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얼음이 깨질 위험이 있으니 출입을 금지합니다.”

지난 8일, 강원 인제군 남면에 위치한 ‘빙어호’ 둘레엔 이렇게 쓰인 커다란 팻말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19일부터 시작되는 ‘제23회 인제빙어축제’ 준비로 한창일 시점이었지만, 이날 호수 주변에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축제 때(1월20~29일)만 해도 20만명의 관광객이 얼음판 위를 누비고 다녔지만, 이날 5만㎡ 면적의 호수에 얼음이 덮인 부분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축제 때) 6개 방이 모자라 올겨울 대목을 앞두고 지난해 말 펜션 옆 가정집 2층을 리모델링해 펜션 운영 허가까지 받았는데, 올해는 예약이 하나도 없네요.”

빙어호 바로 앞에서 ‘빙어마을펜션’을 운영하는 김충겸(57)씨가 허탈하게 말했다.

인제빙어축제는 마을 ‘겨울 대목’의 시작이다. 축제를 전후해 몰려드는 가족 관광객과 낚시꾼들로 평소 같으면 두달치 예약이 꽉 차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손님이 뚝 끊겼다. 지난해 말 내린 비로 소양강댐 상류 지역 수위가 높아지고, 날이 따뜻해져 수온이 상승하다 보니 얼음 결빙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인제군청은 결국 지난달 27일 축제를 취소한다고 누리집에 공지했다. 김정수 인제군문화재단 축제팀장은 “현재 소양감댐 수위가 186.5m인데, 3.5m는 더 내려 가야 한다. 지금은 지난해 주차장 구역으로 쓰였던 곳까지 물이 들이 차 있는 상황”이라며 “행사를 축소하거나 미뤄서 개최할 수도 있었겠지만, 곧 ‘입춘’(2월4일)인데 그때는 얼음이 얼더라도 금세 녹는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1998년 시작된 이 축제는 최근 10년여 사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축제 진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20년에도 내린 비 때문에 얼음낚시를 진행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결빙이 이뤄지지 않아 아예 축제 자체를 열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인제빙어축제 현장. 소양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사진 속 주차장 구역은 현재 물이 차 있다. 인제군문화재단 제공

김 팀장은 “앞으로는 ‘제○회 인제빙어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열지는 못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제문화재단 쪽에선 다른 겨울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이어가거나 빙어호에서 캠핑과 물을 주제로 한 여름 축제를 여는 대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인제빙어축제의 퇴장은 기후변화 속 강원도가 맞게 될 미래 풍경에 대한 전조이기도 하다. 강원도기상청이 지난달 발표한 ‘강원특별자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2023’을 보면,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탄소를 배출(고탄소 시나리오)할 경우 겨울이 절반가량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보면 현재(2000~2019년) 강원도의 겨울은 122일인데, 고탄소 시나리오에선 2081~2100년께 겨울이 71일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소양강댐 수위가 높고 얼음이 얼지 않은 이유도 이 맥락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 지난달 5~15일 강원도 평균기온은 내내 영상권에 머물렀다. 특히 지난 9일에는 강원도 인제의 최고기온이 16.9도까지 치솟으며, 최고기온과 평균기온(12.4도) 극값을 경신했다. 이날 철원, 대관령, 춘천, 북강릉, 동해도 평균기온이 1위를 경신했고, 속초는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제에선 1월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며 이달 들어 13일까지 평균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이 닷새에 불과했다.

또 지난달 11일 강원도에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12월 호우특보가 내리고, 동시에 대설특보도 발효됐다. 강원 영서는 12월 강수량은 92.4㎜로 1973년 이래로 역대 1위, 강원 영동 지역은 185.3㎜로 같은 기간 2위를 기록했다. 인제의 12월 누적 강수량도 60.1㎜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겨울 축제를 개최하는 다른 지역들도 고전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창군은 지난달 22일 열 예정이었던 ‘평창송어축제’를 한 주 미뤄 29일에야 개최할 수 있었다.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얼음 두께가 최소 20㎝ 이상 돼야 하는데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창군청 축제지원 관계자는 “지난해 날씨를 감안해 준비했는데, 12월 초 날씨가 굉장히 따뜻했다”며 “게다가 올겨울엔 눈이 아닌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 흙탕물이 내려 올 때마다 기초공사를 해둔 행사장이 훼손돼 비용이 들고 시간도 지체돼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홍천군 역시 지난 5일 ‘홍천강 꽁꽁축제’ 개최를 앞두고 많은 겨울비와 폭설이 번갈아 내린 탓에 축제장 제방이 일부 유실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홍천문화재단 등이 홍천강 수위를 보아가며 긴급복구에 돌입한 덕에 축제를 개최할 순 있었지만, 높은 기온으로 얼음 결빙이 이뤄지지 않아, 축제 첫날 축제의 상징 격인 야외 얼음낚시터를 열지 못했다. 이를 대신한 건, 실내낚시터와 루어낚시, 그리고 플라스틱 임시 시설물(부교)을 설치해 얼음낚시 기분을 내도록 마련한 부교낚시터 등 ‘온난화 대비’ 프로그램이었다. 박영식 홍천문화재단 축제운영부장은 “얼음이 얼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온난화 대비 프로그램을 올해 30% 정도 준비했다면, 내년엔 50%까지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제 홍천/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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